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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롤랑바르트의 마지막 강의는 소설의 모든 것
‘소를 싣고/조그마한 배가 강을 건너네/저녁 비를 맞으며’(쉬키)

‘안개 낀 날/커다란 방이/휑하고 고요하네’(잇샤, 뮈니에)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세계적인 구조주의 언어학자이자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자신을 매혹시켰다고 꼽은 두 편의 일본 하이쿠다. 바르트는 말년에 소설쓰기의 욕망에 사로잡혔고, 자신이 쓰고자 한 소설의 모델로 하이쿠의 형식과 내용을 꼽았다. 그는 하이쿠의 현재 순간의 지시성에 매력을 느꼈다. 특히 그는 하이쿠의 허공에 떠있을 짧은 순간의 포착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글쓰기의 형식을 발견했다.

바르트는 이 두 편의 하이쿠의 매력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지대가 하나 있다고 설명한다. “바로 가벼운 스침의 에로틱한 지대입니다. 금욕 작업, 생략작업, 그리고 군더더기의 부재를 동반하는 하나의 형식, 하나의 문장과 하나의 지시체 사이의 스침입니다”

책 뒤에는 바르트가 준비했던 세미나 텍스트가 들어있다. 세미나의 주제는 폴 나다르가 포착한 프루스트와 관련된 몇몇 사진에 대한 해설이다. 프루스트가 알고 지냈을 수도 있는 인물들의 초상을 통해 바르트는 실재인물들과의 연계성 속에서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일러준다.

전율을 일으키는 바르트의 이런 직관적 해석은 그의 강의에서 빛을 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8년부터 1980년 3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바르트가 했던 강의와 세미나의 녹취록을 담은 ‘롤랑바르트, 마지막 강의’(민음사)는 소설쓰기의 욕망에 들뜬 한 남자를 보여준다. 이 책은 바르트 사후 프랑스 대표 인문출판사 쇠이유에서 2003년 출간된 것으로 바르트의 마지막 유고 저작인 셈이다.

롤랑 바르트의 이 마지막 강의는 소설에 바쳐져 있다. 600여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은 ‘소설의 준비:삶에서 작품으로’와 ‘소설의 준비:의지로서의 작품’으로 나뉘어 소설을 구성하는 요소들부터 작가의 쓰기에 대한 집착과 욕망, 문학의 본질까지 소설에 관한 모든 것을 아울러 낸다.

바르트의 소설쓰기의 욕망은 프루스트, 정확히는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불이 지펴진듯 싶다. 바르트는 기억하고 쓰기를 통해 존재와 사물이 의미를 갖고 영원불멸한 것이 된다는 걸 프루스트를 통해 확인한다. 그런 기억의 소설을 쓰고자 하지만 그는 스스로 기억력이 모자라 과거의 기억을 서술하는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얘기한다. 따라서 그가 택한 방식은 어떤 한 사물의 본질이 현현하는 현재 순간의 글쓰기다. 그는 이를 ‘메모하기’라 부르는데, 바르트는 일본의 하이쿠를 통해 메모에서 소설로 넘어가는 한 형식을 발견한 것이다.


바르트가 쓰기에서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것은 개인사와 관련이 있다. 1977년 10월25일 그의 존재이유와도 같았던 어머니의 죽음이다. 바르트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는 극도의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그러던 중 1979년 4월15일 바르트는 카사블랑카에서 번쩍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바르트는 “문학에 입문하자, 글쓰기에 입문하자는 아주 낡은 단어 두 개가 뇌를 스쳤다”고 썼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문학적 개종과 같은 무엇’이 내부에서 일어났다. 강의와 문학에의 입문을 결합한 기획, 이를 계기로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해보고자 하는 격렬한 욕망에 휩싸인 것이다. 그의 마지막 강의는 그런 기획의 시작이었고, 이 책은 그런 결심의 산물이다,

바르트는 쓰기 행위를 사랑받고, 인정받고, 잊지 않으려는 욕망이자 이상 자아를 향한 행위로 본다.이 행위의 주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한동안 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은 자는 헛된 삶, 역사의 허무속으로 떨어지지 않고 불멸하게 된다.

쓰기 행위는 타인들로부터 사랑 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과 연결되는데, 이는 타인을 유혹하는 글쓰기, 가치를 내보이는 글쓰기로 귀결된다. 따라서 바르트는 ‘나는 쓴다, 그러므로 나는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바르트는 자신이 쓴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글을 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책은 소설쓰기의 전반을 다룬다. 글쓰기의 욕망과 환상, 글쓰기 의지를 비롯해 글쓰기 행위의 산물인 작품이 나올때까지의 전 과정을 훑어내려간다. 또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장소,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 사소한 소품 등에 대한 성찰도 포함한다. 그 뿐 아니라 단테, 프루스트, 플로베르, 미슐레, 발레리, 보들레르, 말라르메, 카프카, 톨스토이 등 시대의 거장들을 그만의 독법으로 해석해 나간다. 강의체 대로 구성한 책은 현란한 수사와 말의 비약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실히 채워주는 주석 덕에 지적 여정을 즐길 수 있다.

2015년은 롤랑 바르트 탄생 100주년이자 3월26일은 바르트가 사망한지 35주기가 되는 날이다. 바르트는 문학의 존재이유를 ‘디아포라’로서의 문학에서 찾았다. 디아포라(diaphora)는 원래 구별, 변이체 등의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바르트는 이를 하나의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해 주는 것으로 정의했다. 말하자면 문학은 체계, 일반화, 법칙에 맞서 존재가 가진 고유성, 개별성을 외치는 것이다. 바르트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롤랑 바르트 지음, 변광배 옮김/민음사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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