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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甲의 성희롱에 속수무책인 乙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A(23ㆍ여) 씨는 지난해 졸업 작품 면담차 담당 교수 사무실을 찾았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교수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디자인은 너같은 여자애들처럼 아름다워야 해”라는 발언을 한 것. 50대 후반의 이 교수는 평소에도 여학생들의 치마를 털어주는 등 ‘도를 넘는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나 A 씨는 졸업 심사에서 탈락될 것이 우려돼 불쾌함을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직장인 B(26ㆍ여) 씨는 최근에야 부모님께 초등학교 때 겪은 성추행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B 씨는 “육상부에서 활동하는 6개월간 코치가 매번 허벅지와 엉덩이를 만졌다”며 “당시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내가 당하고 있는 게 뭔지도 잘 몰랐고, 선생님께 대들면 안된다는 생각에 그냥 넘겼다”고 했다. B 씨는 그 때의 기억 때문인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 자신이 좋다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고 했다.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캐디 성희롱 사건, 대구교대 총장의 학생 성희롱 의혹 등 최근 사회 각계 각층에서 갑(甲)의 지위를 악용한 성희롱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도 자기계발서로 유명한 출판사 쌤앤파커스의 상무가 여직원 성추행 의혹으로 퇴사를 했다가 다시 복직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출판노동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같은 ‘갑의 횡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위계질서가 뚜렷한 학교와 직장의 경우 갑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 4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여성 직장인 10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3.6%가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과반수 이상인 51.4%는 성희롱 가해자로 직속 상사를 지목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2년 서울대 여성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280개 대학을 조사한 자료를 살펴 보면, 2011년 한해에만 전국 각 대학 성폭력상담기관에 336건의 사건이 접수됐다. 이 중 36건은 교수가 학생과 교직원 등을 상대로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성희롱 가해자가 징계나 처벌을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설문에 참여한 여성 직장인 가운데 3.6%만이 가해자가 징계나 처벌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대부분의 직장에는 위계구조가 존재하는데 여기서 권력 관계를 이용한 갑의 성범죄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 관계자는 “이를 근절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조직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물론 개개인의 성적인 인식이 잘못된 것도 있지만, 조직 차원에서 먼저 조직 내부의 성문화 실태 등을 점검하고 성희롱을 묵인하는 분위기를 개선함으로써 구성원들의 성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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