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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3만7000원과 13만2013원…접점은 없을까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유독 고민이 되는 기사가 있습니다. 임금 협상을 놓고 노조와 회사 간의 갈등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 한 단어, 한 문장이 조심스럽습니다. 저 또한 노동자이기 때문에 임금 인상이 간절한 노조의 심정이 십분 공감이 되면서도, 요즘처럼 기업하기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알기에 ‘무조건 임금을 올려주라’고 말하기도 참 고민이 됩니다.

요즘 가장 첨예한 노사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곳은 현대중공업입니다. 지난 5월 시작된 임금 및 단체협상은 반년이 넘도록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등의 핵심은 기본급 인상입니다. 노조는 “이제껏 회사를 위해 노동자가 희생해왔다”며 올 해는 반드시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을 이루겠다는 입장입니다. 노조는 올 해 임금 13만2013원(기본급 대비 6.51%, 통상임금 대비 5.9%) 인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진설명>지난 4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체육관에서 열린 임직원 바자회 ‘사랑의 기증품 판매전’ 현장에서 정병모(왼쪽) 노조위원장과 권오갑(가운데) 사장이 참석해 서로에게 모자를 선물하고 함께 웃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회사 측은 올 해 3분기까지 3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봤으니 노조가 고통을 분담해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기본급 3만7000원 인상(호봉승급분 2만3000원 포함)이 마지노선이라는 입장입니다. 지난 6개월 간 이 13만2013원과 3만7000원 사이에서 양측은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노조는 “사측이 노조의 요구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회사는 “위기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는 무리하다”며 수용 불가 입장입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6개월 평행선을 그리다보니 노사는 점차 예민해지는 모습입니다. 대화는 실종되고 비방과 협박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노조는 오는 27일 오후 부분파업을 선언했습니다. 사측은 노조의 쟁의행위가 불법이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습니다. 파업과 법적대응이라는 최후의 카드가 등장한 셈입니다. 24일 오후, 19일만에 진행되는 50번째 교섭이 예정돼있지만 이 자리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노사는 서로가 양보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상경투쟁 현장에서 만난 노조 관계자는 “회사는 노조 요구안을 수용하지도 않을 뿐더러 기본급 3만7000원 인상에서 전혀 입장 변동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노조 요구안을 수용 할 수 없다면 합의안이라도 제시해야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조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지만 입장 변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노조든 회사든 생각의 근원은 같습니다. 각각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위기에 놓인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걱정하고, 세계 조선사 1위인 현대중공업의 앞날을 우려하는 마음은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노조는 제대로 된 보수를 받고 노동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이고, 회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통을 분담해서 다시 경영 정상화를 이뤄가자는 주장입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올 해 임단협은 내년을 바라보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임단협 타결이 안되면 양측 모두 내년도 예산을 책정하고 사업을 구상하는데 지장을 받게 됩니다. 임금을 볼모로 한 이 팽팽한 줄다리기의 피해는 오롯이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임금과 생계가 직결돼있는 노동자들은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야하는 상황이 오게되고, 회사는 생산성 약화에 따른 품질 저하, 납기 지연 등의 후폭풍을 감내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노사 분쟁’이라는 수식어가 점차 치열해지는 세계 조선 시장에서 이득으로 돌아올리 없습니다. 노사분쟁으로 반목이 계속되는 조선소에 자신의 배를 맡길 선주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의 거센추격과 엔화약세 효과를 등에 업은 일본의 반격이 더해지는 상황에서 ‘세계 조선 1위’라는 영광도 찰나의 추억으로 잊혀질 수 있습니다.

진부하지만 정답일 수 밖에 없는 해결법은 양측이 서로 한발씩 물러서는 일입니다. 한쪽이 지치길 바라는 마음으로는 갈등을 봉합하기 어렵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수주 1위, 기술력 1위라는 수식어와 함께 ‘세계 1위 조선사 답게 창사 이래 최대 위기도 노사 협력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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