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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둥지를 떠난 새들
4년 전에 친척이 군자란을 선물해줬다. 꽃이 피면 집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덕담과 함께, 직사광선을 피하면 잘 자랄 거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침체돼 있던 나에게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려는 마음이었을 게다. 기대와 달리 한해 두해가 지나도 정작 꽃이 피지를 않았다. 정성이 부족한가 싶어 햇빛과 물의 양을 조절하면서, 산의 흙을 가져다가 솎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와도 꽃소식은 영영 없었다.

그런데 2주 전 잎과 잎 사이에 연둣빛 꽃대가 올라오더니, 주홍색의 만개한 꽃봉오리가 마침내 한가득 피어올랐다. 오랜 기다림 끝에 군자란의 그 찬란함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브라질월드컵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홍명보호에게 거는 국민들의 기대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제 마지막 평가전으로 치른 가나와의 경기만을 놓고 보면 불안감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공수 모든 면에서 균형과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서로의 눈빛으로 이어져야 할 감각적인 패스와 움직임은 내내 무뎠고 역습을 향한 칼날도 날이 제대로 서질 못했다. 끝까지 버터야 할 수비벽도 집중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간 해외언론은 한국의 16강 진출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더군다나 지한파인 히딩크 감독도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한 벨기에와 러시아를 먼저 지목하고 나섰다. 축구판에도 규모의 경제가 엄연히 존재하기에 빅 리그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팀에게 방점을 더 두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클럽 팀은 외국용병을 어디서든 데려온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의 구성은 그 나라 국민이어야 가능하다. 팀플레이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한두 명의 축구신동이 휘젓는 원맨쇼보다 조직력이 우선한다. 그래서 월드컵은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는 변수와의 싸움인 것이다. 기존의 지명도가 꼭 승리를 담보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강한 정신력과 당찬 응집력을 가진 팀만이 그날의 승리를 가져가게 된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이임생’의 붕대투혼은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극적인 1대1 무승부를 만들어낸 바 있다. 지금껏 후배들에게 그 투혼은 전수되고 있다.

대표팀은 아직 첫 경기를 치르지도 않았다. 속단은 금물이다. 이번 가나 전을 지적하면서 작년 10월의 브라질 경기의 선전을 같이 떠올려야 균형 잡힌 시각일 것이다. 혹여 우리 안에 패배주의가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빅 리그의 동경을 넘어, 여과 없는 추종으로 이어지는 전염성이 강한 축구 사대주의를 경계해야겠다.

지금은 홍명보호를 믿고 기다려줘야 할 때이다. 모든 결과가 나온 후 비판과 개선을 요구해도 늦지 않다. 선수들도 런던올림픽에서 획득한 동메달의 ‘여흥’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주저 없이 지워버려야겠다. 진정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23인 모두가 해결사라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둥지를 떠난 새는 둥지를 돌아보지 않는 법이다.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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