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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업’ 울진 금강송 생태여행…철지난 바닷가의 운치는 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울진”이라고 하면 죽변, 후포의 아름다운 해변과 키틴질 갑옷 사이를 튼실하게 게살로 매꾼 울진대게, 관동팔경 중 망양정, 월송정 2곳을 보유한 고장, 김민준 송윤아가 나왔던 ‘폭풍속으로’ 촬영지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아름다운 불영계곡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머지않아 이곳엔 세계적인 명상의 메카인 국제명상원이 들어선다.

하지만 이들은 울진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싱그런 공기를 내뿜는 금강송 군락지, 왕피천, 신선계곡이 어우러진 거대한 ‘산소탱크’ 청정 생태지역이다.


경북 영주에서 봉화를 거쳐 울진으로 넘어가는 36번 국도를 가다보면 산과 산사이를 휘돌아 감는 불영계곡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서행하지말고 안전을 위해 차를 세우고 감상하자. 통고산을 조금지나 좌회전해 917번 지방도로 접어든 다음 포장로와 오프로드를 번갈아 타면서 15㎞가량 들어가면 서면 소광(召光)리가 나온다. 원래는 ‘빛네마을’이다. 여기서 ‘~네’는 김씨네 이씨네 할때 그 용법이다. 빛으로 가득한 마을이라는 것이다. 금강송이 가장 좋아하는 게 빛이고 반대로 울울창창금강송 그늘아래 자란 것이 송이이다. 형용모순 같지만, 둘은 음양 길항의 공생관계이다


500년 가까운 수령을 자랑하는 ‘할아버지 소나무’가 지휘하는 가운데, 여의도보다 8배나 큰 1800ha의 면적에 수령 200년이 넘은 8만 그루의 금강송이 기운차게 하늘로 솟아 올라 위용을 자랑한다. 금강송 숲길을 걸으면 마치 기골이 장대하고 잘 생긴 사관들의 호위를 받는 기분이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속담이 금강송 군락지에서 처음 나왔다. 보릿고개에 시달릴때 주민들은 금강송의 풍부한 송진에 곡식 가루를 묻여서 ‘송개떡’을 해먹었는데, 허기를 채우고도 더 먹으면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겨 볼일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볼일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바로 이 속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난하지만 보존정신과 인정이 넘치는 소광리 주민들이다. 선착순 예약자 80명에 한해 금강송 구경을 시키고,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주민들이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단돈 5000원에 제공한다. 풋고추된장무침, 고사리, 콩나물, 멸치고추볶음, 김치, 양파고추간장조림, 순두부, 소시지볶음 등 1식8찬의 풍성한 친환경 산촌음식이다.

생태보존이 잘된 오지라는 점은 이곳이 아무도 범접하기 어려운 천혜의 군사 요새라는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광리 통고산 등 금강송 군락지 일대는 지금의 울진인 우진야현과 북쪽으로는 우계(옥계), 죽령(하장), 만경(근덕), 해리현(원덕) 남쪽으로는 우시(영해),야시홀군(영덕),아혜현(청하)에 이르는 실직국이 남쪽 영토를 신라에 넘겼어도 독립국가로서 위상을 지키려고, 이사부가 점거하던 5세기 초까지 저항하던 군사 거점이다.



왕피(王避)리 일대는 실직국 안일왕이 마지막 피신한 곳이고, 왕피리 내 병위동은 실직국 군사들이 머물렀던 곳, 포전은 군사들이 밥 먹던 곳, 거리곡은 군량미를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던 곳이다. 통고산과 소광리 사이에 있는 삼근리의 복두괘현(일명 박달재)은 왕성이 함락되자 왕이 신하와 옷을 바꿔 입고 피신하다가 복두를 쓰지 못한채 걸어 놓은 고개라는 뜻이다. 자연휴양림이 있는 통고산은 실질국의 최후를 맞은 왕이 ‘통곡하면 넘던 산’이라는 뜻으로 붙여졌다가 인구에 회자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금강송 군락지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른 후 숲으로 내려오는 길은 잰걸음이면 1시간30분 정도, 쉬엄쉬엄 걸으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트레킹하면서 금강송의 근육질을 만져보고 안아보기도 하자. 때마침 이곳을 찾은 글로벌이순신연구회 유명규 회장은 “거북선을 금강송으로 만들었는데, 바닷물에 닿을수록 강해지는 신비함을 보였다”면서 “왕실이 경복궁 등을 지을때 금강송을 찾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생태경관보전지역 왕피천은 1500년전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흘러간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 드는 60.95㎞의 물길이다. 근남면 구산리 상천동에서 서면 왕피리 속사마을까지 5㎞ 구간은 차도가 없어 호젓하게 거닐수 있다.

S자로 휘어지는 계곡을 따라 모래톱과 자갈톱을 걷고, 바위를 오르다가 신발을 벗고 얕은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갈 수 있겠다. 계곡과 산 사이에 조성된 생태탐방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탐방로가 산으로 올라가는 지점에서 물가로 난 길을 따르면 용소를 만날 수 있다. 입구인 상천동 초소에서 용소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김억년(59) 초소장은 트레킹하는 분들에게 믹스커피를 무료로 대접하면서 자상하게 알려준다. 그는 “신선도 살 만한 곳인데, 도회지 땅주인이 산을 방치하는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용소를 바라보니 또 다른 용의 모습이 보인다. 제일 앞의 바위는 용의 머리를 닮았고, 그 뒤로 몸통에 해당되는 암벽들이 줄지어 서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띄는 것이 왕피천 용소의 매력이다.



울진 남쪽, 백암산(1004m) 자락 북동쪽 사면의 바위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좁고 긴 계곡이 신선계곡(신선골, 선시골)역시 감춰져 있는 비경이다. 계곡은 맑고 투명해 자갈과 작은 돌 위를 쉼 없이 오가는 쉬리, 버들치 등의 물고기가 보이기도 하고, 초록빛의 낮은 소들이 이어지다가 검푸른빛을 띄는 깊은 소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계곡 속으로 깊이 들어가다 보면 ‘참새 눈물나기’, ‘다람쥐 한숨제기’ 같은 재미있는 이름들이 나온다. 참새도 눈물을 흘리며 지나갈 정도로 힘든 곳, 암석이 수십층 층계를 이루고 있어 다람쥐도 한달음에 뛰어 오르지 못하고 숨을 돌려야 오를 수 있는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류에는 과거 화전민 30여가구가 살았지만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1968)년 이후 떠났다. 무장공비가 나올 정도의 감춰진 오지이자 비경이다.


36번 국도를 달려 바닷가에 이르면 9월 철지난 바닷가의 운치가 멋지다. 슬리퍼를 벗어놓고 백사장을 뛰어다니는 어촌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는 우리에게 또다른 힐링을 선사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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