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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조6000억 세일에도 시큰둥…꼭 살 것만 산다 ‘저가형 가치소비’ 확산
[헤럴드경제=한석희ㆍ손미정 기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풀린 일명 ‘땡처리’ 물량만 5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월말 혹은 연말 매출을 맞추기 위한 ‘밀어내기 세일’도 아니다. 오로지 분위기 반전용이다. 한 달간 계속되고 있는 백화점 여름 정기 세일 규모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2조6000억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가 사실상 7월 한 달 내내 세일 폭탄을 퍼붓고 있는 셈이다.

유통업계가 이 달 들어 유례없는 사상 최대 규모의 물량을 쏟아붓고 있지만 시장의 시계(視界)는 여전히 ‘제로’에 가깝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명품 및 고가 소비에 나타나던 ‘가치소비’가 저가 상품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할인폭이 70~80%에 달하는 상품에도 ‘저가형 가치소비’가 나타나고 있다. 연말에나 볼 법한 ‘블랙 프라이데이’가 한 여름철 유통가를 휩쓸고, 평소보다 3~4배 큰 대규모 땡처리 행사가 열리는 데도 불구하고 소비 심리가 좀체 개선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장수현 롯데백화점 본점장은 “소비자들이 미래에 대한 부담으로 쉽사리 지갑을 열지 못하는 것 같다”며 “값이 싸더라도 자기한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 저가 상품에도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도 “꼭 필요한 생필품은 물론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캠핑용품 등 전방위적으로 가격에 대한 민감도가 그 어느 때보다 큰 것 같다”며 “경기가 안좋다고 했어도 이 정도로 미끼 상품까지 팔리지 않은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유통업계가 지난 한 달간 무려 2조6000억원이 넘는 초특가 세일 물량을 쏟아냈지만 소비심리는 여전히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바캉스 블랙프라이데이’. 이날 행사장엔 양산과 여성용 화장품, 티셔츠 등 단가 5만원 미만의 제품만 불티나게 팔렸을 뿐,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의류와 시계 등의 매대는 높은 할인율에도 한산하기만 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유례없는 여름철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이같은 현상의 축소판으로 읽히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바캉스 블랙프라이데이’는 1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블랙프라이데이(12억9000만원) 당시 보다 3억원 가량 줄기는 했지만 당초 목표 보다는 4억원을 초과 달성했다.

하지만 숫자를 찬찬히 뜯어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12월 행사 당시 13만5789원에 달했던 객단가는 이날 8만3333원으로 무려 38.6% 떨어졌다. 겨울철 행사 품목의 단가가 약간 높다고는 하지만, 이날 행사에 파카 등 겨울철 상품은 물론 20만원대가 넘는 상품이 줄지어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객단가 하락폭이 너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날 행사장에선 9000원 초특가 양산과 3000원에 판매한 엠폴햄 반팔티셔츠, 5만원 미만의 여성샌들과 가방 등 특가상품 매대에만 사람들이 겹겹이 몰렸을 뿐 행사장 안쪽에 위치한 10~20만원대의 상품 매대는 한산하기만 했다. 할인폭이 50%가 넘더라도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엔 손이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 장 본점장은 “본점 일일 매출 50억원 보다 큰 60억원 규모를, 그것도 세일 와중에 기획한 것은 어떻게라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1% 남짓 매출 증대 효과(60억원 규모 전량 소진시)를 기대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장 본점장은 또 “이번 여름 정기 세일도 5.6%의 신장률을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기저효과까지 따지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대규모 행사를 마련하지 못한 백화점들은 상황이 더 여의치 않다. A백화점 한 관계자는 “세일기간에 대규모 물량이라도 풀어서 분위기를 반전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며 “대형마트는 물론 백화점, 유통업계 모두가 사상 유례없는 물량 전쟁에 나서다 보니 이같은 행사를 만드는 것조차 어려워 속만 타는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부터 3주 연속 85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행사를 펼쳤던 롯데마트 역시 기대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대형마트판 블랙프라이데인 행사인 ‘땡스 위크’가 열린 지난달 26일부터 통큰세일 2주간 행사가 끝난 이달 16일까지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2.2% 역신장했다.

특히 850억원 규모의 초대형 물량의 매출 효과는 고작 0.2%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아무리 세일을 해도 최근엔 에어컨이나 제습기 처럼 단가가 나가는 가전제품은 물론 여성의류와 아동복의 경우 특히 매출이 크게 빠지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사야될 제품이 아니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아예 소비를 한참 뒤로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 상반기 대형마트 업체들은 모두 영업이익률이 1% 안팎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심하게는 2~3% 가량 영업이익이 줄어든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나마 오프라인 채널보다 사정이 나은 홈쇼핑에서조차 ‘밀어내기’가 이달 들어 얼굴을 내미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홈쇼핑 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가 안좋다 보니 이달들어 의류 등 품목의 경우 30~40% 하드세일(밀어내기)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도 “다만 매출상으로는 모바일 부문의 성장세에 힘입어 10% 안팎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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