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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요리명장’ 박효남, 그가 털어놓은 36년 요리인생
-우리시대 명장셰프 박효남 세종호텔 총주방장 인터뷰

-최고의 맛을 위해 ‘최고의 혀’를 유지하는 프로정신

-총주방장으로, 교수로…“이젠 후학양성 몰두하고 싶어”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옛날 강원도 고성 두메산골에 한 소년이 살았다. 학교가 파하면 소 먹이는 일은 소년의 몫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소를 이끌고 들녘에 나갔다. 밧줄을 매놓으면 소는 알아서 풀을 뜯어먹었다. 자연은 소년의 놀이터였다. 소 먹이러 온 친구들과 함께 감자를 서리했고 강가에서 고기를 잡았다. 감자를 굽고 물고기를 요리하는 일은 소년이 도맡아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8살에 요리를 배웠고, 이후 36년간 오로지 주방에서 조리만 한 사람, 그러니 인생의 3분의 2를 주방에서 산 사람. 마침내 요리사 최고봉이라는 ‘셰프(chef)’에 오른 사람. 두메산골의 그 소년은 박효남 세종호텔 총주방장(53)이다.

타이틀도 많다. 인생의 훈장이랄까. 업계 최연소 힐튼호텔 이사, 외국계 체인호텔의 한국인 총주방장, 프랑스 정부의 농업공로훈장 수여자, 대한민국 요리 명장…. 


대한민국 대표 요리명장 박효남 세종호텔 총주방장. 그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고객에 선뵈는 요리의 맛을 보기 위해 혀를 민감한 상태로 유지코자 하는 철학이 낳은 습관이다. 프랑스 요리로 그는 컸지만, 한식에 대한 연구와 열정을 오늘도 내뿜고 있다. 박 총주방장이 봄요리 레시피를 직접 만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박 총주방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프랑스 요리의 대가다. 박 총주방장은 최근 30여년을 보낸 밀레니엄 서울 힐튼을 떠나 최근 세종호텔에 새 둥지를 틀었다. “글로벌 체인에 뒤지지 않는 로컬 호텔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에서다.

세종호텔 총주방장으로서, 세종사이버대 교수로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짧은 가방끈’으로 요리계에 입성해 치열한 요리업계에서 스스로 힘으로 지금의 명성을 만들었다. 그런 그가 후학양성의 길을 걷기로 한 것도, 오랜동안 몸 담은 곳을 떠나온 것도 본인이 쌓아 온 경험을 나눠야될 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그는 요리사로서 본인의 이야기, 노하우를 담은 ‘요리사들을 위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박효남 총주방장과 함께 요리와 한식,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새로운 인생을 찾기 위해 뭔가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명장’의 자리는 그만큼 일을 하라는 것=30년 몸 담았던 밀레니엄 힐튼을 떠난 것은 그의 확고한 결단 때문이었다. 국내 호텔에서 글로벌 체인 호텔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겠다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인 셈이다. “로컬(국내) 특1급 호텔을 글로벌 체인 호텔 이상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대기업이 만들어낸 콘텐츠가 아니라 국내 시장에 오랫동안 뿌리박아 온 호텔을 글로벌 체인, 대기업 호텔 못잖게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박 총주방장은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대한민국 요리 명장’ 칭호를 받았다. 명장이라는 칭호가 안고 있는 책임감 또한 그를 움직이게한 계기다. 그는 “명장이라는 자리는 정부에서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게 일과 책임을 넘겨 준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내가 갖고 있는 그간의 경험을 우리나라 국가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며 “요리사 선배이자 요리 명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세대의 프로 요리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생각, 대학 강단에 서는 것도 응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처음 대학강단에 설 때는 기대보다는 부담이 더 컸다. 사이버대의 특성상 1인 2,3역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일을 하며 공부를 했던 본인의 과거가 투영됐다. 강의가 편해진 것은 그때부터라고 했다.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학생들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죠.”

▶프랑스 요리가 잘 되는게 배아팠다=프랑스 요리의 대가라 불리는 그다. 명장이란 칭호도, 지금의 그를 만든 것도 그가 접시에 담아온 프랑스 요리 덕분이었다. 그런 그가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 총주방장은 프랑스 요리를 하면서 ‘한식’에 대한 욕심이 더 생겼다고 했다.

“프랑스 요리는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받는다. 프랑스 요리를 하면서도 프랑스 요리만 잘되는게 사실 배가 아프더라.”

삼시세끼, 보통의 한국사람들이 평범하게 먹는 모든 것이 한식의 범주 안에 들지만 전문가의 세계에서 그는 한식에 관한한 비전문가다. 그래서 박 총주방장은 그가 잘 하는 ‘프랑스 요리’에 한식을 접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프랑스 요리에 한국의 재료를 접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리는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깻잎을 예로 들어보자. 깻잎은 특유의 향 때문에 외국인들이 꺼려하는 식재 중 하나다. 박 총주방장은 이 깻잎을 이용해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레시피를 개발, 특허를 받았다. 박 총주방장은 “로스트 비프(Roast Beef)를 할때 깻잎에 싸서 직화를 하면 육즙이 깻잎에 쌓여 갇혀 있으면서도 은은하게 깻잎향이 난다”며 “고기만 먹었을 때의 느끼함을 덜면서도 한식만이 가진 독특한 풍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최근 그는 프랑스 코스요리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스프에 ‘쌀’을 넣은 요리를 선보였다. “주방에서 버섯크림스프를 끓이는데 보통 스프를 끓이면 양파와 버섯, 버터, 밀가루를 넣고 만드는 것이 기본적인 레시피다. 나는 거기에 쌀을 넣고 참기름으로 맛을 낸다. 우리나라 재료를 최대한 써서 한국의 맛을 끌어올리는 것이죠.”

한국인의 주식이자 ‘소울푸드’라 가히 이름붙일만한 쌀을 스프에 접목한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쌀 소비가 줄고 있다는 보도들이 많고 실제로 줄고 있다”며 “쌀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충분히 소비가 돼야 농가나 국가 전체로도 잘 살게 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한국사람이라 그렇다. 한식에 대한 사랑은 그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과거 국가적 과제로 한식의 세계화를 외쳤고 실제로 수많은 셰프들이 한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노력과 구호에 비해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숙제들이 있다. 그는 2010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정상급 인사들에게 한식 요리를 선보였던 당시를 떠올렸다. “셰프가 선보이는 한식이라고 하면 주목도가 높아진다. 일종에 평범한 한식에 포장을 하는 셈인데, 우리나라 음식도 포장을 예쁘게 하면 팔릴 수 밖에 없고, 그 역할을 내가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요리는 비싸다고 느끼면 실패=“(요리가)비싸다고 생각을 하면 돈에 비해 요리가 그 값을 못했다는 뜻이다.”

호텔 레스토랑의 문턱이 과거보다 많이 낮아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성비’를 따졌을 때 특급호텔 레스토랑은 쉽게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요리사의 숙제는 손님이 요리를 먹고서 ‘비싸다’는 생각이 안들게끔 요리의 질적인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호텔레스토랑은 호텔 전체의 이미지를 만든다. 호텔 레스토랑의 명성은 하루 아침에 쌓아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길게 보고 하나하나씩 만들어나가야 비로소 인정받는 레스토랑이 된다. 박 총주방장은 “레스토랑은 장기간 길게 보고 투자를 해야하는 곳”이라고 했다.

“객실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자고 맛있는 식사를 하는 호텔의 모든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시너지를 이뤄야 됩니다. 때문에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같이 쌓아야지 호텔의 레벨을 끌어올릴 수 있어요.”

그가 생각하는 호텔의 명성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세종호텔의 직원들이 처음보는 사람과 명함을 교환했을 때 명함에 적혀져 있는 세종호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호텔이 돼야하고, 그 명성을 만드는 것은 직원들 스스로입니다.”

세종호텔이 내놓는 요리에 있어서만큼은 그의 책임하에 있다. 관리자이자 책임자지만 박 총주방장은 “본인 하나만 움직여서 돌아가는 주방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주방장이 없어도 기존의 맛을 그대로 낼 수 있도록 주방을 관리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본인의 역할이다.

“내가 호텔을 옮겼지만 여전히 예전 호텔의 레스토랑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건 뭐냐면 총주방장 한 사람이 나왔다고 해서 장사가 되고 안되고 따지게 되는 상황이 돼선 안된다는 말이죠. 주방이 150명이 있다면 모두가 함께 움직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혀를 간직해야 최고의 맛을 찾아낸다=박 총주방장은 아침을 먹지 않는다. 고객에게 요리를 내기 전에 먼저 먹지않는다는 철학, 그리고 고객에게 내는 요리의 ‘맛’을 보기 위해 혀를 민감한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철칙이 만들어낸 습관이다. 최고의 셰프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그는 “소금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운동선수가 단련을 통해 몸을 만들어 내듯, 혀를 잘 관리해야 최고의 맛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라고 생각한다면 몸을 만들 듯 최고의 혀를 만들어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제대로된 음식에 맛을 감별하는 사람들이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죠.”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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