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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2014년 나를 헤드뱅어로 만든 앨범 ‘베스트 10’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음악을 꼽으라면 아마도 록(Rock)이 첫 손가락에 들 겁니다. 하지만 록이라는 음악으로부터 떠올리는 이미지는 저마다 다른 모습일 겁니다. 누군가는 가죽 옷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는 밴드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허름한 청바지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신발만 바라보며 기타를 치는 음유시인의 모습을 떠올리겠죠. 기자가 록이라는 장르로부터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두컴컴한 지하 공연장에서 헤비메탈 음악에 심취해 머리를 흔드는, 이른바 ‘헤드뱅어’들의 모습입니다. 야간자습을 째고 몰래 공연장으로 향하며 거리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떼어내 가방에 갈무리하는 것은 기자의 학창시절 소소했던 추억 중 하나입니다. 그중 몇몇은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고향의 제 방 어딘가에 보관돼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연장, 심지어 록페스티벌에서도 헤비메탈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이런 센 음악은 촌스러운 흘러간 유산으로 취급 받고 있죠. 시나위, 블랙신드롬 등 80년대 중후반 한국 헤비메탈을 이끌던 주역들이 90년대로 들어와 대거 얼터너티브 록으로 전향했던 것도 결국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을 뿐 여전히 많은 밴드들이 이 작고 작은 헤비니스 신을 유지하며 새로운 앨범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습니다. 올해엔 유난히 한국 헤비니스 신의 거물들이 많이 귀환했습니다. 또한 세련되고 잘 빠진 모던록 사운드에 식상함을 느끼고 하드록과 헤비메탈에 신선함을 느끼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변화죠. 그들의 의지와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올해 기자를 ‘헤드뱅어’로 만들었던 앨범 10장을 소개합니다. 순서는 발매일자 순입니다.



▶ 블랙홀 ‘호프(Hope)’(3월 11일 발매)= 밴드 블랙홀(Black Hole)이 올해 초 9년 만에 새 앨범 ‘호프(Hope)’를 발매했습니다. 블랙홀은 한국 헤비메탈 음악의 태동기인 지난 1985년에 결성돼 지금까지 정규 앨범 8장과 베스트 앨범, 싱글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온 이 바닥의 터줏대감이죠. 특히 블랙홀은 당대에 함께 무대에 섰던 시나위, 백두산, 부활 등과는 달리 단 한 번도 공백기 없이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밴드입니다. 강렬한 연주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조화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블랙홀은 이번 앨범에도 자신의 장점을 십분 살린 음악을 담아내며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과거 디지털 싱글로 공개한 곡을 다시 실은 ‘라이어(Liar)’와 신곡 ‘진격의 망령’은 블랙홀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멋진 곡이죠.



▶ 해리빅버튼 미니앨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4월 2일 발매)= 땀 냄새 풀풀 나는 하드록과 헤비메탈만큼 관객을 흥분시키는 음악도 드물죠. 해리빅버튼은 이 같은 변화의 물줄기의 선봉에 서서 흐름을 주도해 온 밴드입니다. 해리빅버튼은 이번 앨범을 통해 4인조에서 3인조로 재편됐지만 사운드는 오히려 단단해졌습니다. 기타가 2대에서 1대로 줄어든 탓에 연주의 역동적인 맛은 전작보다 덜하지만 사운드는 더욱 직선적으로 바뀌었죠. 특히 해리빅버튼은 ‘쌍팔년도’ 8비트를 고집하는 밴드가 아닙니다. 제대로 살아있는 그루브가 어지간한 댄스 음악 뺨칠 정도로 흥을 불러일으키죠. 



▶ 원 정규 4집 ‘로커스 매뉴얼(Rocker’s Manual)’(4월 3일 발매)= 첫 곡의 작렬하는 기타 리프부터 반가운 앨범입니다. 요즘 세상에 헤비메탈 그것도 정통 헤비메탈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를 만나긴 쉽지 않기 때문이죠. 밴드 원(WON)은 1998년 결성 이후 16년 동안 단 한순간도 한 눈을 팔지 않고 정통 헤비메탈을 지켜온 몇 안 되는 장인(匠人)입니다. 이 장인은 정통 헤비메탈 사운드라는 뼈대를 유지하되 결코 과거를 답습하지 않습니다. 각 악절의 고리마다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는 편곡ㆍ가사ㆍ멜로디의 타이밍이 그 증거죠. 이 앨범은 과거의 헤비메탈이 어떻게 변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답안입니다.



▶ 메스그램 미니앨범 ‘디스 이즈 어 메스, 벗 잇츠 어스(This Is A Mess, But It’s Us)’(4월 8일 발매)= 앨범의 첫 곡이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탄성을 자아냅니다. 강렬한 메탈 연주 곳곳을 파고드는 트렌디한 신스 사운드, 거친 스크리밍과 팝을 방불케 하는 유려한 멜로디를 소화하는 여성 보컬의 감성적인 조합,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탁월한 질감으로 버무려낸 녹음 수준까지 이 앨범은 한국의 록계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느 북유럽 정상급 밴드 이상의 사운드를 만들어 낸 이들이 신인이라는 점입니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밴드입니다. 



▶ 예레미 정규 8집 ‘더 돈 오브 디 유니버스(The Dawn Of The Universe)’(5월 19일 발매)= 예레미(Jeremy)는 국내에선 보기 드물게 스케일 큰 프로그레시브 록을 선보였던 밴드입니다. 예레미는 한국 CCM(대중음악의 형식을 취하는 기독교 음악) 계에선 보기 드물게 헤비메탈을 들려주는 밴드이지만, 가사를 뜯어보지 않는 한 종교적인 냄새를 맡긴 쉽지 않습니다. 그저 잘 만들어진 음악만 존재할 뿐이죠. 7집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이후 6년 만인 이 앨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탄탄한 연주에 유려한 멜로디까지, 한국 메탈의 수준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가진 앨범입니다. 조용히 발매된 것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말이죠.



▶ 더 히스테릭스(The Hysterics) 미니앨범 ‘테이크 잇 슬리지(Take it Sleazy)’(7월 8일 발매)= 헤비메탈하면 스타일과 멋이었던 시절이 있었죠. 그 정점에는 팝적인 멜로디와 화려한 무대 매너를 앞세워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 서부 지역을 풍미한 LA메탈이 존재했습니다. 더 히스테릭스(The Hysterics)는 자칫 시대착오적으로 들릴 수 있는 LA메탈을 발전적인 사운드로 재현해내며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모던록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가미한 록이 주류를 이룬 지금 시점에서 땀 냄새 풀풀 나는 이들의 음악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밴드 걸(Girl)과 이브(Eve)의 프론트맨으로 익숙한 보컬 김세헌의 세월을 잊은 보컬이 더욱 반갑습니다.



▶ 사일런트 아이 정규 3집 ‘더티 월드 오브 앤젤스(Dirty World Of Angels)’(8월 7일 발매)= 한국 익스트림 계의 거물 사일런트 아이(Silent Eye)도 올해 새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앨범은 2집 ‘헬 하운드(Hell Hound)’ 이후 무려 8년 만의 정규작입니다. 8년이라는 시간은 그만큼 이런 음악을 담은 앨범을 내놓기 어려운 현실을 말해줍니다. 목마름 때문일까요? 이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자비심 따윈 없다는 태도의 공격적인 사운드와 보컬로 청자를 몰아붙입니다. 그래서 화려한 기타와 키보드 연주가 소중하고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겠죠. 



▶ 서울마더스 정규 2집 ‘돈트 포겟 왓 유어 머더 세드(Don’t Forget What Your Mother Said)’(11월 3일 발매)= 서울마더스는 90년대 홍대 인디신이 태동하던 시절, 한국 하드코어 신을 이끌었던 밴드입니다. 그러나 음악만으로 온전히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현실은 정규 2집을 발매하는데 무려 14년이란 세월이 소요되게 만들었죠. 이후 멤버들은 방송국 PD, LP바 사장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삶을 이어왔지만 차마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뜨겁고 강렬합니다. 세월을 느낄 수 없는 무겁고도 강렬한 사운드와 극한으로 치닫는 스크리밍 보컬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수록곡 ‘뜨겁게 살아라’의 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차갑게 또 뜨겁게! 차갑게 또 뜨겁게 살아가라!”



▶ 옐로우 몬스터즈 미니앨범 ‘더 밴(The Van)’(11월 25일 발매)= 옐로우 몬스터즈가 지난해에 발표한 정규 3집 ‘레드 플래그(Red Flag)’는 강렬하고도 탄탄한 연주와 서정적인 멜로디를 조화롭게 갖춘 수작이었죠. 옐로우 몬스터즈가 14개월 만에 발표한 신보인 ‘더 밴’은 밴드 특유의 사운드 위에 더욱 거침없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빨갱이’ ‘폭도가’ ‘목 잘린 살모사’ 등 수록곡들의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러닝타임을 느끼지 못하도록 완급을 조절하는 역량 또한 여전합니다. 앨범 재킷을 살피지 않는 한 ‘빨갱이’가 무려 10분여의 대곡이란 사실을 짐작할 청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한결 같아 멋진 밴드입니다.



▶ 크래쉬 미니앨범 ‘언테임드 핸즈 인 임퍼펙트 월드(Untamed Hands In Imperfect World)’(12월 11일 발매)= 한국 메탈의 큰 형님인 크래쉬(Crash)도 4년 만에 신보를 발표했습니다. 크래쉬의 행보는 1993년 전설적인 데뷔 앨범 ‘엔드리스 서플라이 오브 페인(Endless Supply of Pain)’ 이후에도 거침없었습니다. 메탈 특유의 격렬한 사운드로 중무장하면서도 그루브를 강조하는 연주는 크래쉬의 전매특허죠. 인더스트리얼 록 사운드의 도입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벌여왔던 크래쉬는 이번 앨범을 통해 밴드 초창기에 들려줬던 순수한 스래시 메탈에 가까운 사운드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드뱅어’들에겐 필청 앨범입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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