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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박영서> 끝나지 않은 마약과의 전쟁

  • 기사입력 2014-08-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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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 중앙에는 장엄한 인민영웅기념비가 우뚝 솟아있다. 기념비의 받침대 4면에는 근·현대 중국의 혁명여정을 조각한 8개의 거대한 부조(浮雕)가 있다. 그 첫번째가 1839년 임칙서(林則徐)가 광둥(廣東)성 후먼(虎門) 백사장에서 아편을 태우는 장면이다. ‘아편전쟁(1840~1842)‘ 발발의 원인이 된 이른바 ‘호문소연(虎門銷煙· 호문에서 아편을 소각하다)’이다.

1830년대 후반 청나라 조정은 아편문제로 들끓었다. 아편이 범람하면서 국민 건강과 국가 경제가 피폐됐기 때문이다. 아편문제는 정치쟁점화됐고 조정에는 두가지 주장이 맞섰다.

황작자(黃爵滋)는 강경주의자였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편무역을 금지해야한다”면서 “아편을 피우는 자는 사형 등 엄벌에 처해야한다”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허내제(許乃濟)는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아편을 막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뇌물수수 등 폐해도 크다”면서 “차라리 아편무역을 합법화해 관세를 부가하자”고 맞섰다.

갑론을박을 거쳐 아편 척결쪽으로 결론이 났다. 도광제(道光帝)는 임칙서를 황제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흠차대신으로 임명하고 광저우(廣州)로 파견했다.

황제의 명을 받은 임칙서가 광저우에 도착한 때는 1839년 1월, 당시 그의 나이 52세였다. 그는 “아편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해 6월 임칙서는 후먼 바닷가에서 2만상자의 아편을 폐기했다. 그는 어마어마한 양의 아편을 처분하기 위해 특이한 방식을 택했다. 땅에서 소각하면 아편 성분이 땅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궁리 끝에 바닷가 모래밭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바닷물을 채워놓은 후 아편을 쏟아부었다. 반나절 담갔다가 석회를 부어 화학처리를 한 후 밀물 때 바다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임칙서의 강경한 태도는 영국에게 아편전쟁을 일으킬 빌미를 제공했다. 청나라 구식 해군은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세계 최강 영국 해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패전의 대가는 말 그대로 굴욕적이었다. 청나라는 1842년 ‘난징(南京)조약’을 통해 5개 항구의 개항, 홍콩 할양, 영사재판권 등 영국의 일방적인 요구사항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아편전쟁의 패배로 청나라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화민족의 굴욕은 아편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이달들어 중국 당국은 한국인 마약밀수범 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중국은 마약사범이 외국인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최근 몇년 새 한국인 뿐 아니라 영국인, 일본인, 필리핀인, 파키스탄인, 남아공인이 마약밀매로 사형을 당했다. 자국민이 사형당할 처지에 놓이자 이들 국가들은 외교채널을 통해 선처를 호소했지만 예외는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마약범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170여년 전의 임칙서처럼 단호하다. 마약에 대해 강력한 응징을 고집하는 중국정부의 태도에 이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안다면 ‘중국식 마약전쟁’의 까닭을 이해할 만 할 것이다.

/py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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