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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세상읽기> 국군을 위하여!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38선 남쪽으로 포탄이 마구 쏟아집니다. 북한군의 암호명은 ‘폭풍’이었습니다. 민족 최대 비극인 한국전쟁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당시 화력으로 따지면 북한군이 우리 군보다 5배 이상 우세했다고 합니다. 준비된 남침에 속수무책의 방어였던 겁니다. 개전 초반부터 우리 군이 속절없이 밀리기만 했던 이유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벼랑 끝으로 내몰리던 우리 군은 낙동강 전선을 말 그대로 사선(死線)으로 삼아 죽기 살기로 맞섰습니다. 마침내 칠곡-대구 다부동 전투에서, 안강-포항지구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방어선을 구축했고 반격까지 감행했습니다.

우리 군이 이렇게 막판 버티기에 성공한 사연이 뭉클합니다. 유엔이 참전을 선언하면서 인천상륙작전 실행 조건으로 우리 군의 반격을 내걸었던 겁니다. 반격해 와야 인천을 시작으로 수도권에서 협공이 가능한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엔군은 군산 쪽을 염두에 뒀거나 아예 상륙작전을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군의 입장에선 조국을 살려내겠다는 일념으로 이뤄낸 반격인 것입니다. 

광화문 일대에 펼쳐진 국군의 날 퍼레이드(2010.10.1)

결국 인천상륙작전의 길목이 터지고 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수도 서울도 탈환했습니다. 북한군 주력부대 일부는 북으로 퇴각하고 낙오병들은 빨치산으로 둔갑했습니다. 유엔사령부는 이쯤에서 북한에 항복의사를 떠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군의 북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고 합니다. 협공작전에 성공하면서 손발이 척척 맞던 아군 진영에 갈등 기류가 커치고 맙니다.

내친김에 북진을 감행해 북진통일을 이루겠다며 분기탱천한 우리 군은 ‘정지’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움직입니다. 그 선봉이 바로 육군 3사단입니다. 진군에 진군을 거듭하자 유엔군도 작전을 바꿔 북진에 합류합니다. 거침없이 밀고 올라가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습니다.

완전통일이 현실이 될 무렵, 승리의 여신 대신 운명의 여신이 다가오고 맙니다.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참전하면서 다시 전선이 허물어진 겁니다. 엄동설한 눈물의 1.4후퇴가 바로 그것입니다. 살인적인 교전에 교전을 거듭한 끝에 휴전이 이뤄졌고 38도선 대신 휴전선이 그어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리 군의 38선 첫 돌파입니다. 바로 그날이 10월 1일입니다. 그날을 기념해 지금의 ‘국군의 날’이 생겨난 겁니다. 국방경비대 창설 후 각 군별로 기념행사를 해 오다 1956년부터 육해공 3군 통합 국군의 날로 승격됐습니다. 당초에는 법정공휴일이었으나 아쉽게도 1990년부터 평일로 되돌려졌습니다.

마침 오늘(1일)이 건군 66주년 국군의 날입니다. 충남 계룡대에선 ‘기본이 튼튼한 국군, 미래를 준비하는 국군’을 주제로 의장대 시범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습니다. 최근 잇따른 불미스런 군내 사건사고를 감안해 병영문화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선보였다고 합니다. 특히 임석상관 입장 때 군의 과거(건군용사)ㆍ현재(장병대표)ㆍ미래(사관생도 대표) 주인공과 장병 부모들이 함께 한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다 절실한 것은 ‘믿음’입니다. 화려한 이벤트보다 뼈를 깎는 자세로 거듭나야 사랑도 받고 존경도 받고 박수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우리 국군 파이팅 입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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