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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제3부 전원일기<36> 8월, 무더위 속 수확하고 나누는 전원의 기쁨을 맛보다
장마가 끝나면 8월 초·중순까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전원생활도 땡볕에 숨이 턱 막힌다. 한낮 실내 온도가 30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마치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하지만 땀 흘려 농사지어 거두는 수확의 기쁨과 그 수확물로 차린 소박한 건강밥상은 정녕 농부만이 맛볼 수 있는 자연의 축복이다. 하순 들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되면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아침과 저녁에는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절정의 한여름과 서서히 다가오는 가을을 함께 느끼는 때가 바로 8월이다.

8월의 전원풍경

■풍성한 ‘작물의 곳간’, 넉넉한 ‘마음의 곳간’

강원도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대표적 농산물이 있으니 바로 옥수수와 감자다. 강원도 홍천 산골에 살고 있는 필자 역시 매년 옥수수와 감자, 그리고 고구마는 꼭 심는다. 특히 유명한 ‘홍천찰옥수수’를 비교적 많이 재배한다.

옥수수는 4월 상순부터 6월말까지 순차적으로 심으면 7월 하순부터 추석 전후까지 계속 수확이 가능하다. 감자는 ‘하지감자’라 대개 장마 전에 수확을 하지만, 늦어지다 보면 8월 상순까지 캔다.

옥수수와 감자는 수확 후 바로 삶거나 쪄서 먹고, 또한 삶아서 냉동 보관하거나 저장고에 저장해두면 두고두고 오래 먹을 수 있다. 7~8월 시골에선 신선하고 건강한 대용식사가 된다.

8월 중순 강원도 논벼가 자라는 모습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그건 갖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열매를 맺기 위해 바로 서고자 하는 옥수수의 꼿꼿함, 즉 직립성이다. 옥수수는 비바람이 부는 장마철과 태풍에 곧잘 쓰러진다. 심한 경우 줄기 밑동이 휘어진 채로 자신의 몸체를 곧추 세우기도 한다.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생명의 경이, 성장과정에서 보여주는 바로 서고자 하는 인내력, 이후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겉껍질로 겹겹이 감싸고는 비와 해충을 이겨내는 결실과정 까지 옥수수는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작물 재배의 묘미는 수확의 기쁨이다. 정성을 쏟아 기른 감자와 옥수수가 풍성한 열매를 안겨줄 때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재배 및 결실 과정에서의 그 생명 에너지까지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처럼 나와 가족이 직접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을 이웃, 친인척, 지인에게 나눔 하면서 얻는 기쁨 또한 크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주고받는 계산된 선물과는 그 동기(정성)와 의미(베품)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고구마순 채취

전원생활을 하면 비록 돈(현금)은 없지만, 이렇듯 애써 키운 농산물이 풍성한 수확으로 보답을 하니 농사철 전원의 곳간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직접 먹어 배부르고, 또한 이를 이웃에게 나눔 하는 넉넉함 까지 함께 추수하는 것이다. ‘전원의 곳간’을 열어 나눔으로써 ‘마음의 곳간’은 여유로움, 넉넉함으로 풍성하게 채워진다. 작물의 생산과 나눔이 새로 맺게 해주는 복된 열매다.

‘고구마’이야기도 빼뜨릴 수 없다. 필자는 고구마를 사랑한다. 그 이유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진짜 친환경 작물이기 때문이다. 거름을 거의 주지 않아도 되고, 농약도 필요 없다. 초기에 뿌리만 잘 내리도록 관리해주면 가을과 겨우내 더할 나위없는 양식이 된다. 또한 고구마는 열매를 수확하기 전에 순을 채취해 김치를 담그거나 데쳐서 나물로 먹을 수 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진정한 ‘효자작물’이다.

김장배추 모종

■여름 농사 갈무리, 새로 시작하는 김장 농사

전원으로 들어와 5년째 농사를 지어보니,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 일반 작물의 경우 농사를 준비하고 씨 뿌리고 관리하는 일도 그렇지만 수확과 뒷정리가 더욱 힘들게 느껴졌다. 실제 옥수수의 경우 수확 후에 풀을 억제하기 위해 피복한 검정비닐을 벗겨내려면 옥수수 줄기를 일일이 낫으로 베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과정에서 옥수수 뿌리가 비닐을 잔뜩 움켜쥐고 있어 일일이 뜯어내야한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감자 또한 호미로 손작업을 해야 하고, (호박)고구마는 아예 삼지창으로 흙을 떠내다시피 해야 하므로 무척 힘이 든다.

감자 옥수수 등 여름 농사가 얼추 갈무리 되면 입추와 칠석 어름에 김장농사를 시작한다. 배추는 싹이 여리니 모종으로 가꾼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벌레를 잡아주지 않으면 남아나지를 않는다. 무는 뿌리채소라 씨를 직접 밭에 뿌린다.

필자는 감자를 수확하면서 배추, 무밭을 미리 일구어 놓는다. 또 옥수수 수확 후 밭에 피복한 검정비닐을 그대로 재활용한다. 수확이 끝난 옥수수 줄기를 잘라낸 뒤 옥수수와 옥수수 사이의 공간에 새로 구멍을 내어 배추와 무, 쪽파 등을 심는다.

실제 김장 농사를 지어보니 무 보다는 배추 기르기가 더 어려웠다. 어린 배추에 어찌나 벌레가 많이 꼬이는지, 잡고 또 잡아도 끝이 없다. 그렇다고 물러설 순 없는 법. 친환경 유기액제는 물론이고 직접 돼지감자 줄기와 잎을 달여 물에 희석해 뿌려주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난해 김장농사는 비교적 잘 되었다. 배추 재배의 요령이라면 벌레가 먹는 속도보다 배추가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르게 키워야 한다는 것. 먹을 테면 먹어봐라 하며 쑥쑥 자라도록 말이다. 그러려면 뭐니 뭐니 해도 땅이 좋아야 한다. 건강하게 살아있는 땅이어야 한다.

옥수수를 수확한 밭에 새로 거름을 넣지 않고 그대로 무 배추를 심었는데도 기대이상의 수확을 얻은 것은 지난 5년간 유기농법을 고집하면서 땅을 살린 결과였다고 믿는다.

또 한 가지. 김장용 배추 모종을 심을 때는 물을 흠뻑 준 뒤 바로 흙으로 북주기를 해주는 게 좋다. 심을 때 간격은 40~50cm 정도 충분하게 띄운다. 배추는 수분을 많이 필요로 하므로 비 오긴 전날 저녁에 심어주면 모종이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자라는데 도움이 된다.

김장용 무는 아주 작은 씨를 파종하는데 사흘정도 지나면 발아해 머리를 내민다. 이 작은 싹이 쑥쑥 커서 성인남성의 종아리 굵기 만한 ‘대물’로 변신하는 과정은 경이 그 자체다. 

씨가 발아한 무의 싹

■8월의 절기, 입추와 처서

여름휴가가 절정인 8월 상순에 절기상 입추(立秋, 7일)가 들어있다. 대서(大暑)와 처서(處署) 사이에 드는 절기로, 말 그대로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한창 더운 가운데 가을기운이 서서히 다가온다. 한낮에는 너무 무더워 일하기조차 힘들지만, 그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달게 받으며 곡식들은 영글어간다.

또한 이때는 태풍이 몰려오고 큰 비가 오기도 한다. 태풍이 할퀴고 간 논밭에서 쓰러지고 꺾이고 떨어진 작물을 보고 있노라면 농부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예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것. 다시 힘을 내어 일을 한다.

농촌에서는 이 무렵부터 논의 물을 빼기 시작하는데, 1년 벼농사의 마지막 성패가 이때의 날씨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이때부터 처서 무렵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입추 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우제(祈雨祭)가 아닌 기청제(祈晴祭)가 있다. 옛날 각 고을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늘에 기청제를 지냈다. 비가 닷새 또는 보름 동안 계속해서 내리면 조정이나 고을에서 비가 멈추게 해 달라고 제를 올렸다.

입추 기간이 지나면 어느덧 여름 기운이 꺾이는 처서(處暑, 23일)다. 아침저녁 선선하고 해가 제법 짧아진다. 풀들도 뻗어나기보다 씨를 맺는다. 처서가 오면 올벼가 이삭을 숙이기 시작한다. 반면 늦벼는 아직 꽃을 피우고 있다.

처서는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드는 절기로, 이때가 되면 논둑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하는데 처서가 지나면 풀도 더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모기의 극성도 사라지고, 농부들은 여름내 매만지던 쟁기와 호미를 깨끗이 씻어 갈무리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 때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는 뜻이다.

<박인호 전원 칼럼리스트>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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