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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과 자연을 담은 집, 전통한옥”
[헤럴드경제 = 윤현종 기자] 우리는 집에 산다. 인생 대부분을 주거공간에서 보낸다. 사실상 집과 함께 살아간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사실상 가족이 돼 함께 부대끼는 그 공간을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여기, 집을 배우는 학생들이 있다. ‘집 = 콘크리트 아파트’라는 공식을 극복한 이들이다. 그들의 과제는 전통한옥이다. 기둥 하나조차 순리(順理)에 따라 세운다. 호화롭지 않다.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인간과 자연을 오롯이 담았다. 서울 노원구 삼육대에 자리한 동이한옥학교 실습장을 기자가 찾았다. 이곳은 서울 내 유일한 한옥학교이기도 하다.

18일 동이한옥학교 수강생들이 직접 구조를 올린 1칸(8.25㎡)짜리 한옥. 18일 오전 수업은 이를 해제하는 순서였다.

◆ 심신을 힐링하는 과정, 한옥학교수업

18일 오전 9시. 화창한 햇살이 살짝 따갑게 느껴진 늦봄의 어느 일요일. 한옥학교 주말반 학생들이 삼삼오오 실습장으로 등교하기 시작했다.

넓은 비닐하우스 내 목공 실습장엔 학생들이 다듬었을 목재가 가득했다. 나무 향도 났다. 이곳은 집 짓기를 가르치는 곳이지만 여느 곳과 달랐다. 통상 집을 지을 때 쓰는 자재와 도구가 보이지 않았다. 못이나 철근, 볼트, 시멘트 등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왜일까.

이 학교 학생들이 손수 짓는 전통한옥엔 못이나 시멘트가 필요 없다. 사용하는 모든 목재가 짜맞춤 방식으로 한옥의 골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초석이나 죽담(댓돌)에 쓰는 석재도 인공은 없다. 자연석이다.

9시 30분쯤 됐을까. 이 학교의 한성수 교수 등 강사진이 이날 과정을 소개한다. “오늘은 여러분이 손수 세우신 결구(짜맞춤)를 해체하시는 과정입니다” 


한옥 짓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목재 짜맞춤이다. 초석을 갖추고 큰 기둥 등을 세운 뒤 치목(가공)한 나무들을 조립해 집의 뼈대를 완성한다. 그렇게 결구를 만들고 해체하는 건 이 학교 수업의 큰 줄기다. 주말반의 경우 총 16주가 소요된다.

어림잡아도 평균연령 40대 이상의 중ㆍ장년이 대부분인 늦깎이 학생들은 너도나도 작업복장으로 갈아입고 목공 실습장 바로 옆에 만들어진 야외 실습터로 향했다. 한 칸(8.25㎡규모)짜리 실습용 한옥 골조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이르자 햇살이 제법 뜨거웠다. 하지만 ‘학생’들은 지친 기색 없이 차근차근 스스로 만든 결구를 해체했다.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작업에 여념 없던 조병수(47)씨는 “귀농을 결심하고 손수 집을 지으려던 차에 전통한옥 과정을 알게 됐다”며 “내가 살 집 기둥을 스스로 만드는 재미는 다른 즐거움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했다.

수강생 반응은 한결같았다. 임상심리사 일을 하고 있다는 유승재 씨도 “인공자재를 전혀 쓰지 않는 게 전통한옥의 큰 매력”이라며 “작업하며 흘리는 땀이 외려 마음의 힐링을 가져왔다”고 만족해 했다.

최고령으로 주말반 반장 역할을 맡은 수강생 이원교(77)씨는 “학생들은 수료 후에도 품앗이로 동료들의 한옥짓기에 손을 보탠다”며 “옛날식 그대로 자연친화적인 집을 싸게 짓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수강생 대부분은 ‘도시인’이었다. 그러나 도회적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연과 하나가 돼 집을 짓는 이들은 영혼까지 치유받는 ‘참 집’을 마음 속 저마다 짓고 있었다.

동이한옥학교 주말반 수강생들이 모여있는 모습. 연령대, 직업 등이 다양하다.

◆ “전통한옥은 생태건축의 결정체”

해체작업이 끝난 뒤, 기자는 특강을 들어야 했다. 일일 수강생의 의무였다. 이 강의는 모든 수강생이 교육 첫 시간에 접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전통 한옥은 유기체다. 인간과 자연 그 자체”라고 정준원 동이한옥학교 대표는 설명했다.

대표적인 게 ‘공간의 과학’이다. 전통한옥의 방 한 칸은 그 방 주인의 앉은키와 선 키를 합친 길이로 짠 정육면체다. 옛날엔 보통 270cm (앉은 키 110cm+ 선 키 160cm)를 한 변으로 했다. 정 대표는 이 넓이를 “사람이 들어갔을 때 가장 안정된 공간감을 느끼는 방의 크기”라고 설명했다.

좌식 생활에 맞춰 설치한 작은 창틀로, 방문을 열면 팔을 걸칠 수 있어 난간역할을 하는 ‘머름’도 그 방 주인의 신체를 기준으로 짠다. 손가락(중지) 끝~팔꿈치까지의 길이가 머름의 높이다. 팔을 걸쳐 기댈 때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

정준원 동이한옥학교대표(정면 좌측에 서 있는)가 수강생 상대로 강의를 진행 중인 모습.

전통한옥의 방이나 개별 건물(본채, 안채 등) 크기가 조금씩 다른 것도 그래서다. 저마다 다른 사용자들의 신체크기를 고려했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자연의 소재로 집을 짓는 건 전통한옥 건축의 기본 전제다. 일종의 ‘생태건축’이다. 내가 발 딛고 사는 땅의 흙과 인근 지역의 나무를 사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따라서 골조도 국내산 육송을 기본으로 한다. 육송은 일반적인 검은 소나무다. 토질이 좋은 내륙에서 자란다. 벽체는 볏짚, 숯, 우뭇가사리, 송진 등으로 이엉을 엮은 뒤 적황토를 발라 만든다. 정 대표는 “오래된 한옥 벽체는 최고의 거름이다. 6년근 개성인삼 재배에도 쓰일 정도”라고 설명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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