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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 ‘요정’르포] “김영란법요? 그렇다고 접대가 사라지겠어요”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김영란법이요? 아, 그 돈 못 주게 하는 거. 근데 그렇다고 정말 고급 접대가 없어지겠어요? 한국 사람들 어떻게든 다 방법을 찾아내서 할텐데요.”

서울 강남의 한 요정에서 일하는 여성 접대부는 김영란법에 대해 얘기를 하자 이렇게 말했다.

‘김영란법’으로 나라가 시끌시끌한 가운데 꽃샘추위가 몰아친 4일 저녁 ‘대기업 홍보담당의 접대를 받는 기자’ 설정으로 본지 기자들이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고급 요정을 찾았다.


1인당 식사비가 38만원에 달하는 곳 답게 주차장에는 벤츠와 체어맨, 에쿠스 같은 고급차들이 즐비했다.

입구로 들어와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안내를 받아 3층으로 이동했다. 복도와 계단마다 고풍스런 서랍장과 장식품들이 놓여 있어 동양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방 안에 들어서자 고급스런 자개상에 등받이가 있는 3개의 좌식 의자가 있고 의자 옆에는 방석이 놓여 있었다. 접대를 하는 둘과 달리 접대를 받는 사람은 양 옆으로 방석이 깔려 있어 접대부가 두 명까지 앉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선택을 받은 접대부 세 명이 들어와 옆 자리에 앉자 메뉴를 고를 것도 없이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각종 회, 갈비찜, 전, 매생이국, 조기, 홍어무침, 생굴, 새우, 익힌 송이버섯, 연어 등 맛깔스런 요리가 수차례에 걸쳐 상에 올라왔다. 술은 무엇이든 가능했다. 양주만 1인당 1병이 제공되고, 화요나 법주 등 동양주부터 소주 맥주 등의 술은 무제한으로 제공됐다.

접대부들은 손님들에게 ‘좋아하는 음식, 입에 맞는 음식’을 끊임없이 물으며 손님들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접시에 담아주거나 젓가락으로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중년의 여성이 잠시 들어와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고 인사하며 접대부에게 “손님들 확실히 모시라”고 당부했다. 이때부터 손님의 손을 살포시 잡는 등 약간의 스킨십이 시작됐지만 결코 과하지는 않았다.

한복을 곱게 입은 그녀들의 저고리는 반투명이라 속살이 살짝 비쳤다.

접대부 A는 “과거에 종로 쪽에 잘 나가던 몇 군데 요정들이 다 강남으로 내려와서 하나의 건물에 둥지를 튼 걸로 알고 있다”며 “각 요정의 영업사장들이 단골을 모셔오면서 요정 업계가 강북에서 강남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설명했다.

그녀들은 손님들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등을 묻기도 했다. 신분 노출을 꺼려하자 “저 입 무거워요”라고 안심을 시킨다.

또 다른 접대부 B는 “영감님들이 오시면 우리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한다”며 “오늘은 젊은 분들이 와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즈음엔 접대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친구들 모임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B 는 “주로 기업인들이 많고 특히 IT업계 쪽 분들이 화끈하게 놀고 간다. 고위 공무원 분들도 오시는 것 같은데 신분을 잘 밝히지 않아도 대화를 들으면 티가 난다”고 말했다.

외국인 바이어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접대부들은 이를 대비해 외국어를 익히기도 한다.

천장에 달린 전등 또한 여러 개 있어 밝기 조절이 가능했다. 한창 분위기가 달아 오르자 접대부는 조명을 몇개 꺼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식사를 얼추 마치자 부채춤부터 가야금 병창, 살풀이, 어우동, 오고쇼가 장구를 치는 고수와 대금 반주에 맞춰 차례로 진행됐다. 접대부는 이들이 모두 국악 전공자들이라고 귀띔했다.

공연이 끝나고 얼마 후 매니저는 접대부를 내보내고 2차를 선택할지 물었다. 매니저는 “오늘 경찰의 단속이 있어 지정 호텔로 갈 수 없다. 대신 스스로 호텔을 찾아가는 조건 하에 2차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밤이 깊어졌지만 방 너머 다른 방에서 국악이 울리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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