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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여진구, 목소리 때문에 말수 줄였던 사연(‘내 심장을 쏴라’)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새드무비’(2005)의 여덟 살 꼬마는 천진한 매력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잡았다. 연기 경험이 전무했지만, 기라성 같은 스타들 속에서도 존재감을 뽐내며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소년은 ‘잘 자란’ 아역 배우의 정석을 밟으며, 10년 만에 누나 팬들을 설레게 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지난 해 한 시트콤에선 생애 첫 키스신에 도전하더니, 새 영화 ‘내 심장을 쏴라’(감독 문제용ㆍ㈜주피터필름)에선 스물다섯 청년으로 분했다.

대다수 아역 출신 배우들은 성인 역할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데 고충을 겪는다. 아역 시절의 모습이 대중에게 잔상으로 남아있는 탓이다. 그런 면에서 여진구는 손쉽게 ‘아역 출신’ 꼬리표를 떼어낸 듯 보인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 굵은 외모,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 덕분이다.

오히려 또래 배우들보다 빨리 교복을 벗은 것이 서운하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여진구는 열아홉 나이를 의심할 만큼 명쾌했다. 그는 “맡는 배역의 나이는 상관없다”고 했다. ‘캐릭터를 충분히 분석하고 몰입하다 보면 그 나이에 맞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는 것이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운전 면허보다 보트 면허를 먼저 땄죠”=여진구는 ‘내 심장을 쏴라’에서 수리정신병원의 모범 환자 ‘수명’ 역을 맡았다. 좌충우돌 사고뭉치 ‘승민’(이민기 분)이 병원에 등장하면서, 평온하게 생활했던 수명은 시끌벅적한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실제 성격은 ‘승민’에 가까운 것 같아요. 밝고 쾌활한 편이고 조용한 분위기를 별로 안 좋아해요. 감정에 대한 공감은 승민에게 더 기울였죠. ‘수명’은 저와 전혀 다른 캐릭터니까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끌렸어요. 한편으론 ‘잘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도 컸죠. 그래서 초반엔 원작 캐릭터에 얽매였는데,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영화 속 캐릭터 자체에 몰입하게 됐어요.”

자신과 너무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여진구는 나름의 분투를 했다. 현실적으로 폐쇄병동을 찾아가긴 어렵다보니 그 곳에 근무했던 간호사를 만나 궁금증을 해소했다. 수명과 승민이 보트를 훔쳐 타고 일탈을 즐기는 장면을 위해, 여진구는 약 3주에 걸쳐 보트 운전에 필요한 면허증까지 땄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외모적인 변화도 줬다. 극중 수명이 가위 공포증 때문에 이발을 못 하는 캐릭터다 보니, 긴 머리를 늘어뜨리거나 질끈 묶은 모습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다. 한창 외모에 신경 쓸 나이인데 그는 장발이 미모(?)를 가리는 것에 대한 속상함은 없어 보였다.

“가발이 혹시 티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름 진짜 같더라고요. 사실 소설 속에선 수명이 여리여리한 캐릭터라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죠.”



▶“여진구보다 배역이 먼저 보였으면…”=지난 10년 간 여진구의 행보는 또래 배우들과 조금 달랐다. 경쾌한 학원물보다는 무거운 시대극이나 누아르 등을 통해 얼굴을 비췄다. 대중적 인기보다 연기 내공을 쌓는 데 집중한 도전들이었다. 덕분에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에선 김윤석, 장현성, 김성균, 조진웅, 박해준 등 무서운 다섯 아빠 틈에서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번 작품에서도 유오성, 김정태, 김기천 등 연기파 선배들과 위화감 없이 어우러진다. 여진구는 ‘늘 뭔가 알려주려고 하고 배려해 주는 선배들 덕분에, 작품을 할 때마다 항상 무언가 얻어가는 느낌이 든다’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영화 마지막에 수명이 ‘활공장이 필요했다’고 하는 게, 결국 ‘용기가 필요했다’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전 부모님이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라’는 편이셨어요. 그래서 연기도 할 수 있었죠. 지금도 가족이니까 더 냉정하게 연기에 있어 부족한 점을 얘기해주시기도 해요. 전 이른 나이에 이미 (‘연기’라는) ‘활공장’을 찾았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벌써부터 연기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여진구에게 문득 궁금증이 솟았다. 연기할 때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건지. 이 점을 넌지시 물었더니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답변이 돌아왔다. “연기가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책임감도 많이 느낀다”고 덧붙였다.

“또래들이랑 다른 게 없는데 연기에 대해선 진지해지는 것 같아요.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조금의 아쉬움도 남지 않는 작품을 가지고 싶어요. 물론 그건 제 개인적인 희망이고, 그저 많은 분들에게 제가 진정으로 작품에 빠져 있는 게 보였으면 해요. 어떤 작품에서든 여진구가 아닌 배역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더 잘 해야겠죠.”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제 목소리요? 좋다고 해주셔서 당황했죠”=부지런히 작품 수를 늘려가다 보니, 여진구도 어느덧 1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고3’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부담감은 크게 느꼈지만, 스무 살에 하고싶은 것을 떠올리면서는 금세 낯빛이 밝아졌다. 그건 영락없이 평범한 수험생의 모습이었다. 운전면허를 가장 먼저 딸 생각이고, 기회가 되면 세계여행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치킨에 맥주, 곱창에 소주, 파전에 막걸리 같은 유명 조합의 맛이 궁금하다며 웃어보이기도 했다.

한 때 여진구는 극 중 ‘수명’처럼 위축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중저음의 굵직한 목소리가 여성 팬들의 호응을 얻고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도 한 몫을 하고 있지만, 과거엔 스트레스였다. 목소리 때문에 주목받는 게 싫어 스스로 말수를 줄이기도 했다.

“중학교 3년 내내 변성기를 심하게 겪었어요. 일상생활에서 목소리가 큰 부분을 차지하잖아요. 변성기 이후로 자신감도 없어지고 두렵기도 해서 한동안 말도 안 하고 지냈어요. 목소리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기다보니 자연히 말수가 줄어든 거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목소리가 좋다고 해주실 때, 처음엔 솔직히 당황스러웠어요.”

물론 지금은 “제 성대에게 많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인상적인 목소리는 배우 여진구의 무기가 됐다.

인터뷰 말미, 여진구는 ‘내 심장을 쏴라’ 속 수명과 같은 나이인 ‘스물다섯’ 자신의 모습을 미리 떠올려봤다.

“여진구의 스물다섯요? 뭘 하든지 겁먹지 않고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감 있게 부딪히고 거기서 좌절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용기 있게 책임감 있게만 한다면, (실패해도) 많은 분들이 환호해 주시지 않을까요? 나이가 더 들어도 그렇게 살았으면 해요.”

ham@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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