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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재계의 슈퍼 갑질, 커지는 후계자 리스크
해외유학 등 화려한 경력 불구
검증없이 고속 승진…리더십 의문

종종 일어나는 재계 3·4세들의 일탈
사건 숨기고 사과는 뒤늦게 ‘슈퍼갑질’
죄질 비해 가벼운 처벌이 간 키워준 꼴



[특별취재팀=성연진ㆍ김현일 기자] ‘넘치는 부’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보다 더 맛있는 음식, 멋있는 옷, 안락한 집, 다양한 경험과 교육이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누리고 자라서일까. 재계 3, 4세의 돌발행동에 한국 사회가 삐걱대고 있다. 한국 부호들에게 ‘후계자 리스크’ 경고가 울리고 있다.

한국 재계는 3세대를 거치면서 기업 규모는 물론, 경영수업의 방식도 달라졌다. 해외 명문 대학으로의 유학과 글로벌 컨설팅 회사 등 타 기업에서의 근무 이력도 필수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종종 일어나는 재계의 일탈은 ‘경영수업’의 효용에 대한 의문을 키운다. 창업주의 후손이란 이유로 20대에 임원, 30대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이들의 리더십이 검증된 것인지 문제의식이 커진다. 


무엇보다 경영수업은 진화했으나, 사건을 숨기고 사과는 뒤늦게 하는 ‘과거의 슈퍼갑질’과 다르지 않다. 이는 죄질에 비해 처벌이 가벼웠던 탓이기도 하다.

재계 봐주기 논란은 1991년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호화별장 신축 사건 때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언론은 농지와 산림을 불법훼손해 별장을 지은 최 전 회장에게 3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자, ‘일반 교통사고보다 못한 처벌’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허술한 처벌은 사건의 반복을 불러오고, 변명은 더 지능화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남동생 조원태 부사장은 2005년 교통사고 시비가 붙은 70대 노인을 밀쳐 넘어뜨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당시 조 부사장은 ‘돌연 유학’ 카드를 꺼내든다. 사건이 벌어진 두 달 뒤 갑작스레 서던 캘리포니아대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회사 측은 ‘계획했던 공부’라고 설명했으나, 대한항공에 입사한 지 8개월 만에, 경영수업에 뛰어든 지 1년도 안돼 떠난 것은 난폭운전 구설수 등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한화그룹은 2007년 김승연 회장이 차남 동원 씨가 서울 중국 북창동 주점에서 종업원과 시비 끝에 부상을 당하자, ‘보복 폭행’에 나선 적도 있다. 이 사건으로 김 회장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한화 측은 관련 당사자인 동원 씨를 ‘돌연 출국’시켰다. 김 회장은 경찰에 출석하면서 “청계산에 아예 간 적이 없다”고 증언했으나 사실은 달랐다. 동원 씨는 이후 2011년 음주 후 뺑소니로 7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2013년에는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 딸 정모 씨와 함께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집행유예 처분에 그쳤다. 한화가는 승마 국가대표 선수 3남 김동선 씨도 2010년 음주 폭행에 휘말린 바 있다. 

2010년에는 고용주의 위치에서 종업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일어나 공분을 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 전 M&M대표가 SK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유모 씨를 야구 방망이로 구타하고 2000만원을 건넨 사건이다. 당시 최씨는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아울러 1심에서 1년6개월 실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이를 뒤집고 집행유예가 선고되면서 죄질에 비해 처벌이 가볍다는 논란을 낳았다. 

금호가(家)의 일원인 박래권 금동산업 사장은 비정규직 청소직원을 폭행 후 커터칼로 위협해 전치 5주의 상해를 입혔다. 당시 박 사장은 피해자에게 현금 200만원을 주고 합의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부호는 죄가 있어도 문제 없다’는 식의 특권의식을 불러올 만하다. 더군다나 유학 등 해외로 출국 후 다시 복귀하는 과정은, 말뿐인 ‘사퇴’를 예상케 한다. ‘땅콩회항’ 이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부사장직을 유지하며 보직사퇴한 데 대해 여론이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같은 ‘경험’ 때문이다.

영어로 ‘low profile’은 눈에 띄지 않는 겸손한 행동을 일컫는다. 영국의 윌리엄 왕자가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오면서 ‘이코노미 클래스’에 탄 사실이 알려지자, 현지 언론은 이 표현을 썼다. 윌리엄 왕세손 부부는 얼마 전 미국 뉴욕과 워싱턴DC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보통 사람들과 함께 통근용 셔틀 비행기로 이동했다. 왕가의 존재 목적은 국민에 대한 봉사이며 기업의 존재 목적은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라는 점에서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그러나 경영의 논리에 빗대도 각종 사건사고로 구설에 오르는 것은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 ‘넘치는 부’ 이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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