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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가 된 노랫말…10년을 이은 긴 여운…
‘바람이 분다’ ‘우리는 선처럼…’
‘시인이 뽑은 ‘아름다운 노랫말’
‘가요계의 ‘음유시인’루시드폴
‘노랫말이 아름다운 최고 뮤지션


‘노래’의 사전적 의미는 ‘가사에 곡조를 붙여 목소리로 부를 수 있게 만든 음악’이다. 즉 ‘노래’에서 가사는 곡조보다 우선하며, 위대한 가사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포크 록의 전설’ 밥 딜런(Bob Dylan)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자신의 대표곡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g In The Wind)’의 가사 ‘얼마나 많은 죽음이 있어야 사람들이 비로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알게 될까(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로 60년대 반전의 아이콘으로 추앙을 받았다. 그의 또 다른 대표곡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 “아무 것도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는 지난 2005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문에 인용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딜런은 대중음악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수차례에 걸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가사와 시는 의미를 함축한 운율을 가진 언어로 사상과 정서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대중가요의 가사는 특성상 대개 가벼운 필치의 통속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중가요의 가사는 시를 방불케 하는 멋진 가사로 유행과 상관없는 생명력을 보여주곤 한다.

▶ 시인들 “‘바람이 분다’ㆍ‘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가장 아름다워”=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눈물이 흐른다”(이소라 ‘바람이 분다’ 중)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볼 수 없는 것을 보려 눈을 감아보았지/어딘가 정말로/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그럼 뭔가 잔뜩 들어있는 배낭과/시들지 않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우리 영원까지/함께 가자고/말할수 있을 텐데”(요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중)

문학작품 전문 출판업체 문학과지성사와 소셜 음악감상 서비스 업체 카카오뮤직이 한글날을 맞아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공동 진행한 ‘노랫말이 아름다운 뮤지션’ 조사에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와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조사는 지난 2000년 이후 발표된 노래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에 참여한 시인은 강성은, 김근, 김소연, 김행숙, 김현, 성기완, 신해욱, 유희경, 이민하, 이영주, 이용임, 이우성, 이원, 하재연 등 14명이다.

이민하 시인은 ‘바람이 분다’를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로 뽑으며 “사소한 노랫말에서 오는 감동은 그것이 몸의 언어일 때 가능하다. 언어의 짜임새가 느슨하지 않은 것도 정교한 감성 덕분이다”며 “몸에서 맺혀진 눈물처럼 종이 위에 맺혀진 글자들이 새벽의 어둠을 통과하는 중이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깊고 서늘한 무채색의 읊조림이 보편적인 공감을 절묘하게 빚어냈다”고 찬사를 보냈다.

유희경 시인은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에 대해 “선처럼 가만히 그리고 나란히 누워보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허락된 가장 아름다운 자세가 아닐까”라며 “너와 내가 나란히 누워 두 눈을 감으면 불가능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또 아름답게 찾아오는 기분은 세상에 점처럼 놓인 너와 내가 빛나는 선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에만 가능한 일”이라고 평했다.

이밖에도 김광진의 ‘편지’,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루시드폴의 ‘물이 되는 꿈’ 등이 두 곡과 더불어 상위 7위에 포함됐다.

대중가요의 가사는 시를 방불케 하는 멋진 가사로 유행과 상관없는 생명력을 보여주곤 한다. 최고의 가사로 손꼽히는 ‘바람이 분다’ 이소라(왼쪽)와 최고의 작사가로 손꼽히는 루시드폴.

▶ ‘음유시인’ 루시드폴, 가장 많은 시인 사로잡아= “물/비가 되는 꿈/내가 되는 꿈/강이 되는 꿈/다시, 바다/바다가 되는 꿈/하늘이 되는 꿈”(루시드폴 ‘물이 되는 꿈’)

“나는 이미 찾는 이 없고/겨울 오면 태공들도 떠나/해의 고향은 서쪽 바다/너는 나의 하류를 지나네”(루시드폴 ‘나의 하류를 지나’)

시인들이 ‘노랫말이 아름다운 뮤지션’으로 가장 많이 언급한 이는 가요계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이었다. 루시드폴은 조사에 참여한 14명의 시인 중 무려 6명으로부터 ‘물이 되는 꿈’ ‘사람이었네’ ‘나의 하류를 지나’ ‘문수의 비밀’ ‘풍경은 언제나’ 등 총 5곡을 ‘아름다운 노랫말을 가진 노래’로 추천받았다.

지난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로 데뷔한 루시드폴은 2001년 첫 번째 솔로앨범 ‘루시드 폴(Lucid Fall)’을 시작으로 ‘오, 사랑(2005)’, ‘국경의 밤(2007)’, ‘레미제라블(2009)’, ‘아름다운 날들(2011)’, ‘꽃은 말이 없다(2013)’ 등의 작품을 시를 읽는 듯한 아름다우면서도 담백한 가사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그는 단편소설집 ‘무국적요리’를 발간하며 작가로도 활동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대학원 생명공학 박사 출신으로 지난 2007년 스위스 화학회 고분자과학부문 최우수논문발표상을 수상한 화학자라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우성 시인은 ‘물이 되는 꿈’과 ‘나의 하류를 지나’에 대해 “많은 말을 하려고 하지 않고 단순하고 반복되며 이미지가 굉장히 적은데 그래서 확장하는 것 같다”며 “나는 하얀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색의 근원 혹은 시작이라고 믿는데, 가사가 하얀색의 상태를 지향할 때 듣는 이들은 다채로운 색을 상상하게 된다”고 극찬했다.

이민하 시인은 ‘사람이었네’에 대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남다른 시선과 사물로부터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낸 남다른 의도가 합쳐지는 지점에 결코 남다르지 않은 서정성을 배치해 놓는 미덕을 잃지 않아 듣는 이의 귀와 마음을 동시에 움직여 준다”며 “‘세련된 너의 폭력, 세련된 너의 파괴’로부터 소통에 대한 성찰과 메시지를 따뜻하게 담아낸 ‘세련된 서정’”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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