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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홍대앞에 몇 안 남은…그래서 지키고픈 낭만 ‘경록절’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2월11일(수) 8시~ 홍대 클럽:<에반스라운지> 캡틴락♡의 열여덟 번째 생일잔치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언제나 립스틱 마르지않는 캡틴락의 입술처럼 뜨거운 용광로~~큰롤♡나이트 함께해요. 모두 보고 싶네요^^/”

지난 9일 오후 기자의 전화로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발신자는 홍대 인디신의 터줏대감인 밴드 크라잉넛의 리더 한경록입니다. 달력을 살펴본 기자는 웃음부터 나오더군요. “이틀 뒤 홍대 앞에서 제대로 술판이 벌어지겠구나!”

홍대 인디 신을 사랑하는 크라잉넛의 지인들이라면 누구나 매년 2월 초쯤 한통의 문자메시지를 기다립니다. 그 문자메시지는 한경록의 생일잔치, 이른바 홍대 3대 명절 중 하나인 ‘경록절’ 초대장입니다. ‘경록절’은 크리스마스 이브, 할로윈 데이와 더불어 ‘홍대앞 3대 명절’로 불립니다. 

사진 설명 :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교동 에반스라운지에서 열린 밴드 크라잉넛의 리더 한경록의 생일잔치 ‘경록절’ 현장.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약 10여 년 전, 군에서 제대한 한경록이 동료 뮤지션들을 초대해 자신의 생일 잔치를 크게 벌인 것이 ‘경록절’의 시작입니다. 이후 한경록은 매년 많은 동료 뮤지션들을 자신의 생일잔치에 초대했고, 초대된 손님들은 축하 공연으로 화답했죠. 매년 수백 명의 손님들이 찾는 거대한 행사로 커지다보니 한경록의 생일은 언젠가부터 ‘경록절’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경록절에 초대 받아야만 진짜 홍대 인디 뮤지션’이라는 농담이 진담처럼 통할 정도이죠. 여기에 한경록이 모든 술값을 부담하는 ‘전통’ 때문에 주머니 가벼운 인디 뮤지션들에게 이만한 잔칫상이 없습니다.

올해 ‘경록절’은 지난 11일 오후 8시 홍대 클럽 에반스라운지에서 열렸습니다. 지난해 ‘경록절’은 홍대 앞의 한 치킨집에서 열렸는데 찾은 손님들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죠. 이에 한경록은 올해 ‘경록절’을 지난해보다 넓은 공간인 클럽 전체를 빌려 열었습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만석이 됐습니다.


한경록은 “지난해 ‘경록절’에는 생맥주를 32만CC를 마셨다. 올해엔 40만cc를 주문해 놓았으니 반드시 다 마셔야 한다”며 유쾌하게 잔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밴드 무드살롱(Moodsalon)의 오프닝 공연을 시작으로 유발이의 소풍, 갤럭시 익스프레스, 동료 뮤지션들의 공연이 차례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주인공인 한경록의 밴드 크라잉넛의 자축 공연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음악계의 대선배인 ‘작은거인’ 김수철의 신들린 기타 연주는 잔치에 참석한 많은 뮤지션들의 탄성을 자아낸 멋진 장면이었죠.

‘경록절’은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동료 뮤지션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는 교류의 장이기도 합니다. 해리빅버튼의 이성수, 로다운30의 김락건, 좋아서하는밴드의 손현, 코어매거진의 이동훈, 미미시스터즈, 술탄오브더디스코의 김간지, 기타리스트 하헌진 등 기자와 오랜만에 인사를 나눈 뮤지션 만해도 한둘이 아니었을 정도니까요. 여기에 음악 업계 종사자들도 다수 잔치에 참여하니 이만한 네트워크 파티도 없습니다. ‘핫한’ 신인부터 중견까지 세대를 망라하는 수많은 뮤지션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록페스티벌인지 생일잔치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이제 홍대앞에서 낭만은 옛 이야기가 된 지 오래입니다.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일궈놓은 홍대앞의 독특한 거리 문화는 놀랍도록 빠른 상업화 속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거리를 일궜던 문화예술인들은 설 곳을 잃고 문래, 금천 등 언저리로 향했습니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빈자리에 들어서자 이를 견딜 수 없는 작지만 특색 있는 가게들은 상수동, 합정동, 망원동 등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문을 닫았죠. 그런 홍대앞의 현실 속에서 ‘경록절’은 몇 남지 않은 낭만입니다. 매년 자신의 생일을 이렇게 행복하게 보내고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해가 갈수록 낭만이 사라지는 홍대 앞이지만, 앞으로도 ‘캡틴락’이 매년 술값을 쏠 수 있을 만큼 공연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낭만은 홍대앞에 남아있길 희망해 봅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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