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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밤 우린 춤을 추고, 괴로운 밤 우린 꿈을 꾸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장르에 관계없이 좋은 음악은 설명하기 어려운 울림으로 감정을 격동시켜 온갖 수사를 부질없게 만든다. 이 같은 울림은 뮤지션이 음악적 완성도를 자신만의 어법으로 끌어올렸을 때 비로소 가능한데, 밴드 로로스(Loro’s)는 시작부터 이런 경지에 다다른 모습을 보여준 독보적인 존재였다.

로로스가 지난 2008년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팍스(PAX)’는 포스트록(주로 실험적인 장르의 음악적 요소를 조합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만드는 록의 세부 장르)이란 캔버스에 서정과 격정을 몽환적으로 채색해 광활한 소리의 풍경을 그려내며 주목을 받았다. 지나치게 사적인 주제들이 범람하던 인디신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인 ‘평화’를 노래하던 로로스의 음악을 일부는 예술적 차원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이 앨범으로 로로스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을 거머쥐었고, 좁은 영역 내에서 열광적인 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밴드 로로스가 6년 만에 정규작인 2집 ‘W.A.N.D.Y’를 발매했다. 왼쪽부터 김석(베이스), 최종민(기타), 도재명(보컬ㆍ건반), 복남규(드럼), 제인(첼로ㆍ보컬), 진실(기타). [사진제공=오름엔터테인먼트]


첫 앨범 이후 로로스의 침묵은 다소 길었다. 일부 멤버들의 군입대 때문에 밴드는 자연스럽게 휴지기를 가졌고, 그 휴지기 이상의 시간이 새 앨범 제작을 위해 소요됐다. 6년의 시간은 멤버들과 밴드의 음악을 변화시키기에 넉넉한 시간이었다. 먼 곳에서 아름다워 보이나 손에 닿지 않았던 사운드가 가시권에 들어온 뒤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을 보면 말이다. 정규 2집 ‘완디(W.A.N.D.Y)’를 발매한 로로스의 멤버 도재명(보컬ㆍ건반), 제인(첼로ㆍ보컬), 복남규(드럼), 진실(기타), 김석(베이스)을 지난 17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도재명은 “군에서 전역하면 바로 음악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전역한 뒤에는 멤버 개개인의 사정 때문에 합주조차 쉽지 않았다”며 “멤버들 모두 많은 음악적 욕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주를 통해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지 않아 밴드를 재정비하고 작업과정에 변화를 주느라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유(U)’를 비롯해 ‘W.A.N.D.Y’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춤을 추자’ ‘언더커런트(Undercurrent)’ ‘호모 세파라투스(Homo Separatus)’ ‘몬스터(Monster)’ ‘바벨(Babel)’ ‘홈비디오(Homevideo)’ ‘세나(Senna)’ ‘위 아 낫 데드 옛(We Are Not Dead Yet)’ ‘송가’ 등 12곡이 담겨 있다. 



도재명은 “타이틀곡 ‘유’는 ‘너’를 의미하는 ‘You’와 ‘우주’를 의미하는 ‘Universe’의 앞글자에서 가져왔다”며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 항상 먼 곳의 큰 것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반성을 했고, 정말 소중한 것은 곁에서 나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너’란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고백했다. 제인은 “앨범 타이틀 ‘완디(W.A.N.D.Y)’는 앨범의 11번째 트랙인 ‘우린 아직 죽지 않았다(We Are Not Dead Yet)’의 약자로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함축하고 있다”며 “오랜 공백기가 있었지만 우린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삶에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앨범을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변화는 다소 추상적이었던 이미지의 부드러운 해체다.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 같은 곡처럼 난해함이 지배했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앨범 곳곳에선 구체화된 사회적인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권력자들의 횡포를 꼬집은 ‘언더커런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연상케하는 가사 ‘하얀 조명과 질문들 그리고 비명소리’가 압권인 ‘호모 세파라투스’, 선량한 시민의 내면을 괴물로 만드는 사회구조를 질타하는 ‘몬스터’, 후반부의 몰아치는 연주로 비극을 정리하고 희망으로 감정을 정리하는 ‘바벨’ 등 앨범 중반부 4연작은 로로스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다. 가사의 힘을 받은 음악은 전작보다 한결 더 웅장한 풍경을 연출한다.

복남규는 “수록곡 절반 이상이 이미 3~4년 전에 완성된 곡이고, 앨범을 준비했던 오랜 기간은 만들어진 곡들을 세공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며 “그림을 그리듯이 작업한 전작과는 달리 이번 앨범은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과정과 비슷했는데, 메시지를 가사로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도재명 “과거에는 합주의 반복을 통해 이미지를 그려내는 방법으로 곡을 만들었는데, 밴드를 재정비한 뒤에는 멤버들 모두 모여서 합주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며 “일부 멤버들의 작업물이어도 모든 멤버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가사와 메시지가 구체화됐고, 이는 자연스레 음악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로로스처럼 공간감을 강조하는 음악을 하는 밴드의 경우, 멤버들의 역량 못지않게 엔지니어의 역량이 앨범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작의 마스터링(녹음된 여러 곡의 음색과 소리의 균형을 전체적으로 잡아주는 과정)을 미국에서 진행했던 로로스는 이번 앨범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국내 엔지니어에게 맡겼다. 완성도를 높이고자 미국와 영국의 스튜디오에 믹싱과 마스터링을 맡기는 흔해진 최근 인디 신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밴드 훌리건의 베이시스트 출신인 믹싱 엔지니어 오혜석은 엔지니어로서는 사실상 신인에 가깝다. 그러나 로로스의 멤버들과 음악을 잘 알고 있던 오혜석은 로로스와 앨범의 공공 프로듀싱까지 맡아 전작 이상의 질감을 가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 이는 뮤지션과 엔지니어의 열린 소통이 무작정 외국에 앨범 마무리 작업을 맡기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도재명은 “1집을 만들 때엔 믹싱과 마스터링에 대한 개념조차 잡혀있지 않아 잘 모르고 제작에 덤벼들어서 아쉬움이 많았다”며 “우리가 꿈꾸는 사운드의 질적인 수준은 매우 높았는데, 엔지니어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매달려준 덕에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로로스는 오는 11월 8~9일 서울 서교동 벨로주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벌인다. 또한 지난 6~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2014 서울국제뮤직페어’ 기간 중 쇼케이스를 벌였던 로로스는 해외 음악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내년 6월 프랑스 칸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음악 박람회 ‘미뎀(MIDEM)’에 초대받아 유럽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로로스는 “그동안 앨범 작업과 공연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인디 신의 다른 뮤지션들과의 교류가 많이 부족했었다”며 “앞으로는 우리만의 섬에서 빠져나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이 앨범은 그 시작”이라고 다짐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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