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갓 쓴 예수ㆍ한복입은 막달라 마리아…가장 한국적인 ‘성화(聖畵)’를 만나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예수는 갓을 썼고 막달라 마리아는 한복을 입었다. 예수를 시험하던 광야의 사탄은 한국 전래동화에서나 볼 법한 도깨비의 모습을 닮았다.

운보 김기창(1913-2001)의 붓 끝에서 그리스도가 부활했다. 서울미술관(종로구 부암동)의 대표 소장품인 운보의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오, 홀리나잇!(O, Holy Night)’이라는 타이틀로 대중 앞에 선보였다. 

영하 1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한파에 자하문로 가파른 계단길은 꽁꽁 얼었지만, 미술관 안에 차려진 성화(聖畵)들의 온기는 언 몸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아기예수의 탄생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말 구유에 가득 채워진 소금 무덤 위로 십자가 영상물이 비쳐진다. 성서에 나오는 빛과 소금을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 예수 탄생의 공간이다. 재즈, 팝 등 다양한 버전의 캐롤이 전세계 언어로 하루종일 들려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운보의 예수의 생애 연작은 신약 성서의 주요 장면들을 30점의 화폭으로 압축시킨 한국적인 성화다.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와 한복을 입고 쓰개치마를 두른 막달라 마리아는 물론, 그림 속 배경도 모두 전통 가옥과 한국의 산천으로 묘사돼 있다.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최후의 만찬 구도 역시 독특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는 예수와 열두 제자가 긴 식탁에 일렬로 앉아 있는 구도인데 반해 운보의 최후의 만찬은 식탁 주변을 빙 둘러 앉은 모습이다. 다빈치 버전에서는 누가 베드로인지, 가롯 유다인지를 해석하게 만들지만, 운보의 버전에서는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안진우 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운보의 버전이 오히려 현실적인 최후의 만찬 모습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탄에게 시험받다(왼쪽),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운보가 예수의 생애를 한국적인 성화로 그리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안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여섯살에 청력을 완전히 잃었던 운보는 당시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이 주로 목수가 됐던 것과는 달리 화가의 길을 걷게 됐는데, 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덕분이었다. 운보의 재능을 살려주고자 했던 어머니가 그를 이당 김은호에게 보내 그림을 배우게 한 것이다. 그러다가 40대의 나이로 고향에 돌아온 운보는 미국인 선교사 젠슨을 만나 한국적인 성화를 그려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당시 낮밤으로 예수가 보일 만큼 신앙심이 컸던 운보는 어느 날 꿈 속에서 동굴에 있는 예수님의 시체를 보게 됐고, 대성통곡하던 운보는 그 시체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꿈에서 깨어보니 예수님의 시체를 끌던 손의 느낌이 생시처럼 생생했던 것. 그때부터 1년동안 예수의 생애를 그리게 됐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왼쪽), 십자가에 못박힘.

운보는 자신의 저서 ‘예수의 생애’에서도 이 꿈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마음 괴로운 순간이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한줄기 빛이 어디에선가 비껴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그 빛줄기 아래에서/ 예수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있었다/ 통곡을 끝내고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나는 동굴이 아닌 햇빛이 눈부신 방에 앉아 화필을 들고 있었다.”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은 서울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이자 안병광(유니온약품그룹 회장) 서울미술관 회장의 애장품이기도 하다. 한복입은 예수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안 회장이 5년간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2001년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개인 미술 애호가로부터 인수했다. 

부활(왼쪽), 막달라 마리아와의 만남

안 회장은 “예수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서양사에서 가장 큰 사건을 가장 한국적인 모습으로 풀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자산”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서울미술관은 ‘오 홀리나잇’ 전시와 함께 한국 근ㆍ현대 작가들의 명작들을 모은 ‘거장(巨匠)’전을 동시에 개최했다. 전시는 이중섭, 박수근 등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거장 36인의 작품 70여점으로 채워졌다. 관람객들의 러브콜을 받아 다시 걸린 작품들과 함께 일부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특히 국내 미술품 경매가격 톱 2의 기록을 갖고 있는 이중섭의 ‘황소’를 이 전시에서 직접 볼 수 있다. 황소는 2010년 경매시장에서 35억6000만원에 낙찰되며 2007년 45억2000만원을 기록했던 박수근의 ‘빨래터’에 이어 국내 미술품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가격에 팔린 작품이다. 이 밖에도 이대원의 ‘사과나무’와 오치균의 ‘감’ 대형 작품이 발길을 붙든다.

전시는 2015년 2월 15일까지.

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