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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김래원, “‘인간극장’처럼 사실적인 연기...그게 진정성 아닌가요”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굶주린 짐승처럼 움푹 패인 얼굴에 서글서글했던 눈빛은 사라졌다. 시궁창을 기어오른 개천의 용, 가족까지 버려가며 욕망을 향해 질주하던 엘리트 검사는 뇌종양 진단을 받고도 끝끝내 꼿꼿했다. 내내 나빴다가 생의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돌변한 내부고발자. 목적으로 움직인, 말이 좋아 ‘개과천선’이었다. 그 눈엔 허기 대신 허무가 내려앉았다. 꼴찌(6.7%)로 출발해 일등(14.8%)으로 안방을 빠져나온 SBS 드라마 ‘펀치’에서 박정환 역을 연기한 김래원을 최근 만났다.

“박정환을 보면서 인생관의 변화가 왔다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박정환이 충분히 이해는 돼요. 하지만 자라온 환경은 직접적으로 모르고…. 저야 뭐, 유복하게 자랐고.(웃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어렵게 자라 성공하면 끝까지 오르고 싶은게 남자의 욕망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무상하고 헛된 모습이라는 걸 시한부라는 설정으로 표현했죠.”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주인공들의 목적의식을 잘 살려주는 간결한 도치법의 대사, 그러면서도 문학의 영역에 근접한 ‘말들의 성찬’이 차려졌기에 김래원은 내면 연기에 집중했다. 드러내기 보단 절제된 연기였다. “영화와는 달리 드라마의 연기는 시청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감정을 극대화시켜 표현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김래원으로서는 선택인 셈이었다.

“감독님께서 처음엔 연기를 좀 하라고, 대학원 연기 말고 중학생 수준의 연기를 하라고 하셨죠. 보여지는 연기가 아닌 내면연기를 했던 게 박정환에게 연민을 불러올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아요. ‘인간극장’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들의 뒷모습만 봐도 슬픔이 느껴지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게 진정성을 갖는 거잖아요.”

영화 ‘강남 1970’ 촬영 당시 12㎏이나 감량했던 건 ‘펀치’ 속 시한부 검사를 연기하는 데에도 괜찮은 효과를 봤다. “잘 붓는 체질인 탓에 체중감량을 했어요. 드라마를 하면서 4~5㎏ 정도가 더 빠졌죠.” 빠듯하게 돌아가는 촬영현장에서 끼니도 제 때 챙겨먹지 못했다. 잠을 잘 시간도 줄어드니 “진짜 아픈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적잖이 들었다. “드라마는 배우의 비주얼이 중요한데, 전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의도적으로 저녁도 거르면서 그 모습을 유지했죠.”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그 덕에 김래원이 살리고 싶었던 내면의 무수히 많은 감정이 그의 눈에 담겨 시청자에게 전달됐다. 삶에 대한 집착, 거악에 대한 분노, 아이에 대한 사랑, 어머니를 향한 미안함, 짧은 생을 앞둔 슬픔과 두려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혹자는 박정환에게 연민을, 혹자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데뷔 20년, 정점을 찍었던 청춘스타로의 20대를 보낸 이후 세간이 말하기를 ‘슬럼프’였던 시절도 겪었다. “그 때는 멋있는 역할을 만나서 인기를 얻고 싶었죠. 돋보이고 싶었어요. 주위의 극찬에 들떠 무너졌죠. 연기에 허세가 들어가고, 처음 가진 마음이 흔들리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김래원이 ‘펀치’ 이후 쏟아지는 호평에 연연하지 않는 이유다. “기대는 했지만 예상치 못한 반응이긴 해요. 그렇다고 제가 크게 들뜨기엔…. 이러다 다음 작품에서 무너질 수도 있죠. 더 좋은 연기를 했는데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고요. 이 모든 게 배우로서 살아가는 과정으로 끝날 것 같아요.”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지는 권력욕의 중심에서 석 달을 살았던 김래원의 말과 눈엔 여전히 박정환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욕망’은 아니라도 ‘욕심’은 있다. 아니면 소망이랄까. “연기에 대한 욕심이에요. 점점 무뎌지는 것 같은데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더라고요. ‘펀치’ 최종회에서 아쉬운 게 있어요. 마지막 쇼크가 와서 못 일어날 때였어요. 그 때 세상을 향한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더 임팩트 있지 않았을까요. 두 시간만 더 잤으면 그 생각을 했을텐데. 이 얘기를 소속사 대표님한테 했더니 그러시더라고요. ‘야, 너 그만 좀 해라. 진짜 대단하다.’”


/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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