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부모 자녀 임금 평균 30만원 더받아…부모 능력·연봉 수준이 자녀 계층이동 결정
#.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 상경계열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A(29)씨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부모님에게 원망스러운 마은이 든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공부를 썩 잘 해 괜찮은 대학을 나왔지만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놓을 수가 없어 스펙 다운 스펙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들 다가는 어학연수도 언감생심이었다. A씨는 오늘도 서류 전형에서 고배를 마셨다.
20대 태반이 백수인 청년실신(실업자+신용불량자)시대는 부모가 곧 최고의 스펙으로 통한다. 유복한 환경속에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젊은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고 높은 학점, 영어점수를 얻어 어렵지 않게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
하지만 토익 응시료조차 부담인 가난한 학생들에게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률을 뚫고 취업에 이르는 길은 수백배는 더 고단하다.
어렵사리 소위 명문 대학에 입학한다 해도 수천만원을 들여 ‘고스펙’을 쌓지 않으면 직장에 취직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한국의 세대 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04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2000명을 10년간 추적한 결과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 부모를 둔 자녀의 약 90%가 일반고ㆍ특목고에 진학했다. 반면 소득 1~2분위에선 이 수치가 50~60%대로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경향은 취업시장에도 두드러져 부모의 교육수준이 전문대를 포함한 대졸 이상이면 월 임금이 179만원인데 비해 보호자 학력이 고졸 또는 고졸 미만인 경우 145~148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학력에 따라 자녀의 임금이 30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부모의 능력과 연봉 수준이 자녀의 계층 이동을 결정하는 셈이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민인식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설령 같은 수준의 대학을 나온다 해도 이제는 부모의 뒷바라지 능력에 따라 자녀의 직업이 달라지는 시대”라고 단언했다.
특히 취업전선에 뛰어든 대학생들은 이를 피부로 실감한다.
최근 성균관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버지가 스펙이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글은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들과는 출발선이 달라 노력해도 이길 수 없다. 아버지 잘 만난 애들 부러워 말고, 없는 이들끼리 경쟁해서 살아남으려면 노력하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이 글에 공감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이처럼 학력과 재산정도에 따른 사회 계층의 세습화가 고착화되면 대다수 젊은이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사회의 활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사회라는 건 계층 이동에 있어서 부모 자본의 효과가 점점 커졌다는 것”이라면서 “명문 대학을 들어갔다 하더라도 부모 자본효과는 끝나지 않는다. 서울대 내에서조차 강남, 특목고 출신의 1부리그가 존재하고 나머지는 2부리그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민 교수는 “성장을 위해 대기업 중심으로 나라를 끌고 가던 시절도 있다. 하지만 어느 선부터는 소득 불평등이 완화돼야 경제가 성장하는 측면이 분명 있다”고 덧붙였다.
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