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서울에만 1만8,000대…‘방범용’ 이라 쓰고 ‘감시용’ 이라 읽는다
예산 부족 구청들, 설치 민원에 몸살
1332대 용산구, 도봉구보다 3배 많아…자치구 예산 반영 부익부 빈익빈 뚜렷

범죄 예방 불구 24시간 사생활 노출…무차별 설치 ‘또다른 공해’ 논란 여전


#.즐길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가로등 불빛도 외면하는 늦은 밤 공원 구석 자리는 늘 연인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한적한 공원에서 사랑을 속삭였고, 남몰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따금 산책 나온 동네 주민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자리를 피해주는 낭만도 있었다. 공원은 헤어지기 아쉬운 연인들의 마음을 달려주던 그날의 마지막 데이트코스였다.

이젠 공원에서 이런 추억을 만들기가 힘들어졌다. 공원 구석구석마다 CCTV(폐쇄회로카메라)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공원 출입구 위주로 설치된 CCTV는 어느새 연인들의 자리까지 차지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CCTV의 화질과 성능은 더 좋아졌고 감시망은 더 촘촘해졌다. ‘방범용’이라고 써붙여진 CCTV 안내표지판은 ‘감시용’이라고 읽힐 때가 종종 있다.

한때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홀대받던 CCTV를 이제는 앞다퉈 설치해달라는 민원에 관할 구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범죄 해결사로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박영재 서울시 개인정보보호팀장은 “CCTV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해 늘리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25개 자치구에서 운영 중인 CCTV는 모두 1만7829대로, 2년 전보다 61.1%(6765대) 증가했다. 2011년까지 1만1064대였던 CCTV는 2012년 1만3642대로 늘었고, 지난해에만 4187대가 더 설치됐다.

CCTV가 가장 많이 설치된 자치구는 용산구(1332대)이며 강남구(1297대), 은평구가 1182개 순이다. 반면 CCTV가 가장 적은 곳은 도봉구(345개)다.

CCTV는 당신이 한 일을 샅샅이 알고 있다. 각종 범죄 해결과 예방에 탁월한 기능을 보이고 있는 CCTV. 민간용까지 합치면 450만대로 추산되는‘ CCTV 시대’ 앞에서 현대인은 24시간 CCTV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인권 침해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CCTV는 현대판 포청천인가, 현대판 빅브라더인가.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CCTV는 정부와 시ㆍ도에서 예산을 지원 받아 설치하기도 하지만 자치구에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경우도 있다. 재정자립도 1위(64.4%)인 강남구의 경우 넉넉한 재정만큼 CCTV 자체 보급률이 89.6%로 가장 많다. 재정 형편이 가장 열악한 노원구(17.2%)는 34%만 자체 예산으로 설치했다. 나머지는 정부와 시에서 지원해준 것 들이다.

최근에는 차량용 블랙박스가 CCTV 보급 당시의 전철을 밟고 있다. CCTV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블랙박스는 교통사고의 잘잘못을 따질 때 결정적 증거로 사용되면서 개인 차량에만 260여만대가 보급돼 있다. 차량 5대 중 1대에 ‘움직이는 CCTV’가 설치된 셈이다.

하지만 블랙박스는 단순히 사생활 침해를 넘어 CCTV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블랙박스의 설치와 운영은 민간 자율이다. 특히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에 대한 규제가 없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범죄용으로 악용할 수 있다.

블랙박스까지 포함하면 CCTV는 피하기가 힘들 정도로 우리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다. 하지만 CCTV는 동전의 양면성이 있다. 사생활 침해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안전’이라는 미명 하에 일부 지자체에서 무차별적으로 설치하는 CCTV는 또다른 공해를 야기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빅브라더’ 앞에 놓인 우리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범죄 예방을 위해 CCTV를 확대, 보급하는 것만 능사는 아니다고 말한다. 이보다 범죄 예방 효과가 입증된 ‘범죄예방디자인(셉티드ㆍCPTED)’을 마을에 적용하고, 주민들간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는 게 근원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진성 기자/ipe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