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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윤 일병과 모병제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지난 한 주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극악의 폭력 상황에 노출됐다가 안타깝게 사망한 윤 모 일병 사건이 온 국가를 흔들었던 한 주로 기억될 듯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치고 받던 여야도 윤 일병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대통령은 ‘일벌 백계’를 주문했고, 국회의원들도 사고 사단을 직접 방문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노력도 기울였습니다. 물론 국회 국방위원들의 ‘화이팅 사진’은 분별 없었다는 비판도 있었지요.

윤 일병이 당한 행위는 정말이지 끔찍합니다. 맞아 쓰러지면 포도당 수액 주사를 맞게 한 다음 다시 때리기, 맞아서 다친 다리를 절면 전다는 이유로 또 폭행했고, 개 흉내를 내게 강요하면서 바닥에 뱉은 가래침을 핥아 먹게 했으며, 안티 프라민을 주요 부위에 바르게 하는 가혹 행위도 있었습니다. 윤 일병의 시신에선 파열된 비장이 나왔고, 갈비뼈는 15개가 부러졌습니다. 비장은 교통사고 수준의 큰 충격이 있을 때에나 파열되는 것으로 알려지는 장기 입니다. 폭행 수위를 짐작케 합니다. 윤 일병이 자대 배치를 받고 30여일 동안 그는 하루도 구타를 당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맞은 겁니다.

윤 일병을 때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 병장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악행’을 모두 한 그는 그러나 군대에 가기 전까진 평범한 대학생이었다는 게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입니다. 지금은 가해자가 된 이 병장도 이등병 때엔 피해자였습니다. 제설작업에 투입됐던 그는 손가락을 다쳤지만 그에게 돌아온 말은 “나이 처먹고 그것 밖에 못하냐”, “군대가 만만하냐” 등의 폭언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간부에게 알렸다가 ‘배신자’가 됐고, 이후엔 다른 부대로 전출됐습니다.

한 때는 피해자였던 그가 끔찍한 가해자가 된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일각에선 이 병장이 사회 있을 때부터 폭력성향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고, 입대 이후 검사에선 ‘모범 장병’으로 부대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만일 원래부터 인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군에 가기 부적합한 사람을 부대에 밀어넣은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징병제 하에선 부적합 인사를 가려내는 데 군 간부들이 치러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은 “부적합 인사를 가려 올리면 간부들 스스로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 부적합자냐는 질책을 상부로부터 받으면 해명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뜩이나 인구 감소로 입대자 수가 줄면서 병력 감소는 군의 큰 골치거리가 되고 있는 것도 부적합자 선별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기도 합니다.

여기서 도출 할 수 있는 하나의 해법이 있습니다. 바로 모병제로의 전환 모색입니다. 군의 반발은 자명합니다. 그들에게 모병제로의 전환은 군인 수 축소로 읽히고, 이는 곧 ‘밥그릇’의 문제로 읽힐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깊게 생각해야할 부분은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제2 제3의 윤일병 사태는 또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불거지는 많은 수의 군대 내 인권문제는 ‘원치 않는 군대’에 강제 입영했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병제로 바뀐다면, 그리고 월급을 받기 위해 군대에서 일을 했다면 윤 일병처럼 온갖 구타를 겪어내야만 하는 어떤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지 않겠습니까.

한 포털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윤일병 사건으로 비롯된 군 모병제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대에 반드시 가야하고, 가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하는 강제 조항이 없다면, 현재와 같은 끔찍한 인권 유린 사태가 반복되는 현실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들이 모인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의 한 후보가 ‘모병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적도 있습니다.

모병제 주장엔 반박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이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해석을 조금 가하면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여서, 적국(북한)의 위협이 매우 무겁다’쯤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은 최근 징병제를 폐지키로 결정 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 반열에 급속히 다가가고 있는 중국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받는 위협이, 남한이 북한으로부터 겪는 전쟁도발 위협보다 적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가가 지불해야하는 돈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반박도 다수 나옵니다. ‘예산이 없다’는 주장이지요. 그러나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한국이 ‘돈이 없어서’ 여전히 50년 전에 만들어진 군대 체제를 유지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군 인권 문제’ 해결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앞선 문제제기들 보다 모병제로 가는 길을 더 강하게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신화’라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거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칭송, 또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믿음 등은 ‘꼭 군대에 가야 하냐’는 의심을 품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난다는 분석입니다.

하나씩 분석해보죠. 우선 모병제를 선택해 군대에 반드시 가지 않아도 되는 미국 남자 일반을 가리켜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는 국방의 의무가 정말 신성하다면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이 먼저 달려가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역시 사실 아니겠습니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신화는 삶의 ‘고생 총량’이 정해져 있어야 진실이겠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겪는 ‘삶 고생’의 총량은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말 그대로 ‘신화’들일 뿐이지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생명을 위협하는 군대 내에서의 가혹행위가 5년 사이 3배로 늘어났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2001년 이후로 인권위에 접수된 군 관련 진정은 모두 1272건 가운데 폭행·가혹행위가 235건(18.5%)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군대 내 가혹행위가 존재하리란 추측은 어렵지 않습니다. 최근 부대 내 인권 유린 행위들인 ‘변기 핥기’, ‘풍뎅이 먹이기’, ‘똥물 먹이기’ 등은 인권위 진정 사건엔 포함되지도 않은 사안들입니다.

윤 일병 사건 이후 정치권에선 ‘휴대폰 지급’, ‘퇴근 후 자유생활’, ‘인권 교육 강화’, ‘실태 조사’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 윤 일병 사태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또다른 유사 사례가 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들이 크다는 점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해법들은 모두 단기적인 것들입니다. 부대 내에서 일어나는 구타 가혹행위의 근원엔 20대 초반 피끓는 젊은이들이 좁은 공간 안에서 서로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는 그 구조적 모순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들어온 순서대로 처음엔 피해자가, 나중엔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악순환입니다. 이를 끊기 위해선 ‘모두가 반드시 군대 가야 한다’는 징병제 근간에 대해 의심을 품어야 합니다.

윤 일병 사태 이후 세간에선 ‘참으면 윤일병, 못참으면 임병장’이란 말이 다수 회자됩니다. 이를 뒤집으면 참아도, 못참아도 어느쪽으로든 사고는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윤 일병 사고를 최초로 신고한 용기있는 한 사병은 자신의 신고 이유에 대해 “먼 훗날 내 아들이 군대가서 똑같은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큰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임병장과 윤일병이 교차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군대가야 남자된다’고 말을 해야만 할까요.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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