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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릉에 비친 영조의 국가경영철학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왕릉을 알면 임금이 보인다. 숙종(1661~1720년)은 어려운 나라 살림을 줄이고자 소박한 규모의 석물(무덤 앞에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제도를 정립했다. 영조(1694~1776년)는 부왕의 뜻을 이어 조선 초기부터 행해진 상장례의 관행을 현실에 맞게 고친 ‘국조상례보편’을 편찬해 왕릉 제도를 간소화ㆍ체계화시킨 전환점을 이뤘다.그 결과 봉분 크기와 석물, 건축물, 비석 등의 형식과 규모가 통일돼, 석인상은 종전의 약 9척(약 2.8m)에서 약 5척 5촌(약 1.7m) 이하의 등신대로 축소됐고, 8칸 정자각은 5칸으로 정리됐다. 이를 보여주는 왕릉들이 명릉, 익릉, 의릉 혜릉, 원릉, 홍릉, 영릉 등으로 모두 18세기에 조성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Ⅵ․Ⅶ)’를 발간했다고 23일 밝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006년부터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하기 위해추진 중인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의 일환이다. 


두 권으로 발간된 보고서에는 총 7기의 왕릉과 왕후릉에 대한 내용을 실었다. 제Ⅵ권에는 ▲ 명릉(숙종, 인현․인원왕후) ▲ 익릉(인경왕후) ▲ 의릉(경종, 선의왕후) 등 3기가, 제Ⅶ권에는 ▲ 혜릉(단의왕후) ▲ 원릉(영조, 정순왕후) ▲ 홍릉(정성왕후) ▲ 영릉(추존 진종, 효순왕후) 등 4기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었다.

이번 보고서에 실린 7기의 능은 17세기 왕릉 양식을 마지막으로 계승한 익릉(1681년)을 제외하고, 모두 18세기에 조성됐다. 익릉을 제외한 나머지 6기의 능 조성 배경에는 치열한 당쟁(黨爭) 속에서도, 제도와 문물, 사상 면에서 ‘조선 르네상스’의 기틀을 이룬 숙종․영조 임금의 국가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이 보고서는 능지(陵誌)와 항공사진, 일제강점기 사진 등 시각자료와 실측도면을 활용, 각 능의 조성 과정을 시간순으로 복원하여 막연히 알려져 왔던 18세기 왕릉의 역사와 위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특히, 홍릉 곁에 영조가 묻히지 못하고, 17세기 흉지(凶地)로 알려졌던 지역에 원릉을 조성하게 된 경위를 ‘산릉도감의궤’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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