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사용안함(뉴스속보)
  • <특파원 칼럼-박영서> ‘협상 민주’와 ‘선거 민주’의 충돌

  • 기사입력 2014-10-15 11:34
    • 프린트
    • 메일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대다수 홍콩인들은 영국식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홍콩은 영국 왕의 직할통치 지역으로 영국 왕이 임명한 28명의 총독이 156년에 걸쳐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경제력을 점차 갖추게된 식민지 홍콩인들은 참정권을 요구하기 시작했으나 영국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1880년에 처음으로 입법의원에, 1926년에 처음으로 행정의원에 홍콩인이 임명됐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영국 정부는 홍콩인들의 참정권을 허용했으나 수입, 직업, 교육 정도에 따라 엄격히 제한했다. 따라서 홍콩 성인의 80%는 선거권이 없었다. 투표율도 낮았다. 투표권을 갖고있는 홍콩 시민 가운데 실제로 투표에 참가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한 지역구에선 400명의 홍콩 시민 중 단 1명만이 투표한 예도 있었다. 

1992년 마지막 총독으로 부임한 크리스 패튼은 27명의 전임 총독과는 달랐다. 노련한 정객이었던 그는 홍콩의 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패튼은 중국과 사전협의 없이 참정권 확대를 골자로 한 홍콩의 민주화 방안을 발표했고 1995년 홍콩입법의회 선거를 강행했다. 중국 측은 156년 동안 선거권에 인색했던 영국이 반환 직전 갑자기 ‘민주주의 놀음’을 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당초 중국의 생각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 점진적으로 참정권을 늘려나갈 생각이었다. 홍콩과 중국 본토와의 순조로운 동화를 위해서는 수십년에 걸친 점진적 변화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패튼의 일방적 정치개혁안은 중국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중국은 패튼의 ‘민주화 카드’가 홍콩은 물론 나아가 중국 남부에 서구식 민주화를 촉진시키면서 반환 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계략이라고 반발했다.

1997년 6월 30일 자정 홍콩 반환을 기념하는 축제가 화려하게 막을 올렸지만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중국은 주권 이양과 동시에 패튼이 만들어놓은 입법의회를 해산했다. 손탄하지 않을 홍콩의 미래를 점치는 듯 했다.

최근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는 이른바 ‘우산시위’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홍콩이 갑자기 ‘정치도시’로 바뀌는 분위기다. 그러나 사실 폭발의 불씨는 홍콩반환 이전부터 서서히 축적되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홍콩의 민주파와 학생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를 요구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이를 수용할 뜻이 없어 보인다. 중국식 ‘협상 민주’와 서구식 ‘선거 민주’의 충돌이다. ‘협상 민주’는 국가의 결정이나 지도자 선정 같은 정치적 선택에 사람들이 참여해 협상을 벌여 최대한 일치된 의견을 도출해낸다는 ‘중국식 민주주의’다. ‘선거 민주’는 선거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말한다. 중국 공산당은 ‘선거 민주’가 이해 대립을 남기고 정치적 불안정을 조장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협상 민주’에는 서방같은 정치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당지배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숨어있다.

홍콩의 미래는 홍콩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정의와 양심이라는 보편적인 가치와 결합된 ‘홍콩식 민주주의’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일까. 홍콩(香港)이 말 그대로 ‘향기가 피어오르는 항구’가 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pys@heraldcorp.com
포토슬라이드
  • '지지 하디드의 섹시 패션'
    '지지 하디드의 섹시 패션'
  • ‘2019 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코리아 챔피언십’
    ‘2019 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코리아 챔피언십’
  • 'sexy back'
    'sexy back'
  • '이걸 테이프로 만들었다고?'
    '이걸 테이프로 만들었다고?'
핫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