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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채 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 경제주체간 ‘쩐의 전쟁’ 노골화
[헤럴드경제=이해준ㆍ배문숙ㆍ 원승일 기자]최근 연말정산을 둘러싼 정부와 납세자들의 갈등을 지켜본 경제전문가들의 시선은 착잡하기만 했다.

부족한 세수를 충당해야 하는 정부와 세금 증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민들의 갈등이 표면화한 현상으로, 현재의 경제구조상 해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쓸 곳은 많은데 돈이 나올 곳은 한계가 있어 이런 갈등은 언제든 폭발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각종 연기금,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모두 적자 또는 부채의 늪에 빠져들면서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쩐의 전쟁’이 노골화하고 있다. 각 경제주체들이 부족한 지갑을 채우기 위해 물고 물리는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 재정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산 대비 세수부족 규모는 2012년 이후 급증해 올해까지 4년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수입은 줄어들고 쓸 곳은 늘어나고 있다.

적자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는 저출산ㆍ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복지지출 증가와 잠재성장률 하락에 따른 세입기반 약화로 이대로 가다가는 2033년께 국가 파산에 이를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지자체들은 지자체대로 돈이 없어 아우성이다. 지자체들은 지방세 수입으로 직원 월급도 줄 수 없는 곳이 절반을 넘는다며,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비용을 중앙정부가 책임지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복지디폴트’를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위협’까지 한다. 지자체들은 국세의 대폭적인 지방세 이전 등 지자체 재정확충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년말 정부가 예산안을 수정하면서 복지 디폴트 위기는 넘겼지만, 중앙과 지방정부의 예산 갈등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공기업과 연기금도 마찬가지다. 공기업은 520조원이 넘는 부채에,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은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면서 정부 재정을 축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들 공공기관과 연기금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가계는 이미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선 부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부실 문제가 연내에 표면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연말정산 파문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진행됐던 것은 부채 부담에 허덕이는 근로소득자들의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의 급증하는 부채는 언젠간 파국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는 당장 두 가지 차원에서 우리사회를 위협한다.

우선 각 경제주체들의 기능이 위축되거나 상실되면서 경제에 더 심각한 주름살을 던지는 것이다. 정부 재정지출이 한계에 이르고 눈덩이 부채로 소비가 위축된 작년 4분기에는 전분기대비 성장률이 당초 예상치인 1%보다 크게 낮은 0.4%에 머물렀다. 재정적자가 확대될 경우 정부의 재정능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고, 공공기관의 공공적 기능이나 가계소비도 기대하기 힘들다.

둘째는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한 경제주체 사이의 갈등, 즉 ‘쩐의 전쟁’이 표면화하는 것이다. 복지 비용을 둘러싼 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 이번 연말정산 파문은 그 단면에 불과하다. 공공기관과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갈등도 잠복해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저성장 또는 사실상의 제로성장에 접어들고 있는 만큼 과거와 같은 확장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플랜이 필요하다고 입을모은다. 특히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 방침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경제성장세가 좋다면 부채 문제가 덮어질 수 있지만 저성장기에 접어들면서 각 주체의 기능 상실과 갈등이 표면화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합리적인 안을 마련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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