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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현 도쿄특파원의 日유통記] 손에 지도 쥔 주부들…“원산지 확인하려고…”
[도쿄특파원=김지현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자매지) 기자]“후쿠시마(福島) 산(産) 쌀을 무료로 드리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도쿄에서 라디오를 듣다 보면 종종 접할 수 있는 광고다. 안전성을 보장하니 지금 당장 전화 주문하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반응은 의외로 싸늘하다. 식품의 방사능 함량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도쿄의 슈퍼마켓에 가보면 흔히 한 손에는 장바구니, 다른 한 손에는 일본 지도를 들고 있는 소비자들을 볼 수 있다. 종이로 된 작은 지도를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들여다보기도 한다. 원산지 확인을 위해서다.

도쿄에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주부인 김미정(45ㆍ가명) 씨는 “장을 볼 때마다 귀찮기는 해도 방사능 노출걱정을 덜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인 주부인 케이코(38) 씨는 “나는 크게 신경 안쓰지만, 남편이 극도로 예민하기 때문에 원산지를 자세히 살피게 된다”고 했다. 
 
일본 남부 지방 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마트 코코하나(Cocohana)

이처럼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본 내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일본 유통가엔 ‘손에 쥔 지도’라는 새 풍경이 들어섰고, 지금은 전혀 낯설지 않다. 게다가 최근엔 후쿠시마산 농산물이 도쿄 전역 상점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안전 경계음은 더 커졌다. 물론 가격이 20~30% 가량 싸다보니 고민하는 소비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급적 후쿠시마와 그 주변의 미야기, 야마가타현 등지에서 나는 농산물을 여전히 기피한다.

홋카이도(北海道) 산 역시 일부 한인들에게는 보이콧 대상이다. 후쿠시마 소를 홋카이도로 보내 사육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퍼지면서 그 지역 유제품을 꺼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일본 내에서도 한참 남쪽인 후쿠오카, 나가사키, 그리고 쿠마모토산이 인기다.

농산물은 이렇게나마 산지를 골라 구입할 수 있지만, 수산물은 또 다른 얘기다. 일본에서 생선은 어획 후 보내지는 항구가 원산지로 표기된다. 때문에 정확하게 최초 어획장소를 파악한 이후에야 구입해야 한다.

일반 식당에서 사용되는 생선은 어디서 어획됐는지 파악할 길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키우는 집은 스시 구경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육류는 구체적인 원산지없이 ‘국내산’이라고만 표기되기도 한다. 이에 눈물을 머금고 육즙이 흐르는 일본산 와규 대신 호주산 제품을 구입하는 주부들이 많다.

원산지에 대한 불안감이 이처럼 증가하면서 남부지방 제품을 취급하는 고급마트는 늘고 있다. 도쿄 부유층이 모여 산다는 세타가야구 한가운데 위치한 코코하나(Coco Hana)와 같은 마트는 소규모지만 주로 큐슈나 나가사키 지역 농산물을 취급한다.

일본 소비자들 역시 한국인들만큼은 아니어도 원산지를 따진다. 다만 되도록 표시를 내지 않으려 할 뿐이다. 후쿠시마 산 인줄 모르고 집었다가 얼른 내려놓는 일본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현재 후쿠시마에서 나는 모든 제품은 검사를 통해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일정 수준이 넘지 않아야만 판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방사능의 정확한 함량은 표기되지 않는다.

jemmi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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