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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마의 입’을 지나 암흑의 동굴에서…진정한 나를 만나다
-평창군 진부면ㆍ대관령면ㆍ미탄면을 가다


[글ㆍ사진=(평창)김아미 기자]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위치한 진부시장에 때마침 5일장이 열렸다. 투-버튼 정장 수트에 회색 페도라까지 갖춘 멋쟁이 노신사가 길거리 좌판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장날에 맞춘 차림이 멋스럽다. 

백룡동굴 내부 모습. ‘악마의 입’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이 곳을 통과하면 본격적인 동굴 탐험이 시작된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새해 1박 2일 평창행이 유난히 무겁다. 발이 무겁다기보다 머리가 무거운 탓이리라. 해도 해도 끝이 안나는 회사 일, 집안 일을 악세서리처럼 주렁주렁 달고 나온 여행자의 행색이 사뭇 초라하다. 장날 노신사도 저리 말끔한 차림인데, 하물며 여행을 떠나는 이의 모습이 이렇게 우중충해서야…. 무거운 눈꺼풀에 다시 힘을 주고 설레어 보기로 작정했다.

▶떠들썩한 축제마당을 지나 고요한 바람의 언덕을 오르다=평창군 진부면 오대천 일대에는 송어축제가 한창이다. 내달 8일까지 계속될 이 축제에 현재까지 55만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갔다. 지난 18일까지는 대관령면 횡계리 일원에 눈꽃축제가 성황을 이뤘다. 

백룡동굴 내부 모습. 1년에 0.2~0.8㎜ 정도 자란다는 종유석과 석순, 석주의 모습이 감탄을자아낸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은 겨울이 더 뜨겁다. 축제를 비롯한 각종 겨울 스포츠 체험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기 때문. 가족 단위 관광객들은 물론 인터넷 정보 검색에 빠삭한 해외 관광객들도 이 곳을 찾는다.

맨 먼저 송어축제장을 들렀다. 미취학 아동들은 빙판 위에서 얼음을 깨고 인조미끼를 이용하는 루어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다. 장갑 낀 손이 칼바람에 꽁꽁 얼어도 추운 줄을 모른다. 

백룡동굴 내부 모습.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주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아빠 송어 언제 잡혀요?”

낚시의 손맛도 모르는 꼬맹이들의 눈빛이 간절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 엎드려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빙판에 뚫어 놓은 고기잡이 구멍 밑으로 송어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중이다. 마치 카톨릭 사제들이 서품을 받을 때의 모습처럼, 납작 엎드린 어린 강태공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백룡동굴 속에서 한 관광객이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나오고 있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떠들썩한 진부면 축제 마당을 지나 대관령면으로 향했다. 횡계리에 위치한 에코그린캠퍼스는 삼양대관령목장의 새로운 이름. 총 면적 2000ha로 여의도 면적의 7.5배에 달한다. 광장에서 정상까지 4.5㎞ 구간에 소, 양 방목지와 타조 사육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53기나 되는 풍력발전기가 능선을 따라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에코그린캠퍼스에 능선을 따라 펼쳐진 풍력발전기가 장관을 이룬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눈이 적게 내린 탓에 겨울산의 모습이 마치 시루떡에 팥고물 흩뿌려 놓은 것 마냥 희끗희끗하다. 탁 트인 언덕 정상에 내리 쬐는 햇살은 곧 봄이라도 올 것처럼 따사롭지만 바람만은 칼같다. 체감온도 영하 20도. 그러나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칼날 같은 겨울바람도 이내 봄날 미풍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마음이 고요해져서다.

▶‘악마의 아가리’를 지나 암흑의 동굴로…진정한 나를 만나다=이튿날 더욱 고요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창군 미탄면 백운산 자락 평창, 영월, 정선 3개군의 접경지역에 오대산 우퉁수에서 발원한 동강을 끼고 백룡동굴(천연기념물 제260호)이 있다. 

평창군 진부면 일대에서는 송어축제가 한창이다. 빙판 구멍 사이로 송어가 보이기를 기원하는 어린 강태공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학예사의 지시에 따라 붉은 색 올인원 수트로 갈아입고 랜턴이 달린 헬멧을 썼다. 동굴탐사를 위한 ‘장비’다. 추운 겨울 다운점퍼를 벗고 얇은 작업복으로 갈아 입는 것은 고역이다. 그러나 굳이 옷을 갈아 입어야 하는 이유를 동굴에 들어간 지 10분 내에 깨닫게 된다.

백룡동굴에는 조명이 없다. 헬멧에 달린 랜턴이 유일하게 동굴 ‘탐험’을 가능케 하는 빛이다. 전기 시설을 설치해 놓으면 그 불빛에 종유석, 석순, 석주 등 동굴의 생성물들이 오염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예사의 설명이다. 사람이 손을 대면 ‘흑색오염으로 시커멓게 죽고, 전기를 설치하면 ‘녹색오염’으로 퍼렇게 죽는단다.

평창군 미탄면에 위치한 자작나무 숲. 규모는 크지 않지만 눈덮인 산 속에서 하얀 껍질을 드러낸 자작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게다가 동굴 곳곳에서 ‘직립보행’이 불가능하다. 등을 굽혀야 하는 것은 물론 낮은 포복자세로 배밀이를 해서 기어가야 하는 곳도 있다.

‘악마의 아가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동굴 탐험이 시작된다. 백룡동굴 안 기온은 8~9도. 일반적인 동굴이 11도에서 13.5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약간 낮은 기온이지만, 오감을 곤두세우고 온 몸으로 동굴의 신비와 만나는 탓에 탐사 10여분 만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달아오른다.

동굴 안은 보물 천지다. 고드름처럼 매달린 종유석,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고 자란 석순, 천정의 종유석과 바닥의 석순이 만나 이룬 석주까지, 수억년의 세월이 빚어 낸 예술작품이 감탄을 자아낸다.

단군할아버지부터 세종대왕, 달마대사, 자유의 여신상까지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개중에는 바지춤을 내리고 못된 짓을 하는 ‘잡놈’도 있다. 남근석 모양의 종유석은 한 방문객이 떼어가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되찾아 온 남근석을 강남 유명 치과의사를 데려다 임플란트하듯 다시 심어놨단다. 제 아무리 갖고 싶은 종유석이 있어도 훔치지 말 것. 이곳 학예사들은 어느 위치에 어느 종유석이 있는 지 다 안다.

백룡동굴 탐험의 하이라이트는 주(主)굴 끝에 펼쳐진 광장에 있다. 랜턴을 끄고 칠흑같은 어둠과 적막에 사로잡히면 비로소 나를 보는 눈이 트이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귀가 열린다. 2시간여 탐험 끝에 동굴 밖으로 나온 여행자는 초라한 모습은 간 데 없이 어느새 해맑아져 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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