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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박용근> 심각해지는 선행 학습의 폐해와 특목고 문제
<박용근 카이스트 교수>


입시철이다. 얼마 전 있었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시작으로 서류 접수, 면접, 실기 시험 등 수많은 관문이 남아 있다. 비단 수험생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친구 그리고 미래의 수험생들까지 사회 전체가 숨죽여 그들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다른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필자에게 이 입시철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이다. 시험장 아침 응원해주던 후배들의 모습, 시험이 끝난 후 해방감,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 등이 어제와 같이 생생하다. 하지만 최근 이 입시철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대학 신입생들의 고등학교 활동에 대해 알게되면서 부터다. 입학생들이 전형 과정에서 제출한 수많은 교과ㆍ비교과 활동, 수상 실적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과연 이런 대학 수준의 내용이 고등학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인가’, ‘학생들이 이런 선행 학습을 얼마나 이해하고 이런 활동들을 한 것인가’라는 생각부터 ‘이런 실적을 내려면 정상적인 중ㆍ고등학교 생활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필자는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면서부터 어렴풋이 선행 학습의 폐해를 체감하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이미 아이, 부모들의 입시 시계는 초침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빠른 경우는 유치원생에게 입시 시계를 갖길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우선적으로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한다. 소위 명문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특목고를 나오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목고 진학 여부는 중학교 3학년 초에 결정되는데, 이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밤 11시까지 학원에 있어야 하는 입시 지옥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매우 비정상적인 그리고 비극적인 상황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하루 종일 학원에 앉아 문제만 풀고,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학업에 흥미를 잃은 지금의 청소년들이 안타깝다. 특목고에서 이뤄지는 선행학습이란 것도 개념을 확실히 모른 채 ‘수박 겉 핥기’식 공부에 머물러 있고, 이미 배웠다는 자만 때문에 대학 진학 이후 학업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불합리한 선행학습의 문제의 시발점은 특목고 난립에 있다. 과거 전체 수험생의 0.3%정도 되는 소수의 과학고 (현재는 영재고가 그 위치를 차지한다)가 있었을 때에는 부작용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경쟁률이 5대1이라고 생각하면 과학고에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이 전체의 3% 정도이니, 성적이 극상위인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들과 공교육 과정은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영재고, 과학고, 외고, 자사고로 이뤄지는 수많은 특목고의 정원이 터무니없이 많다는 점이다. 올해 특목고에서 배출되는 학생은 약 7만명, 전체 수험생의 10%가 넘는다. 경쟁률 5대1로 생각하면 전체 학생의 50% 이상이 특목고 준비를 하는 셈이다. 자사고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일반고등학교에서는 공교육이 붕괴돼 교육의 슬럼화가 일어나는 곳도 생겨났다.

좋은 대학에 진학해 더 나은 기회를 누리기 위해서 수험생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대학입시 준비를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대학 입시 준비는 고등학교 때 이뤄지게 해야 한다.

모든 개인은 각자의 상황에서 최대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이 개인들의 이기적인 노력들이 모여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낼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정부 시스템의 역할이다. 안타깝지만, 현 교육시스템은 일부 집단의 이익을 제외하고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용이 너무 큰 극히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행복하지 않는 학생, 비뚤어진 교육열, 지역 이기주의, 불공정한 평가, 부의 양극화와 대물림 등 많은 문제들이 얽혀 있다. 이 문제가 악화돼 큰 괴물이 되기 전에 특목고 문제를 바른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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