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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디지털36.5℃〕사람을 지키는 것은 사람입니다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수신자 없는 목소리들

한쪽에는 첨단 기술의 경연이 있고 또 한 극단에는 원시적인 죽음의 풍경이 있습니다. 물질을 ‘나노’로 쪼개고, 데이터를 ‘기가’로 실어나르는 시대에 굶어서 죽고, 돈이 없어 죽고, 불에 타서 죽고, 건물이 무너져 죽고, 하늘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외로워 죽고, 억울해 죽습니다. 빚에 몰린 가난한 사람도 죽고, 돈을 잘못 벌고 잘못 나눠쓴 부자도 죽습니다. 힘없고 이름 없는 자도 죽고,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권력자도 죽습니다. 도처에, 죽음이 있습니다. 자연사가 아닌 타살과 자살, 그리고 사고사입니다.

그 사이에서 무수한 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아 다닙니다. 분노와 적의의 말은 일상이 됐고, 저주와 비난의 말조차 더이상 아무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자조와 냉소만큼이나 위안과 공감의 말들도 수신자를 찾지 못하고 갈길을 잃어 허공에 흩어져 버립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른 속도로 전하는 네트워크는 더 많은 단어들을 실어 나르지만, 그 말들이란 채집되고 분석되는 디지털 신호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의 말은 더 이상 ‘수신자’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발화되고 송신될 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위험은 저에게 맡기세요



현재 지구 상공에 떠 궤도를 돌고 있는 우리 위성 6대는 한반도를 24시간 관측합니다. 밤낮이 따로 없습니다. 지난달 발사된 아리랑 3A호는 광학카메라로 지상 55㎝의 물체까지도 선명하게 찍습니다. 최근 아리랑3A호가 촬영해 전송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의 모습은 지상의 간판 글씨까지 식별합니다. 열적외선 카메라는 가뭄이나 화재 등 재해ㆍ재난의 위험도 감지합니다. 정부가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주력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재난ㆍ재해 예측 및 예방 시스템은 교량, 건물, 강, 바다 등에 센서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을 자동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대한 최적화된 대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 통신사는 백령도에서 극한 상황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국가재난망 시연을 했습니다. 핵심은 대형 재난 때에도 통신 장애가 없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해 구조 및 대처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수와 움직임까지 감지해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경고하는 CCTV시스템,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어린이집 영상을 보는 서비스 등 대형 재난에서 테러, 방화는 물론이고 개인ㆍ가정의 안전까지 안전을 지키는 ICT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는 더욱 완벽해지고 있습니다. 위험감지센서와 빅데이터는 재난이나 재해, 사고를 정확하게 예측합니다. 화재가 언제날지, 화산은 언제 터질지, 지진과 쓰나미는 언제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들이닥칠지 점점 더 정교하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경보와 예측은 모든 기계를 자동적으로 작동시켜 최대한 위험을 낮출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행위의 패턴을 파악하는 카메라는 범죄와 테러 징후를 읽고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기술과 장비가 지키는 우리의 안전은 갈수록 완벽해져야 합니다. 


▶이상한 역설

지난 2013년에 개봉한 영화 중 에단 호크가 주연한 ‘더 퍼지’(The Perge)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22년의 미래가 배경입니다. 영화 속 미국은 최저실업률과 범죄율을 자랑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정부는 1년 중 단 하루의 12시간, 살인을 포함한 모든 범죄가 가능한 ‘퍼지 데이’라는 제도를 운영합니다. 주인공은 중산층의 가장입니다. 최첨단 보안시스템을 판매하는 회사의 임원입니다. ‘퍼지 데이’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회사에게는 최고의 매출을 올릴 기회를 의미하죠. ‘퍼지 데이’에 일어나는 범죄가 증가하고 더 잔혹해질수록 최첨단보안시스템에 대한 수요는 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집은 물론 철옹성같은 보안시스템을 갖춰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명의 침입자가 생기면서 단란했던 주인공 가족은 위기를 맞습니다. 오로지 쾌락을 위해 살인을 일삼는 무리와 한판 대결이 펼쳐지죠.

이 영화 속 보안시스템은 차라리 지금만도 못할만큼 빈약하고, 설정을 빼놓고는 뻔한 밀실 액션의 전개를 따르지만, 아이디어 하나는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안전을 지키는 장비와 기술, 법제도가 고도화될수록 위험은 더욱 커지고 결과는 더욱 대형화되는 ‘이상한 역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난을 예측하고 방지하는 시스템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지만, 대형 사고와 재해는 더욱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안전보안분야는 근본적으로 ‘이상한 역설’을 갖고 있는 산업입니다. 위험이 커질수록 수요가 늘어가는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위험이 대형화되고 증대될수록 첨단화ㆍ고도화되는 안전보안산업은 그만큼 더 악성화ㆍ지능화되는 범죄와 사고가능성을 키웁니다.

우리 사회 전체도 ‘이상한 역설’의 상황과 마주해있습니다. 첨단기술의 눈부신 발전 한 극단의 원시적인 죽음들도 ‘이상한 역설’의 일면이죠. 경제가 풍요해질수록 한편에선 소외자와 낙오자를 양산하고, 주류에서 끊임없이 밀려나는 현대의 난민들은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거나 분노와 적개심을 자양분삼아 스스로 이 사회의 뇌관이 돼 갑니다. 


▶사람을 지키는 것은 사람입니다

지난 2월 1일부터 오는 30일까지는 정부가 정한 국가안전대진단 기간입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지난 16일은 제 1회 국민안전의 날이었습다. 이에 맞춰 정부 각 부처와 장관, 관료들은 관할 현장을 분주하게 방문해 안전 점검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는 많은 조직과 제도가 새로 생기거나 정비됐습니다.

하지만, 기술과 제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처에서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안전을 지키는 장비와 기술, 법제도가 고도화될수록 위험은 더욱 커지고 결과는 더욱 대형화되는 이상한 역설의 시대임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을 지키는 것은 사람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도처의 죽음과 사고들이, 그리고 1년전의 비극이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참사 현장에서 사람을 구조한 것은 돈도, 기술도, 제도도 아닌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최근 나온 통신사의 서비스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독거 노인의 집안에 있는 TV의 작동 여부를 먼 거리의 지정인에게 알려주는 서비스입니다. TV가 켜지면 TV는 실시간으로 수신자에게 “X월X일X시, OOO님이 TV를 시청중입니다”같은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것이죠. TV가 꺼진 지 24시간이 넘으면 “*월 *일 *시 *분부터 OOO님이 24시간 이상 TV 미사용 중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전송됩니다. 연로한 부모님이나 어른신과 멀리 떨어져 안부가 늘 걱정인 자녀나 가족에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메시지를 기계가 알아서 자동으로 전달하는 이 서비스의 종착점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신자는 ‘사람’입니다. 받을 사람이없다면 이 서비스도 아무 소용이 없겠죠.

결국 돈도 기술도 장비도 제도도 모두 운용하는 사람들의 문제이고, 그들이 가진 철학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무척 상징적인 사실처럼 느껴집니다. 기술에는 영혼이 없지만 기술을 사용하고 혜택을 받는 사람들엔 따뜻한 심장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1년, 국가안전대진단 기간에 다시 한번 우리 사회 스스로가 물어야 될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을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말입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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