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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am of Rivals] 북촌 화랑가의 유비ㆍ관우ㆍ장비…한국 미술계 쥐락펴락
⑤ 현대화랑 vs. 국제갤러리 vs. 학고재갤러리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현대화랑(박명자 회장), 국제갤러리(이현숙 회장), 학고재갤러리(우찬규 회장)는 북촌 화랑가의 터줏대감들이다. 이들은 굵직한 미술전시를 여는 것은 물론, 작가들을 직접 발굴하는 등 한국 현대 미술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한다”는 평을 받는 이들 갤러리들은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을 사이에 두고 차례대로 위치해 있다.

갤러리를 이끄는 수장들은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도 탁월하지만 컬렉터들이 좋아할 만한, 소위 돈이 될 만한 그림을 알아보는 ‘혜안’ 역시 뛰어나다는 게 중언이다.

매출 규모도 수백억원대가 넘는다. 이 중에서도 국제갤러리가 단연 톱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제갤러리는 2014년 61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갤러리현대는 2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공시가 되지 않는 학고재 역시 100억원대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북촌 화랑가 ‘삼국지’를 이끌며 한국 미술계 부흥을 선도하고 있다. 마치 유비, 관우, 장비처럼 말이다. 

(왼쪽부터) 박명자 회장, 이현숙 회장, 우찬규 회장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지략과 의리를 겸비한 관우형…박명자 회장=큐레이터 출신의 박 회장은 1970년 고서화 중심의 인사동에 화랑을 열고, 남관, 도상봉, 윤중식, 천경자 등 한국의 서양미술가들을 소개했다.

1970년대 이후 김환기, 김창열, 이우환, 이중섭, 박수근 등 한국 추상화의 대가들이 현대화랑을 거쳐 갔다. 국내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사거나 빌리려면 박 회장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김환기 회고전을 잇달아 연 것도 현대화랑이었다. 컬렉터들이 갖고 있는 김환기 작품 90%가 현대화랑에서 나온 것이라고.

반세기 한국 미술사와 함께 해온 박 회장의 힘은 큐레이터들보다 더 뛰어난 ‘기억력’에 있다는 게 미술계 인사들의 얘기다. 컬렉터들조차 자신이 전에 어떤 그림을 샀는지 박 회장에게 물어본다는 것. 누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가장 잘 아는 것이 박 회장이라는 얘기다.

박 회장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지략과 의리를 겸비한 리더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으로 상업화랑으로써는 이례적인 4만4000명이라는 관람객 수를 기록한 것도 박 회장의 뛰어난 지략이 한 몫했다. 한 인사는 “현대화랑이 연말이 되면 돈 되는 전시를 할 줄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젊은 작가들은 “의리 있는 리더”라고 평가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하는 전준호 작가는 “화랑에 돈 벌어주는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박 회장은 의리와 진정성으로 작가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원로들이 현대화랑을 안 떠나는 이유”라고 말했다.

▶빠르고 과감하게 정면 돌파해 나가는 장비형…이현숙 회장=이현숙 회장은 사업가 남편과 함께 컬렉션을 하다 1982년 인사동에 국제갤러리를 열었다. 이후 프랭크 스텔라, 솔 르윗, 루이스 부르주아, 알렉산더 칼더, 로니 혼 등 세계 미술계에서 인정받은 ‘핫’한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이 회장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존재감이 크다. 세계적인 권위의 미술매체 ‘아트넷(Artnet)’이 선정한 ‘2014 가장 존경받는 아트딜러’로 꼽히는가 하면,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 ‘파워딜러 100’인 등에도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 회장은 빠른 판단력, 과감한 추진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단색화 붐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우환을 비롯, 박서보, 하종현, 정상화 등 한국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은 지금은 없어서 못 파는 정도. 리움 10주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으로 의미 있었던 지난해, 미술계 거물들이 서울에 대거 들어오는 시점을 노리고 단색화 테마를 터뜨렸고, 이것이 대박이 났다.

해외 경매와 아트페어에서도 단색화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 작품 사진이 홍콩 소더비의 4월 경매 도록 표지를 장식한 것도 이에 대한 방증이다. ‘아시안 아방가르드’라는 타이틀로 실린 100호짜리 작품은 경합 끝에 6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 올해 내로 10억원 넘는 박서보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국제갤러리가 급성장한 배경에 대해 미술계 일각에서는 90년대 후반 삼성미술관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국제갤러리 작품을 많이 사들였다는 것. 한 미술계 인사는 “홍라희 삼성미술관 회장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신중하고 전략ㆍ전술에 능하며 시류를 읽을 줄 아는 유비형…우찬규 회장=학고재갤러리는 1988년 인사동에서 고미술 전문 화랑으로 출발했다. 삼청동 3대 갤러리 중에서는 후발주자다.

일찌기 부친을 여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우 회장은 한의원에서 일을 시작하며 한문을 접했고, 한학자 고당 김충호 선생과의 인연을 계기로 한학을 익혔다. 한학을 비롯해 독학으로 학문적 기반을 탄탄하게 닦은 우 회장은 1980년대 말 추상화를 비롯, 서구 현대미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 ‘19세기 문인들의 서화전’을 개관전으로 선보였다.

조용한 말투, 신중한 성격의 선비 스타일에 탁월한 안목까지 갖춘 우 회장은 시대정신을 갖춘 작가들에 주목했다. 미술사에 남을 작가들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윤석남, 이용백, 홍경택, 송현숙, 정현 등이 학고재를 거쳤다. 정치ㆍ사회적인 발언에 자유로운 젊은 미디어아티스트 양아치의 전시도 학고재가 주도했다. 올해 초에는 백남준 전시를 열며 “한국이 낳았으나 여전히 과소평가되고 있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을 미술계 화두로 던졌다.

이 회장은 티엔리밍, 마류밍, 장환 등 중국의 젊은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상하이 분점을 교두보로 한ㆍ중 미술 교류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항저우 삼상당대미술관과 한국 현대미술전을 공동으로 열기도 했다.

시류를 읽을 줄 아는 우 회장은 “타고난 장삿꾼”으로도 불린다. 최근 미술관과의 협력 전시를 연 것에 대해 미술계 일부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고. 그러나 이 회장은 개의치 않는다. “작가에게도 미술관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 이외에 출판업계에서도 학고재의 이름은 유명하다. 1994년 출판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도서출판 학고재의 히트작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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