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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의 오늘] 사상 최악의 항공기 사고 ‘테네리페 참사’
[HOOC=정찬수 기자] 1977년 3월 27일 오후 5시경 그란 카나리아 섬의 라스 팔마스 공항을 향해 이륙하던 두 여객기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총 583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당한 사상 최악의 항공기 인명 사고인 ‘페네리페 참사’입니다. 단일 사고로는 가장 많은 탑승객이 사망한, 항공 업계 사상 최악의 참사입니다. 국내 언론들도 이 사고를 당시 ‘해외 10대 뉴스’에 포함시키며 대서특필했습니다.


사고는 평화롭고 화창한 날에 예고없이 찾아왔습니다. 암스테르담발 KLM 소속 항공기(이하 KLM)와 로스앤젤레스발 팬암 소속 항공기(이하 팬암)은 카나리아 제도에 다다를 때 즈음 “분리독립파 조직이 공항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교신을 듣습니다. 팰머스 공항이 임시 폐쇄되면서 두 항공기는 변두리에 있는 로스 로데오 공항으로 회항합니다. 주말을 맞아 공항에 대기중이던 관제사는 단 두 명, 이들은 테러 위협으로 접근하는 크고 작은 항공기들을 모두 떠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스 로데오 공항에서 약 2시간, 팬암기가 이륙준비를 하는 사이 KLM기는 급유를 받고 있었습니다. 왜 하필 그때 KLM 기장은 연료를 가득 채우라고 지시를 했을까요? KLM 기장은 부조종사와 기관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윽박지르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연료를 가득 채워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KLM기의 이륙 지연으로 좁은 활주로 위에 있던 팬암기도 덩달아 발이 묶인 것은 당연합니다. 급유가 끝난 뒤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KLM기의 이륙은 더 늦어졌습니다. 


모든 이륙 준비가 끝났을 때 관제탑은 KLM기를 향해 이륙을 위해 활주로 끝에서 180도 유턴 하라고 지시합니다. 좁은 활주로였지만 기장은 아슬아슬하게 기체를 돌리는데 성공합니다. 이때 팬암기도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활주로로 진입합니다. 하늘마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외신들은 당시 기상상태는 화창했지만, 사고가 나기 직전 화산재로 인해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고 전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던 팬암기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느린 속도로 활주로를 헤맸습니다.

악재와 오류, 실수는 한꺼번에 중첩됩니다. 우선 관제사는 KLM기가 이륙하겠다는 무전에 즉각적으로 답을 하지 못합니다. 다른 언어로 인해 약 2초 뒤에 답을 한 것이죠. KLM 기장은 혼선으로 인해 ‘준비가 될 때까지 대기하라’는 지시를 듣지 못하고 기체의 속도를 올립니다. 관제사와 KLM기의 교신을 들은 팬암기 측은 활주로에 있다고 외치지만, 이 역시 전파 잡음으로 왜곡돼 전달되지 않습니다. KLM 부기장과 기관사가 기장에게 이륙을 저지하는 발언을 하지만, 심적으로 급했던 기장은 이를 묵살하고 속도를 더 높입니다.

이륙 직전 290㎞/h에 육박한 KLM기의 속도 앞에 팬암기는 손을 놓을 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땅을 뒤흔든 충돌과 폭발. 두 항공기는 불이 붙은 채로 두 동강 나 활주로에 널부러진 뒤 대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충돌 부위에 타고 있던 KLM기의 승객 대다수는 순식간에 사망했습니다. 직접 충돌을 면한 팬암기 전면부의 기장과 부기장이 정신이 들었을 때 화재는 이미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팬암기에 타고 있던 일부 승객은 탈출했지만, 대다수가 불길 속에 갇혔습니다. 시골 변두리에 있는 공항의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살릴 수 있었던 소수의 인원마저 절망의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죠. 


페네리페 참사는 거짓 테러 정보와 전파장애, 교신 실수, 상명하복의 부작용, 안전불감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인재(人災)입니다. 맞물려 돌아가던 잔혹한 운명의 톱니바퀴 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그토록 많은 사상자를 내진 않았겠죠. 사건 이후 비표준 용어 투성이이던 교신 용어는 통일됐고, 전 세계 공항의 긴급구조 시스템은 보완됐습니다. 항공기 참사는 발생할 경우, 어떤 사고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더욱 관리와 주의가 필요합니다. 지난 12월 국내 항공사 임원의 회항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일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대목이죠.

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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