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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지기자 직접 선물 배송해보니…살아나는 밑바닥 경기 느껴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경기도 분당의 한 요양병원에 10년째 머물고 있는 레지나(세례명) 할머니는 지난달 29일 오랜 친구로부터 따뜻한 안부 인사를 받았다.

그와 함께 요양병원 같은 방을 쓰다 몇해 전 다른 곳으로 떠나간 헤레나로부터 온 추석 선물이었다. “고맙죠. 반갑고 또 부담스럽고…” 선물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잠깐 소중한 추억들이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추석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선물을 보내 안부를 묻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기자는 29일 하루 분당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추석 선물 세트를 배송했다. 어떠한 특수도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다 할 만큼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던 올해지만, 추석을 계기로 조금씩 밑바닥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이 움트고 있었다.

오전 7시. 경부고속도로 인근에 위치한 롯데분당물류센터가 모처럼 북적북적해졌다. 평소 15명 정도의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는 이곳은 명절 때만 경기 지역 선물 세트 배송 출발지가 된다. 각지에서 배송 일감을 따내기 위해 240여명의 운전기사와 배송원이 모여들었다. 한 운전기사는 “좀 더 편한 배송지를 맡기 위해 전날부터 미리 이곳에 와 차 안에서 밤을 보내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출발 전 배송원들은 각자 맡은 추석 선물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목록에 따라 배송물이 제대로 차량에 실렸는지를 여러 차례 확인하고, 효율적인 동선에 따라 배송할 순서를 짰다. “동선을 잘못 짜다보면 밤 늦게까지 배송을 못 마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롯데백화점의 한 직원은 몇해전 처음 배송 파견 나와 저녁 9시까지 고생했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간단한 교육을 받고 배송물 점검을 마친 기자도 급히 차에 몸을 싣고 배송지로 향했다. 첫 배송지는 구미동의 한 아파트 가구. 초인종을 눌렀지만 평일 오전 시간인 탓에 인기척이 없었다. 송장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보니 경비실에 맡겨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롯데백화점 서비스아카데미의 장선순 씨는 “일반적으로 50% 이상은 경비실에 맡겨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배송한 물량의 상당수도 경비실에 맡겨야했다.

롯데분당물류센터가 이른 아침부터 추석 선물 세트 배송 채비로 분주하다. 지난 8월 29일 추석 선물 배송 체험에 나선 본지 김성훈 기자(왼쪽)가 차량에 올라 자신에게 할당된 배송 물량을 실어 정리하고 있다. 이날 하루에만 6000여건의 선물 세트가 이곳을 거쳐 고객들에게 배송됐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선물세트를 도로 들고 내려와 경비실에 가보니 이미 여러 건의 선물세트들이 좁은 경비실 구석에 가득 쌓여 있었다. 경비원 김성태 씨는 “명절이 되니까 하루에 40~50건씩 선물 세트가 들어온다. 한 집이 10건씩 받는 경우도 있다”며 추석 분위기를 전했다.

어떤 아파트는 경비실로는 물건을 감당할 수 없어 작은 창고를 별도로 택배 물량 보관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었고, 다른 아파트 경비실은 밀려드는 택배에 몸살을 앓았던 듯 아예 배송기사를 위한 안내문을 창문에 부착해 뒀다. 안내문에는 ‘경비원은 수령인란에 서명하지 않습니다’ ‘오배송은 경비원이 책임지지 않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선물세트는 가장 무거운 과일이래봤자 10㎏ 남짓으로 성인 남성이 들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였지만, 여러차례 들고 내렸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팔이 덜덜 떨렸다. 구름에 햇빛이 사위어 무덥지 않은 날씨였음에도 어느새 셔츠는 땀으로 흥건해졌다. 여차저차 할당된 물량 배송을 마치고 물류센터로 돌아왔을 무렵 몸은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배송에 동원된 롯데백화점의 한 직원은 “몸은 힘들고 피곤하지만 썰렁한 명절 분위기가 아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날 분당물류센터에서 배송된 선물 세트 물량은 6000여건. 아직은 선물세트 판매 초기여서 물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할만큼 침체됐었던 지난해 명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롯데백화점이 추석 선물 세트 판매를 시작한 지난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7일간의 실적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선물세트 판매실적이 전년에 비해 46% 뛰었다. 특히 축산(정육ㆍ갈비)는 47.6%, 굴비는 84.6%, 건강상품은 37.9%, 주류는 46.6%, 인스턴트ㆍ생필 제품이 57.8% 신장하는 등 주요 상품군의 매출이 전년보다 대폭 상승해 판매 실적을 견인했다. 롯데백화점 측은 올해 추석 선물 배송건수가 42만건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순구 분당물류센터장은 “2일부터 5일까지가 배송 물량 피크가 될 것”이라며 “이 기간에는 현재보다 두 배 많은 250여대의 차량을 동원해야 한다. 롯데백화점 직원들도 총동원된다”고 말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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