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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여성파이터로 사는 법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최근 국내 격투기계가 ‘살해협박’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미모의 신인 여성파이터 송가연(20ㆍ팀원)을 향해 한 안티 팬이 “죽이고 싶다. 엔진톱을 샀다. 진심으로 살인충동을 느낀다”는 등의 SNS 글을 작성한 게 불거진 것이다. 이 팬이 이후에도 반성의 기미 없이 비난 글을 이어가자 대회 단체 로드FC 측은 그가 금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강경대응에 나섰다. 고문변호사를 송가연의 법률대리인으로 내세워 모욕과 전기통신법상 명예훼손 등 죄목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송가연은 누구고, 무슨 이유로 안티 팬으로부터 입에 담기 어려운 험담을 들어야 했을까.

송가연은 아마추어 킥복싱 5전이란 단촐한 경력을 뒤로 하고 올 8월 프로 데뷔전을 치른 신인 여자 격투기 선수다. 그 수가 원체 적은 여자 격투기 선수란 희소성에 더해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만 한 예쁘장한 얼굴이 대회단체의 홍보 등으로 널리 알려지며 데뷔 훨씬 전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그가 여느 종목의 여성 선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신인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며,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가연을 향한 안티 팬들의 심리를 추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아가 한국 여성 파이터들의 생존방식을 이해하는 틀이 될 수 있다.

송가연은 프로데뷔전보다 앞선 지난 해 10월엔 선수가 아닌 라운드걸로 같은 대회 케이지에 오른 이래 스타킹, 우리동네 예체능, 퍼펙트 싱어, 주먹이 운다, 룸메이트 등 지상파와 케이블 TV의 오락프로그램을 종횡무진했다. 데뷔전을 치른 이후에도 그 수는 줄였지만 방송출연은 계속하고 있다. 


격투기팬 중 송가연을 향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의 다수는 이런 ‘연예인으로서의 행보’를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소송에 연루된 안티 팬 역시 그랬던 것으로 파악된다. 연예활동이 주목적이고 격투기는 허울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송가연 측도 할 말이 있다. 협박 사건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그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해명과 입장의 변을 들을 수 있었다. 송가연 측은 “송가연도 운동만 하고 싶다. 방송 스케줄 등으로 인해 운동을 못하게 될 때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서 “하지만 이렇게 (연예) 활동을 해야만 송가연 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이슈가 되고 빛을 볼 것이란 책임감으로 방송에 출연한다. 그로 인해 생기는 돈은 결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송가연 측의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업계 사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가 출전하는 로드FC는 국내 몇 안되는 대회단체다. 야구 등 메이저 프로종목을 제외하면 스포츠 경기를 돈 내고 관전하는 이가 극히 적은 게 현실이다. 열악한 수익구조를 아직 탈피하지 못 하고 있다.

2010년 출범해 척박한 환경에서 버티면서 이 대회사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어떻게 해서든 일반 대중의 눈을 끄는 화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적이 일천하더라도, 심지어 아직 데뷔를 하지 않았더라도 미모나 캐릭터 등 스타성 있는 선수들을 홍보의 전면에 내세우게 된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 선택이었다.


격투기 선수들도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린다. 미국 UFC 등에 진출해 수천만원의 대전료와 보너스를 받는 극히 일부 선수만 전업이 가능한 구조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남자 선수는 자신의 체육관을 차리는 등 관련사업을 병행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여자 선수다. 그 수가 열손가락 안에 들 만큼 수가 적고, 출전 기회도 1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이들을 위한 생계 장치가 시장 내에 마련돼 있을 리 없다. UFC에 진출하는 방법도 있지만 수요가 적고 해외 선수들과 실력 격차가 워낙 커 아직 요원한 길이다.

이런 여자 선수들에게 손가락만 빨며 하루종일 샌드백을 치고 있으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운동선수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의 전통 잣대는 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것이다.

겸업은 그래서 권장돼야 한다. 전업(轉業)도 말릴 바가 아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또 다른 직업을 찾게 된다. 피트니스 모델 출신 여성 파이터 송효경(32ㆍ싸비MMA)은 “누가 시켜서 맞고 때리는 건 아닌 것 같다. 항상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으로 케이지에 오르고 있다. 나의 열정이 다하는 날까지 하고 싶다”면서 “언젠가 은퇴한 후에는 피트니스 쪽에서 MMA를 접목한 프로그램을 접목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돈도 안 되고, 장래도 매우 불투명한 이 일을 그저 좋아서 하고 있는 여자 파이터들이다. 경기력이 떨어진다면 그 자체로 비난하면 된다. 하지만 가욋일에 대한 비판은 일정 기간 접어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악플러들의 말은 2주면 잠잠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는다. 뭐든지 즐기면서 하고 싶다”는 송효경은 “팬들과 건전한 소통을 하며 성장하는 파이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송가연 측도 “돈을 생각했으면 격투기를 한 게 잘못된 것”이라며 오로지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송가연 측은 “방송 활동 등에 반감을 보이는 팬들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선수로서의 모습을 거짓으로 보는 시선에는 정말 괴롭다. 송가연도 혼란스러워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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