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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토토가’ 인기 업은 ‘토토가요’ 가보니…소맥 가격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0년차 ‘국민예능’으로 무수한 ‘빠’들을 양산한 ‘무한도전’의 저력은 역시나 굉장했습니다. 연말연시 기획으로 방영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을 통해 대중문화계에 다시 8090 바람이 불었습니다. ‘무한도전’이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파괴적인 인기는 아니나 다를까 결국 상술로도 이어졌습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역에는 ‘토토가’라는 클럽이 등장했습니다. 교보타워와 강남역 사이, 스파 브랜드 자라의 뒷골목에 들어선 이 클럽은 과거 힙합클럽 엔비(NB)2의 자리입니다. 위치가 꽤 좋았습니다. 바로 옆에 위치한 90년대 주점 ‘밤과 음악사이’가 12월 31일 영업을 끝으로 지오다노 지하로 자리를 옮긴 뒤, ‘엔비2’는 ‘토토가요’로 탈바꿈했습니다. 


입구부터 떠들썩했습니다. 커다란 현수막엔 ‘무한도전-토토가’에 출연했던 가수 이재훈, 지누션, 김현정, 코요태, 현진영 등이 초대가수로 출연한다고 날짜별로 적혀있었습니다. ‘토요일 토요일은 가요다’라는 상호가 무색하게도 가수들은 금요일에 오더군요.

간판을 본 사람들의 반응도 한결같았죠. “와! 벌써 토토가 클럽이 생겼어?‘라는 호기심 섞인 말들이 거리 곳곳에서 들렸습니다. 

혹시 가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7일 토요일 저녁 이 곳을 찾았습니다. 10시 이전 입장은 ‘무료’라는 문구에 일단 들어갔습니다. 여느 클럽들과 다름없이 입구를 지키는 ‘기도’들은 철저하게 신분증 검사를 합니다. 누가 봐도 중년이라 할지라도 신분증이 없다면 입장은 절대 안됩니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 클럽 안으로 들어가려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강남역 일대의 사람들이 총집합한 수준입니다. 지하의 입구에서 가방을 맡기고 클럽 안에 들어가니,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술집과 클럽을 짬뽕한 ‘토토가요’에선 90년대를 풍미했던 댄스가수들의 노래들이 꽝꽝 울려퍼졌습니다. 쿨의 ‘애상’, SES ‘아임 유어 걸’, UP ‘뿌요뿌요’, 자자 ‘버스 안에서’를 비롯한 추억의 가요들이 넘쳐났죠. 

테이블엔 안고 싶어도 앉을 수가 없습니다. 9시도 되지 않은 토요일 저녁, 이미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불토’를 만끽하고 있었죠. 술과 안주는 다양하게 판매합니다. 테이블이 없는 ‘메뚜기’들을 위해 바에서 음료도 팝니다. 소맥(소주+맥주)은 컵에 따라주는데, 7000원을 받습니다. 세련된 인테리어를 기대하면 큰 일 납니다. 테이블과 의자, 무대, 조명은 복고풍이라 말하기에도 다소 저렴한 느낌입니다. 


사실 90년대 후반 강남역은 나이트클럽의 천국이었습니다. 딥하우스, 단코, 오딧세이, 빠샤 등등 요즘과 같은 클럽문화가 자리잡기 이전 각종 ‘나이트클럽’으로 상종가였죠.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더 윗세대도 이 곳을 찾아 그 시절의 음악을 즐겼습니다. 그들만의 문화가 있었던 셈입이다.

상상이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힙합, 세미힙합 스타일(닥터마틴, 나이키 포스, 폴러 혹은 노티카 점퍼, 폴로 셔츠, 면바지 등등)을 약속이나 한듯 맞춰입고 오후 3시부터 나이트클럽 입장을 위해 일렬로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5시가 안돼 입장을 시작하면 밖은 벌건 대낮인데, 안에선 난리가 나죠. 새벽3시가 돼야 활기를 띄는 요즘의 클럽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곳이었죠.

그 곳에서 사람들은 댄스가수들의 가요가 흘러나오면 어디서 그렇게들 익혔는지 군무를 시작합니다. 가수의 안무가 나이트클럽 안을 꽉 메운 사람들의 몸짓으로 펼쳐집니다. 


’토토가요‘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시간이 워낙 많이 지나다 보니 찾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흥이 넘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스테이지의 상단엔 그 시절 안무를 보여주는 아르바이트 춤꾼들도 있습니다. 가수들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이 사람들을 춤을 보며 그 때를 떠올립니다. 손님 중엔 열심히 따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굳이 보지 않아도 몸이 기억한 동작들을 마음껏 펼쳐보이는 사람들도 있죠. 춤을 추고 싶다면 하이힐은 금물입니다. 90년대 후반 나이트클럽을 갈 때처럼 운동화 등 단화가 제격이죠.

놀랍게도 ‘토토가요’를 찾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즐거워보였습니다. 직장생활에 치여 놀거리가 사라진 20대 후반, 30대, 40대의 생활인들, 상호에 이끌려 방문했을지도 모를 아니면 ‘밤과 음악사이’의 이전을 모르고 지나가다 들렸을지 모를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은 다들 웃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취향을 저격'했나 봅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닐겁니다. ‘무한도전’에 익숙한 어린 세대들은 자칫 ‘취향 파괴’의 우려도 있습니다.

어찌됐건 여기에선 이상한 클럽 분위기의 황당함에 웃고, 마음은 놀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당혹스러움에 웃고, 흥이 오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움직이는 몸의 반응에 웃죠. 격한 흥분상태에 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도 또 웃습니다. 즐거워보인다는 건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발라드 타임도 있습니다. 신나게 몸을 흔들면 잠시 쉬어갈 시간도 필요한 법입니다. 박기영의 ‘마직막 사랑’, 보보의 ‘늦은 후회’, 조성모의 ‘불멸의 사랑’ 등 그 시절 히트곡들이 나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목청이 터져라 그 노래를 따라부릅니다. 이 곳에선 적어도 누군가와의 만남을 목적으로,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마다 각자의 즐거움을 위한 자리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밤 12시를 넘기 전까지는 그렇습니다.

사실 ‘토토가요’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살짝 당황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순간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인 줄 알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가수’를 ‘가요’로 바꿨더라고요. ‘상표권 침해’ 아닌가라는 생각도 당연히 했지만, 놀라운 광경 앞에 그런 생각은 지워졌습니다. (미안해요, MBC..)

MBC는 황당했을 겁니다. 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은 클럽의 등장이 말입니다. MBC 법무팀은 해당 클럽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유사명칭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내용 증명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프로그램이 워낙에 화제였던 탓에 이 같은 대응방식도 화제가 됐죠.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형사소송도 진행할 거라고 했죠. 이 클럽의 운영자는 ‘토토가’ 무대에 올랐던 엄정화의 백댄서팀 멤버 김모 씨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한 언론을 통해 상호가 문제가 될 경우 당장 바꾸겠다며 자신의 클럽에 출연한 가수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스러워 했습니다.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이 상술로 엮여 질타를 받자 꼬리를 내렸죠. MBC도 수위조절을 시작했습니다. 클럽 측에서 바로잡는다면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입니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논란으로까지 번지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MBC의 과잉대응이라는 입장과 ‘토토가요’ 측의 ‘숟가락 얹어 베끼기’라는 입장의 대립이죠.

사실 90년대 댄스가요를 DJ가 틀어주며 술과 춤을 겸하는 ‘감성주점’은 진작부터 등장했습니다. ’토토가‘가 화제가 되기 한참 전부터 홍대를 시작으로 전국에 체인점을 내며 흥행했죠. ‘밤과 음악사이’입니다. ’토토가요‘ 역시 ‘밤과 음악 사이’,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감성주점의 흐름에 ‘무도’발을 실은 클럽일 뿐입니다. 

약칭 ‘밤사’는 20대부터 40대까지를 사로잡은 대표 8090 클럽이죠. 삶에 치이던 1970년대~80년대생들의 천국인거죠. 금요일, 토요일이 되면 강남역 밤사 앞에서 100M 정도 줄이 늘어섭니다.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이죠. 이 곳을 즐겨찾는 사람들에 따르자면 최근의 ‘밤사’는 ‘90년대 추억의 공유’라는 타이틀과는 무관하게 2010년대에 가장 유행하는 또 하나의 클럽으로 변질됐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저 끈적끈적하게 즐기는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거죠. 그 무렵 등장한 ‘토토가요’는 처음 가 본 사람들에겐 ‘신세계’였을지도 모르고, 그 시절을 떠올리고 싶은 사람들에겐 오랜만에 발견한 ‘놀이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클럽이 상호를 변경하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길까요? 90년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굴러는 가겠죠 뭐.

shee@heraldcop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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