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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예선 기자의 Car톡!)車 6000대 품은 자동차운반선 견문록
[헤럴드경제(평택)=천예선 기자]벚꽃 만개한 15일 경기도 평택당진항. 자동차 전용 운반선 ‘글로비스 센츄리호’에 올랐습니다.

부두에서 마주한 ‘센츄리호’ 위용은 기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길이 200m, 높이 35m, 폭 32m의 초대형 선박입니다.

상상이 잘 안되신다면? 서울역 앞 대우빌딩(드라마 ‘미생’ 회사 건물)의 가로 길이가 약 100m입니다. 대우빌딩 2개가 붙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구에서 가장 빠르다는 ‘총알탄 사나이’ 우사인 볼트(세계신기록 9초58)가 달려도 20초가 넘게 걸리는 배입니다. 높이는 35m로, 13층짜리 아파트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평택당진항에 정박해 있는 글로비스 센츄리호 모습 [사진=현대글로비스 제공]

배 나이로 치면 3살이 된 센츄리호에는 이날 막 수출용 ‘모닝’이 선적되고 있었습니다. 스턴 램프(stern rampㆍ배 뒤편과 부두를 연결하는 길)를 따라 올라서는 모닝이 그날 따라 더 ‘꼬마차’처럼 보이더군요. 램프의 폭은 8m로 차량 두대가 왕복할 수 있고, 150톤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강철로 돼 있습니다.

램프를 따라 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웅웅’하며 울림을 내는 엔진 소리와 코 끝을 자극하는 기름 냄새가 느껴졌습니다.

6인승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의 상단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는 건 농구대. 오랜 기간 배를 타야 하는 선원을 위한 오락시설 중 하나입니다. 선원은 총 23명인데 이들을 위한 농구대와 탁구대, 체력단련실은 물론 수영장도 있다고 하더군요.

본격적으로 13층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좁은 복도와 가파른 철근 계단을 내려오니 ‘자동차 군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이 지나갈 틈도 없이 촘촘하게 붙어있는 차들. 사이드미러를 접어놓은 차량은 좌우 간격 10cm, 앞뒤 간격 30cm로 줄맞춰 정렬해 있었습니다.

차량 앞 뒤에는 4가닥의 줄이 바닥에 팽팽히 고정돼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갑판 바닥에는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구멍들이 나 있었습니다. 이 구멍과 차량 하단을 고박 장비로 연결해 차를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센츄리호 내 주차된 차량모습. 앞뒤 간격 30cm로 세워져 있는 기아차 모닝(맨위), 가로 200m 센츄리호 내부, 비어있는 데크 가운데서 찍었는데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가운데), 데크에 고박장치로 단단히 고정된 수입차 모습. [사진=(평택) 천예선 기자]

26년 경력의 김기문 선장은 “줄 하나가 2t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며 “이런 줄이 앞뒤 각각 2개씩 4개가 고정돼 있어 총 8t의 힘으로 차량을 붙잡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총 13층인 센츄리호는 12층까지 차를 실을 수 있는 공간(데크)으로 돼 있습니다. 13층은 조종실(브리지)과 선원실 등이 위치해 있고 1층(9m)은 바닷물에 잠겨 있습니다.

센츄리호에는 소형 현대차 ‘엑센트’ 기준으로 6000대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루 8시간 작업하면 약 3500대를 실을 수 있으니 만차시키려면 꼬박 이틀이 걸리는 셈입니다. 

좌우 10cm 간격으로 세워진 차량(왼쪽), 차량이 데크 바닥에 고정돼 있는 모습(오른쪽 위), 차량을 고정시키는 고박장치. [사진(평택)=천예선 기자]

참고로, 자동차전용운반선(PCTCㆍPure Car and Truck Carrier)의 수용대수 기준(RT)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소형차 ‘코롤라’입니다. 일본 ‘마이카’ 시대를 연 코롤라의 초기 모델명이었던 RT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국제기준으로 센츄리호의 선적대수를 치면 6500RT입니다. 코롤라가 엑센트보다 조금 작기 때문에 500대가 추가됐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일본차냐고요? 자동차 운반선 시장 1, 2, 3위가 모두 일본 업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계 NYK와 MOL, K-Line가 톱3이고, 노르웨이ㆍ스웨덴의 EUKOR가 4위, 한국의 현대글로비스가 세계 5위입니다. 현대글로비스는 센츄리호와 같은 자동차전용선을 총 59척(자선 22척, 용선 37척)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시 센츄리호로 돌아오죠. 12개의 데크 중 2, 4, 6, 8 데크는 높이 조절이 가능합니다. 두개 층을 합쳐 층고를 최대 5.1m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덕분에 소형차 뿐만 아니라 포클레인 같은 대형건설 중장비나 대형버스도 실을 수 있는 것이죠.

이날 센츄리호에 실린 차는 현대ㆍ기아차가 55%, 나머지 45%는 쌍용차, 한국지엠, 볼보, 폭스바겐 등 수입차와 중장비 등입니다. 

차량 한대를 육지에서 배 안으로 옮기는 작업에는 총 5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운전기사 2~3명, 검수 1명, 고박작업 1명으로, 상당히 노동집약적입니다. 
(위부터)현대글로비스 자동차 전용운반선 모습, 김기문 선장이 브리지(조종실)에서 설명하는 모습, 센츄리호 갑판에 설치된 농구대. [사진=현대글로비스 제공(맨위),(평택)천예선 기자]

이번 센츄리호의 일정은 깁니다. 15일 오후 출항해 인천, 울산을 거쳐 일본에서 차량을 추가로 선적한 뒤 태평양을 횡단해 중남미 칠레, 페루, 콜롬비아에서 차량을 내립니다. 이후 미국 동부을 들러 파나마 운하(태평양과 대서양 연결)를 통과해 다시 중동을 거쳐 돌아올 예정입니다. 총 항해기간은 4~5개월 정도라네요. 

김 선장은 “남미까지 가는데만 경제속도로 1개월이 걸린다”며 “1년 중 9개월 승선하고, 3개월은 휴식기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는 바다 위의 배를 ‘가랑잎’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바람 등 외력에 취약하기 때문이죠. 

김 선장은 “특히 인천항 수문식 도크를 지날 때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도크란 배를 주변이 막힌 곳에 넣고 빼는 구조를 말합니다. 서해안 간만의 차 영향없이 해수면 높이를 일정하게 하기 위한 장치죠.

그는 “인천항 도크 폭이 37m인데 센츄리호 폭은 32.2m”라며 “안전장치 등을 제외하고 실제 도크 유효 폭은 35m로, 자칫 잘못 흔들리면 배가 도크에 닿을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센츄리호 취재 내내 눈에 띈 이등 항해사가 있습니다. 실은 여성 항해사라 내심 놀랐습니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박혜리(27) 이등 항해사는 “항해사 10명 중 1~2명은 여성으로 다른 회사에 비해 많은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매력으로 이 직업을 선택했냐고 묻자 “태평양을 바라보며 브리지(조종실)에서 커피 한잔할 때 벅찬 자부심을 느낀다”며 “외국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한국을 출항해 무사히 다시 돌아왔을 때 '이 큰 배 타고 세계일주를 했다'는 게 가장 뿌듯하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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