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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구] ‘멘탈 1위’ 허정한 “세계랭킹도 1위가 목표”
-‘따뜻한 카리스마’ 허정한 프로, 국제대회 부진 원인 들어보니…
-“국제대회 불운 훌훌 털고 이제는 본 실력 보여주겠다”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선한 눈빛을 한 채 가차 없이 베어나가는 승부사 허정한(37ㆍ경남도체육회/SNP로지스). 현재 3쿠션 당구에서 조재호(34)에 이어 한국 랭킹 2위다. 지난 해는 랭킹 1위를 지켰다. 당구로는 국내에서 무서울 게 없는 최고 실력자란 뜻이다. 그런데 세계 랭킹을 따져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보다 한국 랭킹이 낮은 최성원 김경률 강동궁 이충복이 20위 안에 포진해 있는 반면 그는 고작 27위에 머물러 있다.

한국 최정상권이면 세계에서도 탑텐 클래스로 인정될 만큼 한국 3쿠션 당구의 위상이 전에 없이 높은 요즘 허정한의 시계만 거꾸로 돌고 있는 셈이다. 이는 단적으로 국제대회 성적이 국내대회만큼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듯 당구도 정신력이 경기를 지배하는 멘탈 스포츠다. 혹시 허정한은 큰 무대에 나서면 주눅이 들어 실력 발휘를 못하는 ‘새가슴’인 걸까. 이래서는 ‘국내용’이란 오명을 벗기 어렵다.

허정한은 눈빛이 선하다. 사람 좋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법 하다. 하지만 큰 상대를 잡아먹는 무서운 배짱과 승부욕이 뒤에 감춰져 있다. [사진제공=코줌코리아]

그러나 그런 원인은 절대로 아니다. 허정한을 아는 당구 관계자들은 어떤 상대를 만나도 위축되지 않는 자신감과 강한 승부욕을 그의 첫번째 장점으로 꼽는다. 진주에서 났지만 자란 곳으론 ‘마산 아재’인 그는 “‘아무나 온나’ 하는 배짱만은 최고”라고 자부한다. 선명한 식스팩 복근을 유지하고 있는 만능스포츠맨인 그가 체력이나 파워가 모자랄 리도 없다.

“‘이상하네,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이지만 속상한 건 사실입니다. 탑랭커 중에 저만 국제대회 우승 경험이 없어요. 당구 팬들이 ‘빨리 우승해야지’ 하며 재촉할 정도예요.”

3쿠션 월드컵 등 국제대회라 해서 상금이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보다 더 많은 건 아니다. 오히려 국내 대회 상금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허정한은 물론, 다수의 상위권 선수들이 국제대회 타이틀을 따고 세계랭킹을 끌어올리는 데 진력하는 것은 명예와 권위 때문이라고 한다.

“변명같지만 국제대회만 나가면 경기가 안 풀려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를 만났는데도 그 선수가 평소보다 훨씬 잘 쳐서 경기를 따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일종의 불운이죠. 자꾸 그렇게 경기를 망치니 제 맘속에 약간 트라우마가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훌훌 털어내고 더 편안하게 경기에 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허정한도 최성원처럼 실력만큼이나 수트가 잘 어울리는 몸짱 선수로 통한다. 인터뷰에 협조해준 코줌코리아의 모 여직원이 그에게 ‘왕짜 복근’이 있다고 귀띔해 줬다. 어떻게 알았을까.  [사진제공=코줌코리아]

2011년 생애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불가항력적인 상황 때문에 무너진 쓰라린 기억이 있다. 당시 국가대표로 3쿠션 종목에 출전한 이는 허정한과 김경률. 대한당구연맹은 이들이 정상에서 메달 색깔을 놓고 겨룰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김경률과 허정한은 차례로 탈락했다. 터무니 없이 짧게 구르는 당구대 때문이었다.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게 처음이니까 중압감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건 떨쳐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구 테이블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원래 당구대 구름이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걸 감안하더라도 한참 짧아졌어요. 당구대 브랜드를 봤더니 포켓볼 테이블 제조사에서 만든, 생전 처음 보는 거더라고요. 어? 어? 뭐야 이거? 하면서 망쳐버린 거죠.”

허정한은 이제는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각오다. 올 10월 15~19일 개최되는 구리 세계선수권대회를 우선 시야에 넣고 있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라이벌 최성원이 노리고 있는 그 대회다. “저도 그 대회라고 봐야죠. 3쿠션 월드컵은 그냥 대회이고, 선수권은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1년에 딱 한 번 있는 대회니까요. 선수권 우승자는 세계랭킹 1위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해의 챔피언입니다.”

허정한이 당구계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바로 세계챔피언이기도 하다. 기왕에 큐를 들었으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과 세계랭킹 1위를 모두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보고 싶다고 했다. 기량이 퇴보하는 시기가 오면 어린 선수들을 위해 지도자로서 도움이 되는 역할을 맡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지난 2012년 아지피(AGIPI) 국제 대회에 출전한 허정한. 더 이상 국제대회 좌절은 없다고 그는 다짐했다.

허정한은 2010년 여성 3쿠션 선수 정문영과 결혼해 이듬 해 11월 이 세상 전부와 같은 딸 서진이를 낳았다. 정문영 프로는 자신의 커리어를 뒷전으로 미뤄놓은 채 남편 내조와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다. 잡생각이나 고민이 있으면 경기를 망치기 쉬운데 그런 데서 정문영이 따로 말 하지 않아도 세세한 배려를 해 주는 데 허정한은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정 프로예? 지금 제 옆에서 밥 하고 있으요. 허허. 좀 지나면 자기 경기도 많이 나가야 할 텐데….” 허정한의 샷 하나하나에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가득 담겨 있는 이유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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