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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행복을 배달합니다!”
[헤럴드경제=황유진 기자]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도전’이라는 단어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청년실업 38만 명 시대. 대학 입학이 곧 ‘백수 예약’의 지름길이 되어버린 지금. 일찍이 ‘안분지족’의 달관과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배운 청년들에게 꿈과 모험은 남의 이야기가 돼 버렸다.

그런 그들에게 “용기는 두려워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바로 음식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다. 최근 서울 석촌동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아무리 힘들어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옹기종기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만큼은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김 대표는 음식과 IT를 접목한 ‘푸드테크’를 통해 행복을 나누는 경영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쫄딱 망했던’ 시련을 딛고 또 다시 음식 배달앱 서비스로 창업에 나선 김 대표는 이제 “이만하면 성공하지 않았냐”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아직은 갈 길이 구만리’라도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 그가 누구나 ‘실패’를 할 수 있고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희망을 내려놓은 젊은이들에게 조금의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 대표는 자신의 ‘흑역사’부터 서슴없이 털어놨다.


▶첫 사업, “전세금 날리고 쫄딱 망해”= 김 대표는 서울 옥수동 달동네에서 4형제의 막내로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똑같은 걸 하는 것이 싫었다고 했다. 천편일률적인 학교 생활이 재미있었을 리 없다. 그는 스스로 “학교 공부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신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형편이 어려워 학창시절 미술학원도 한 번 가보지 못했지만 다행스럽게 서울예대에 입학해 실내 건축을 전공하고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2007년 무렵 다니던 회사를 나와 아내와 함께 수제 디자인 가구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6개월만에 전세 보증금을 다 날리고 억대의 빚더미에 앉았다. 남들은 ‘실패’라고 말했지만 당시 김 대표는 훗날을 위한 ‘경험’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일자리를 구해 네이버(당시 NHN)에 들어갔다. 첫 사업에서 진 빚을 다 청산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세상을 변화시키는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꿈틀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람들이 매일 먹는 음식 비즈니스 분야가 유독 아날로그 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음식에 IT를 접목시켰다. ‘우와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우아한 세상’이라는 뜻의 ‘우아한형제들’을 그렇게 창업하고 직접 길거리에서 주운 전단지의 식당정보 5만개를 모아 2010년 6월 ‘배달의 민족’ 서비스를 시작했다.

5명 내외의 구성원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김 대표의 시작은 당장 내일을 담보할 수 없을 만큼 불안했다. 힘든 시절을 버티는 힘은 성공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서 나왔다.

그는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음식 주문의 몫은 항상 막내들에게 돌아간다. 그들이 혹할 만한 편리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공습관? “하루도 빠짐없이 쓰는 ‘자금일지’”=‘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습관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조직’의 습관도 중요하다. 우아한형제들의 성공 습관 중 하나는 ‘자금일지’를 쓰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미천한 경험으로 회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재무 상태를 투명하게 공유하기 위해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 10원짜리 하나라도 돈의 입출을 꼬박꼬박 자금일지에 기록하고 이를 창업 동료들과 메일로 함께 공유하는 것이었다”면서 “기존의 방식을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이 급성장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으로 김 대표는 주저없이 ‘사람’을 꼽았다.

어려운 시절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줬던 아내뿐만 아니라 현재 우아한형제들 CFO(최고재무책임자)를 맡고 있는 박일한 이사도 그 중 한 명이다. 박 이사는 김 대표의 중학교 동창이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우아한형제들이 수 억원에서 많게는 40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받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준 친구이자 파트너가 바로 박일한 이사”라면서 “각자 회계와 디자인 분야에서 다른 길을 걷다가 이렇게 함께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럴 때 마다 미래를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러브레터 받는 대표, “다 함께 행복하자”=김 대표는 “혼자 행복하고 성공하는 방법론만이 무수한 데, 요즘 들어서는 내가 행복하면 내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점점 더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의 독특한 사내문화도 이런 생각에서 기인한다. 직원들에 대한 인사 평가가 없다. 직급도 없다. 인사팀 대신 직원들을 보살펴주는 개념의 ‘피플팀’을 만들었다. 인센티브 제도도 없앴다.

그는 “직원들끼리의 경쟁은 단기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직원들 사이의 협동과 팀워크를 약화시킨다”고 소신을 밝혔다.

다른 기업에는 없는 독특한 제도도 많다.

금액이 얼마든 직원들의 도서구입비는 무제한으로 지원한다. 가족의 생일에 조기 퇴근하는 제도인 ‘지만가’(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 오후에 출근하는 ‘4.5일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게 하다보니 지난해 12월에는 잡플래닛과 포춘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50개 기업’으로 뽑혀 중소기업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가맹 음식점 사장님들도 함께 행복해지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면서 “음식점 사장님들이 행복해지면 결국엔 맛있는 음식을 만들테니, 배달의민족 이용자들도 행복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배달앱을 두고 빚어졌던 수수료 논쟁의 한 가운데서 김 대표는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결국에는 가맹업주들도 체감할 만큼의 지원책을 다양하게 제공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가맹업주들을 위한 ‘사장님 사이트’를 개편하고, ‘배달 아카데미’를 최근 시작한 것도 그 연장선이고 실제 매출이 오른 음식점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컨설팅 프로그램 ‘꽃보다 매출’도 음식점 사장님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 직원들의 부모님이나 음식점 사장님들이 감사 편지를 종종 보내주시는 데, 그런 사연을 읽을 때 마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자’는 초심을 떠올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대표님, 이래도 됩니까?”=배달의민족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톡톡튀는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기발한 카피와 독특한 설정은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눈길을 끄는 각종 홍보물에는 남들이 다 하는 것은 하기 싫어하는 김 대표의 성격이 녹아있다.

16기가 USB 메모리(이동저장장치)의 이름을 ‘이런 십육기가’로 짓고 부장님이 일을 시킬 때 쓰라고 해석을 붙여놓는가 하면, 가방에는 ‘나는 당신의 든든한 빽’이라는 문구를 새기는 등이 그 예다. 누구나 한 번 보면 ‘씩’ 웃게 되는 유머러스한 카피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작업을 할 때마다 직원들은 “정말 이렇게 해도 될까요”라고 되묻곤 하지만, 사실 그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대표님,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설마, 이걸 진짜 시도하시려고요?” 하는 말이다.

김 대표는 “모두가 물음표(?)를 던질 때 나는 느낌표(!)로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카피를 전면에 내세운 명화편 광고를 시작으로 우아한형제들의 광고는 ‘2014 대한민국 광고대상’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화제가 됐었다. 김 대표는 “올해 나올 광고는 또 다른 차원에서 기획, 제작될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다”고 전했다.

▶“‘푸드테크’ 접목, ‘음식’에 집중하겠다”=우아한형제들은 지난 3~4년 동안 짧은 기간에 기반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달 시장과 배달의민족 서비스의 가치는 투자자들이 먼저 알아봤다. 매년 유치하는 투자 규모가 김 대표 스스로도 놀랄 만큼 커졌다. 2011년 4월 본엔젤스 장병규 대표가 우아한형제들에 3억원을 투자했다. 2012년에는 알토스벤처스ㆍ스톤브릿지 캐피털ㆍIMM인베스트먼트에서 22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도 안됐을 때 배달의민족 다운로드 건수가 500만 건을 돌파하는 등 성과를 내자 2014년 1월에는 알토스벤처스 등으로부터 12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으로부터 4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에 이르렀다.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면서 운신의 폭도 넓어졌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11월, 네이버 라인과 손잡고 ‘라인 와우(LINE Wow)’를 일본에서 출시하면서 프리미엄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도 발을 디뎠다.

김 대표는 “음식에만 집중해도 할 수 있는 비즈니스 영역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분간 음식과 IT를 접목한 ‘푸드테크’ 비즈니스에 집중할 계획”이라면서 “전체 13조 규모의 배달시장에서 5조원 이상을 책임지는 사업체로 우아한형제들을 키우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밝혔다.

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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