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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피말리는 그라운드위 승부…智 · 德 · 猛 다 갖춰야 명장
소통없는 막무가내식 감독 퇴출 0순위
시대적 변화에 선수들도 일방통행 거부
과거의 명성 연연 하루아침에 추락도

야구 김성근·배구 신치용·농구 유재학
‘큰형’리더십 갖춘 만능형 지도자 평가


최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김시진 감독이 ‘식물감독’ 신세가 됐다. 구단에서 사퇴를 압박했고, 김 감독이 이를 받아들여 사택까지 정리했지만 신동인 구단주 대행의 만류로 일단 다시 짐을 풀긴 했다. 이미 권위는 떨어져 령이 안 선다. 20여 경기가 남은 잔여시즌 동안 허수아비 노릇을 해야 하는 굴욕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올 5월 권두조 1군 수석코치에 대한 선수들의 항명사태와 정민태 투수코치에 대한 투수진의 반발, 용병 히메네스의 막가파식 태업에 속수무책이던 그에게 팀을 끌고 갈 리더십이 없다고 결론내려진 게 원인이다. 이를 구실로 내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그를 시즌 중에 내치려 한 구단 프런트에 문제가 없진 않지만, 김 감독도 할 말은 별로 없는 처지다. 파리 목숨이 된 게 요즘의 감독이란 자리의 현주소다.

국내에서 프로구단 감독 노릇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시대는 지장(智將)도, 맹장(猛將)도, 그 중 으뜸이라는 덕장(德將)도 아닌 이 세가지 덕목을 모두 갖춘 만능 리더십을 원한다. 여기에 조직 문화와 철학을 심는 능력까지 덤으로 요구한다. 권한 일부는 떼어서 구단 프런트가 가져가 버린 까닭에 때와 장소를 잘 만난 복장(福將)이 아니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 돼 버렸다.

구단을 소유한 기업은 구단 운영을 더 이상 사회공헌 활동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 경영과 마찬가지로 숫자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지며 유형 무형의 손익을 셈한다. 그러자니 큰 돈이 들어가는 선수 영입과 운영을 프런트에서 직접 챙기고, 감독에게는 현장 지휘를 맡기는 등 역할 분담도 이뤄지고 있다. 이는 스포츠마케팅 차원에서 일견 합리적이며 미 메이저리그 각 구단의 시스템이기도 하다.

지휘 대상인 선수들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상명하복의 강요에 요즘 선수들은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는다. 머리가 굵은 FA 출신 선수들이나 해외 방식에 익숙한 외국인 선수들은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은 권한을 덜었으니 팀 성적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감독직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적어도 국내 풍토에서는 아직도 성적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온몸으로 진다. 선수가 없으면 없는대로 선수육성을 하면서 성적을 내야하고, 선수를 사다 줬으면 그 이상의 성적으로 곧바로 증명해야 하는 임무가 떨어진다. 계약기간 도중에라도 맘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칼로 무 베듯 쳐내버리기 때문에 장기적인 플랜으로 팀을 육성하기 어렵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농구와 배구에는 다년에 걸쳐 성공가도를 달리는 지도자들이 있다.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과 신치용 삼성화재 블루팡스 감독이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유 감독은 우승 전도사다. 지난 시즌 우승으로 모비스의 통산 5번째 우승과 2연패를 이끈 것은 물론, 개인 통산 최다인 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신 감독은 자세히 말할 것도 없다. 소속팀 삼성화재를 7년 연속 챔피언에 올렸다.

요즘 프로구단 감독들은 웬만한 전문경영인 뺨칠 수준의 리더십 능력을 요구받는다. 매해 우승에 도전해야 하고, 그 짧은 시기 미래에 써먹을 유망주도 키워야 하다. 그래서 지장·덕장·맹장의 모든 덕목을 통합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구단들의 목표는 다 똑같다. 우승이다. 목표 달성을 리더의 절대과제로 친다면 우승하지 못한 감독은 실패한 리더다. 약간 평가기준을 낮춰 성적 상승, 우수한 성적의 유지를 조건으로 한다 해도 그 해의 성공한 리더는 두세명에 그친다. 나도 잘했지만, 남이 더 잘했으면 나는 실패자가 되는 게 이 세계다. 유 감독과 신 감독의 실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이들의 성공비결은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요즘 시대에 요구되는 만능형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상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만가지 수’의 전략을 갖고 있다 해서 ‘만수’란 별명으로 통하는 유 감독은 기본적으로 지장이다. 선수 시절부터 두뇌 회전이 비상했다. 다정다감, 불같은 성미는 ‘농구 대통령’ 허재 감독에 못지 않다. 시시각각 표정을 바꿔가며 코트 안의 선수, 심지어 심판들과 감정과 의사를 교환한다. 훈련과 경기에서 선수들을 달달 볶으면서도 확실한 원칙과 명분을 앞세우니 선수들이 수긍하고 꼼짝없이 따른다. 사적으로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선수는 ‘큰형’ 리더십으로 보듬는다. 지맹덕을 다 갖췄다.

신 감독 역시 다르지 않다. 경기 중계에서 시청자들이 보는 그의 모습은 덕이 넘치는 신사지만, 선수들을 대하는 실제 모습은 맹장에 더 가깝다. 부진한 선수는 공개적으로 질책하기도 한다. 스타 플레이어들을 한 데 묶어 탄탄한 조직력을 구축한 것은 지와 덕이다. 창단 팀에서 10년을 함께 한 데서 보듯 프런트 및 구단 상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이 있다.

다시 야구로 돌아와 보자. 만능형 리더십에 가장 가까운 이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다. 가는 곳마다 비교적 단기에 탁월한 성적을 냈을 뿐 아니라 미래를 책임져줄 유망주까지 길러냈다. 팀 전력 이상의 성적을 이뤄내는 ‘야구의 신’이었다. 하지만 일인주도형 스타일인 그는 구단 프런트와 항상 마찾을 빚어왔다. 자주 쫓겨난 건 그래서다. 김성근 감독이 구단 상부와 관계만 잘 유지한다면 즉시 만능형이라 봐도 무방하다.

‘V3’를 달성해 성적상으로는 가장 뛰어난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은 덕장이자, 부자구단의 혜택을 받고 있는 복장이다.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역할 분담이 잘 돼 있는 구단 특성상 지장 역할에만 우선 충실하고 있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위기상황에서 급추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덕목도 개발해야 한다. 지난 해 구단과 재계약 당시 “덕장으로서만 아니라 지장의 능력도 겸비하고 싶다”며 바람을 밝힌 바 있긴 하다.

맹장 중의 맹장인 김응용 한화 이글스 감독은 당장 변화와 도태가 판가름날 중대 기로에 섰다. 덕장의 상징 김인식 감독이 팀 정비에 실패한 채 신진급 지덕장 한대화 감독에 바통을 넘겼으나 팀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그래서 2012년 말 그가 왔다. 하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조용직 기자/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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