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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배성재 아나운서, “예능 출연 오케이, '정글' 다시 가고 싶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아나운서 특유의 단정한 표정과 정돈된 말투로 지난 2년 SBS 스포츠뉴스를 진행한 배성재는 기존 틀을 벗어난 파격적인 클로징 멘트로 화제였다. 미동도 없는 표정에 약간의 재미가 더해지니 시청자들의 반응이 컸다. 스스로를 ‘축덕’(축구 덕후)라 칭할 만큼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를 즐겼고, 최연소로 남아공월드컵을 비롯해 하계, 동계 올림픽 등 3대 대회를 석권한 SBS의 간판 스포츠캐스터로 전문성을 갖춘 덕에 배성재 아나운서에게 주어진 일종의 ‘그린라이트’였다. 소위 ‘말발’과 ‘전문지식’이 어우러지니 ‘드립력’도 인기였다. 현재 진행 중인 국내 유일의 축구 종합 프로그램 ‘풋볼 매거진 골!’의 경우, 배성재의 애드리브가 빛을 발하는 영상 클립이 유튜브에서 100만 건을 기록하며 ‘레전드 영상’으로 올라있다.

주중엔 스포츠뉴스를 진행했고, 일주일의 며칠을 할애해 국내외 축구중계에 임했다. 소치 동계올림픽부터 브라질 월드컵,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스포츠 이벤트가 풍성했던 올 한 해 배성재는 유난히 바빴다. 심지어 예능프로그램(‘정글의 법칙 IN 브라질’, ‘매직아이’)에도 출연했다. ‘빅이벤트’가 폭풍처럼 지나가고, 지난 9월 2년간 진행하던 스포츠뉴스에서 하차하니 그제서야 시간의 여유가 생긴 배성재 SBS 아나운서를 만났다. 

사진=윤병찬 기자/

배성재 아나운서 중계에는 특장점이 있다. 스포츠 기자들 사이에선 소위 ‘난 놈’으로 불릴 만큼 깊이있는 지식을 갖췄고, 매경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 잘 짜인 탁구경기를 보는 듯한 입담 릴레이로 열혈 축구팬이 아니라도 흥미롭게 한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제가 ‘덕후’(오타쿠를 한국식으로 표현한 인터넷 신조어)에 가깝기 때문에 ‘덕후스러운’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대중적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축구팬이 아닌 여성들이 경기를 재밌게 봤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요. 젊은 여성 시청자는 새로 유입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축구를 즐기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밌다는 인식을 주는게 목표했던 거에요.”

스포츠뉴스 진행 시절의 클로징 멘트나 ‘풋매골’을 진행하며 쏟아낸 어록, ‘재밌는 중계’의 틀을 만든 입담이 나오는 것은 배성재 아나운서가 빠져든 축구의 매력을 함께 나누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다.


“축구는 인류 공통의 언어에요. 특히 유럽은 축구로 통한다고 하잖아요. 우리나라만 해도 축구를 포함해 스포츠를 삶의 일부로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유럽의 경우 20%는 광적으로 축구를 즐기거든요. 유럽여행을 가면 현지에 가서 축구를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현장의 열기와 선수들을 직접 만나면 한 문화권의 특징적인 부분, 인종, 관습 등이 묻어나요. 전 세계가 축구라는 공통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건 상당한 매력이죠.”

‘축덕’들 사이에서 ‘주말예능’으로 불리며 축구 본연의 매력이 살아있는 프리미어 리그 등 클럽 축구를 접할 때면 배성재 역시 놀라운 마음이라고 한다. “주말마다 응원해 선수처럼 잘 훈련된 관중들이 똑같은 함성을 지르고 똑같은 행동을 할 땐 군사적인 질서”까지 느껴진다는 것이다. “월드컵도 뛰어넘는 클럽축구의 열기”를 접하니 아쉬움이 따라온다. “스포츠 이벤트를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보다 스포츠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는 배성재는 “국가대항전 못지 않게 K리그 역시 활성화돼 만원관중이 들어차 일사분란한 응원문화가 생긴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월드컵 직후였던 1999년이나 2003년 당시 꽤 많은 수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메웠고, 시청률도 7~8%까지 나왔던 K리그는 현재 전반적인 흥행 저조로 난항을 겪고 있다. 해외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박지성이 국내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시절 중계방송의 시청률은 지상파 못지 않았으나, 지금의 성과는 예년만 못하다. 배성재는 그것 역시 “‘중계의 몫’”이라며 “유의미한 시청률과 관중이 들기 위해선 중계가 선행돼야 하는데 어느 방송사에서도 먼저 나서 K리그 등의 현장중계를 하려고 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사실 배성재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중계 중 하나가 2009년 현장 데뷔 경기였던 성남과 경남의 경기였다. “월드컵이든 K리그든 경기의 중요성과는 무관하게 현장에 가는게 정말 좋다”는 배성재는 “슬픈 현실이지만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엔 관중이 별로 없다. 하지만 현장 데뷔를 한 탄천종합운동장은 특별한 장소”라고 한다.


“우울할 정도”로 “‘불금(불타는 금요일)’과 주말도 반납한 채 축구만 봤다”는 배성재는 경기당 1박2일을 투자해 중계 준비를 한다. 이를 토대로 쌓은 전문성이 묻어나면서도 국적을 떠나 스포츠의 본질에 충실한 중계를 하는 것이 그의 바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제가 만난 축구는 근엄한게 아니라 재밌고 즐거운 놀이였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중계방송은 비장했죠. ‘고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대한의 건아들이 해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 선수들을 영웅처럼 바라봤던 시대를 지났으니 지금부턴 자유롭고 재밌게, 잘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도 된다고 생각해요. 손흥민도 실수할 수 있어요. 과거엔 그 실수를 관대하게 받아들였다면, 이젠 해외선수들과 똑같이 대하는 중계를 하고 싶어요.”

정해진 각본도 없고, 원고도 없고, 자료조사도 혼자 해내는 데다 체력 소모까지 큰 스포츠중계에 6~7년을 올인한 배성재는 모처럼의 여유를 가진 지금의 자신을 돌아봤다. 그렇게 싫다던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흔쾌히 해볼 의사도 생겼다.

“얼굴 출연은 단 일분이지만 스포츠 중계가 체력 손실이 심하다.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한 달동안 탈탈 털리고 돌아와 ‘정글’에 가려니 정말 힘들었다”던 배성재는 “평소 좋아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하필이면 인생에서 제일 바쁠 때 정글에 가게 됐다. 아마존에서 일주일을 보낼 때는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힘들어하는 모습이 방송으로도 그대로 비쳤던 것 같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컨디션이 회복된 지금은 때문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하며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은 베어그릴스의 생존기의 팬이었고 자연을 좋아해 입사 후 첫 휴가로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찾았을 만큼 자연을 좋아하기에 기왕이면 ‘추운 지역’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달 들어 여유가 생겨 돌아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가더라고요. 아직도 막내의 느낌으로 살았는데 이젠 후배들을 가르치고 키워야할 때가 됐더라고요. 최근 요르단 출장 때 페트라에 잠시 들른 적이 있어요. 참 좋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축구중계를 하면서 출장도 오고, 출장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랬어요. 나중에 노인이 돼서 이 일을 못하는 시기가 됐을 때 ‘지금이 내겐 가장 좋은 때였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중계를 길게, 오래 하고 싶어도 지금 이 때와는 다를 것 같아요.” 팍팍했던 삶을 잠시 벗으니 떠오른 생각의 끝엔 연애와 결혼에 대한 바람도 떠올랐다. 일에만 매진한 시간만큼이나 솔로인 시간도 길다. “딱히 이상형은 없다”면서 어색하고 불편한게 싫어 “소개팅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좋다”는 배성재는 목표도 다시 세웠다. “앞으로의 목표는…‘연애’로 바꿀게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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