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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FA 믿다가 큰코 다친 美 군무원
범죄의 재구성
주한미군 소속 군무원이었던 T(31)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10시 30분경 서울 이태원에서 자신의 콜벳 승용차를 몰고 가다 음주단속을 벌이고 있는 한국 경찰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황한 T씨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역주행을 해서 달아나기로 결심을 합니다.

반대편 차선에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과감하게 노란 중앙선을 넘어 빠져 나가보려고 했지만 이를 발견한 서모(40) 경사에게 정지하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미 도망하기로 마음 먹은 상태에서 T씨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고, 서 경사는 이를 육탄저지하는 과정에서 발목 인대가 늘어나고 몸에 찰과상을 입게 됩니다.

그렇게 콜벳은 뒤꽁무니 빼듯 단속 현장을 빠져 나갔고, 서 경사는 입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우리 경찰이 T씨의 차량신원을 파악했음에도 미군 측의 협조가 없으면 조사를 벌일 수 없었다는 점이었죠.

이는 현행 한ㆍ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른 것인데, 협정에 따르면 한국 경찰이 미군(미군무원 포함)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을 땐 미 헌병으로 신병을 넘기기 전에 1차적으로 초동 수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범으로 검거하지 못한 경우엔 미군이 경찰의 출석요구에 응해야 본격적인 조사를 할 수 있어 규정의 불합리성 논란이 지속 제기돼 왔고요. T씨도 이런 규정을 알고 어떻게든 현장에서 잡히지 않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그러다 T씨에 대한 조사는 용산경찰서가 미군 측에 출석요구서를 보낸 뒤 14시간만에 이뤄지게 됐습니다.

조사에서 음주측정 결과 T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였고, 약물테스트도 음성으로 나왔습니다. 사건 발생 후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죠. T씨는 진술에서 역주행 사실과 경찰을 치고 달아난 일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음주 상태도 아니었고, 단지 심장병 때문에 병원을 찾던 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고 모습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T씨가 앞을 가로막는 서 경사를 치고 달아나는 모습이 찍혀 있습니다. T씨를 진료한 의사도 그에게 심장병이 없고 가슴 통증이 있더라도 기억상실과는 무관하다는 의견을 냈죠. T씨는 조사 후 미 헌병으로 인도됐는데, 우리 경찰은 미군의 협조 없이는 수사나 처벌에 대해 주도적으로 진행할 만한 수단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T씨는 지난 20일 미군으로부터 고용계약 해지 통보를 받게 됩니다.

T씨가 이젠 더 이상 SOFA의 적용을 받는 미군 소속이 아니게 됐다는 것입니다. T씨는 갑자기 하늘이 까맣게 느꼈졌을 겁니다. 미군으로서도 이미 T씨의 고의성이 충분히 입증된 상황에서 계속 보호만 하고 있을 경우 한국 내 여론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손에서 벗어난 T씨에 대해 용산서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지난 25일 구속할 수 있게 됐습니다. T씨는 SOFA만 믿다 결국 SOFA에 ‘배신’을 당하고 철창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것입니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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