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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미 기자의 결정적 한방> 왜 ‘경주’여야 했을까
-영화‘ 경주’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중경’, ‘이리’, ‘두만강’…. 평범한 지명(地名)이지만 장률 감독의 작품들이기도 하다. 감독이 특정 지역에 관심을 둔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이번엔 ‘경주’를 택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낯선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포부와 함께 말이다. 남녀의 미묘한 감정이 오가는 공간으로 문화유적의 도시 경주를 택한 건 의외의 선택이다.

중국 북경대 교수인 최현(박해일 분 · 사진)은 지인의 부고를 접하고 한국을 찾았다가 충동적으로 경주로 향한다. 7년 만에 찾은 그곳은 기억 속 모습과는 달랐다. 찻집에서 본 ‘춘화’는 사라졌고,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기억에 남아 있던 돌다리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찻집 주인 윤희(신민아 분)를 만나 미묘한 감정을 나누고, 7년 전엔 보지 못했던 경주의 ‘민낯’을 접하게 된다. 


“경주라는 도시는 참 묘합니다. 어느 나라나 왕릉이 있죠. 그런데 능이 경주처럼 보통 사람들의 삶과 그렇게 가깝게 있는 장소는 없어요.” 장률 감독은 ‘경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극중 윤희 역시 ‘경주엔 왕릉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고 너스레를 떤다. 윤희와 최현은 술을 먹고 능 위에서 가벼운 주정을 부리고, 윤희의 집에서 창문을 열면 능이 보이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지척에서 늘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장률 감독은 ‘경주’라는 도시의 의외성과 모순에 매력을 느낀 게 아닐까. (감독의 자아와 마찬가지인) 최현은 답답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기억 속 경주를 찾지만, 아름다움과 평온함 이면에 절망 · 죽음이 동전의 앞뒤처럼 공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기억 속 경주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경주와 마주하는 순간, 수평으로 고요하게 움직이던 카메라는 처음으로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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