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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공격적 M&A ‘승승장구’…위기신호는 못봐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길 바랐던…STX그룹 질곡의 13년사
STX의 전신은 쌍용중공업이다. 1997년 외환 위기로 도산 위기에 몰린 쌍용그룹은 2000년 11월 방산, 디젤엔진, 소재 사업 등을 담당하던 계열사 쌍용중공업의 지분 34.5%를 한누리컨소시엄에 매각한다. 한누리컨소시엄과 쌍용그룹은 쌍용중공업 정상화 작업을 시작하고, 당시 쌍용중공업의 CFO(재무책임자)였던 강덕수 전무를 책임자로 앉힌다. 약 6개월 후인 2001년 5월 강 전무는 쌍용중공업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사재와 스톡옵션을 바탕으로 쌍용중공업의 최대주주가 된다. 샐러리맨에서 오너로 등극한 것이다. 2001년 5월1일 쌍용중공업은 STX(SYSTEM TECHNOLOGY EXCELLENCE)로 사명을 바꾸며 새출발한다. 인수 당시 쌍용중공업의 매출은 2605억원(내수 1600억원, 수출 1004억원)이었다.

강덕수는 STX 설립과 동시에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선다. 기존 엔진사업의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부품, 조선, 발전설비, 환경설비, e-비즈니스 등으로 외형을 넓힌다. 출범 한달 후엔 STX의 소재사업부문을 물적 분할해 현재 STX중공업의 전신인 주식회사 엠파코를, 10월에는 대동조선을 인수한다. 당시 법정관리 중이던 대동조선은 STX이 인수한 직후인 2001년 12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난다. 다음해 1월에는 STX조선으로 사명을 변경, STX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설립 초기부터 ‘엔진(STX)-선박(STX조선)-선박부품(엠파코)’의 계열화를 염두에 둔 강덕수의 전략이었다. 


▶조선ㆍ해운ㆍ엔진 계열사 잇따라 설립…지주회사 체제 구축
= 강 전 회장은 공격적인 M&A를 기반으로 성장 동력을 확충해나간다. 2002년에는 STX조선 출범에 이어 11월 산단열병합발전을 인수하며 에너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산단열병합발전은 STX에너지의 전신이다. 당시 인수대금은 503억원. 강 전 회장은 STX의 발전설비, 환경플랜트 사업부문과 에너지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산단열병합발전을 인수를 결정했다.

2004년 4월 STX는 기존 투자부문은 남기고 선박엔진부문을 분리해 STX엔진을 출범시킨다. (주)STX가 지주회사의 역할을 하게되는 것도 이 때부터다. 2004년 2월 두산그룹 계열인 HSD엔진(현 두산엔진)이 지분 12.79%, 같은 해 5월 S&T그룹 최평규 회장이 9.94%의 지분을 매입하는 등 경영권 위협이 이어지자 지배구조 안정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04년 하반기부터 STX는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그 해 11월 벌크선 운송업체인 범양상선을 인수, STX팬오션을 출범시키며 해운업에 본격 진출한다. 팬오션은 해운업 호황과 맞물려 매년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간다. STX팬오션의 매출은 인수 직후 2005년 2조7924억원에서 슈퍼 호황기를 맞은 2008년 8조5091억원까지 늘어난다. 팬오션의 가세로 STX그룹 전체(주력 계열사 개별기준 매출 합산) 매출은 2004년 1조5702억원에서 2005년 5조7216억원으로 증가한다. 


▶국내는 좁다, 해외로 눈돌린 STX= 2006년11월 STX는 중국 다롄 창싱다오 지역에 대규모 조선기지 건설을 위해 STX다롄을 설립한다. STX의 첫 해외 조선소다. 다롄 조선소는 부지 넓이만 550만㎡ 규모로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초대형 조선해양기지다. 강 전 회장은 다롄조선소 건립에 약 2조원을 쏟아 부으며 애정을 보였다.

다롄 조선소는 2007년 3월 착공한 후 1년 만인 2008년 4월 선박 블록 생산을 위한 강재절단을 시작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가동 8개월 만인 2008년 12월 첫 선박을 진수하고 2009년 4월 인도하는 저력을 보였다. 당시 강 전 회장은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속도”라며 속도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다롄 조선소를 두고 현재는 다양한 평가가 제기되지만 당시 STX그룹에게는 다롄조선소가 글로벌 기업의 꿈을 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실제로 이후 STX그룹은 해외기업 인수에 박차를 가했다. 2007년 2월 STX솔라를 출범시켜 친환경에너지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했고, 그해 10월에는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업체인 아커야즈(현 STX유럽)을 인수했다.

아커야즈는 국내 조선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도 최대 화제였다. 이를 통해 STX그룹은 일반상선은 물론 여객선, 해양플랜트, 방산용 군함 등 조선 4개 분야 모든 선종을 생산하는 회사가 됐다. STX유럽은 2009년 10월 세계 최대 크루즈선 ‘오아시스 오브 더 씨즈’호를 인도한다. 이외에도 STX중공업은 2009년 네덜란드 풍력발전기 제조업체인 ‘하라코산유럽’ 인수를 통해 STX윈드파워를 설립, 풍력발전 분야에도 진출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내수시장에 의존했던 제조업체(쌍용중공업)가 10여년 만에 글로벌 기업집단으로 거듭난 셈이다.

▶‘위기 신호’ 놓친 STX…불황 겹쳐 브레이크 없는 내리막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경기 불황의 시작이었다. 조선, 해운업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이어진 유럽 재정위기로 업황이 곤두박질치며 일감이 끊기기 시작했다. 조선, 해운 불황은 STX조선해양과 팬오션은 물론 선박기자재 및 엔진 사업을 영위하던 STX중공업과 엔진에도 악재였다.

실제로 2009년부터 최근 5년 간 STX그룹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을 보면 2010년 893억원, 2011년 234억원으로 점차 줄고 2012년에는 4108억원의 손실액을 기록한다. 지난 해에는 손실액이 9618억원에 달했다. 결국 STX그룹은 2012년 12월 STX팬오션 매각 계획을 발표한다.그룹 유동성 확보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인수자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지난해 3월29일 공개 매각이 불발된다.

팬오션 매각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던 STX는 위기에 놓인다. STX조선해양이 같은해 4월 채권단 자율협약 체제로 전환했고 동시에 STX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주)STX와 STX중공업, STX엔진도 5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한다. 공개매각이 불발된 데 이어 산업은행의 인수까지 좌절되면서 STX팬오션 이사회는 6월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채권단은 강 전 회장에게 경영에서 물러날 것을 종용한다. 그는 처음에는 채권단과 맞섰지만 결국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지난 해 7월 STX팬오션을 시작으로 STX조선해양(9월), STX중공업(11월), (주)STX(2월) 대표에서 잇따라 물러나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2008년 이후 재계 20위권 내에 머물던 STX는 올 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재계 순위에서 이름 자체가 사라졌다. STX그룹은 지난해까지 자산 24조3000억원으로 20위권 내 순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가 자율협약 또는 매각되며 그룹이 해체됐고, (주)STX와 STX엔진 등 남은 계열사의 자산을 모두 더해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기준인 5조원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STX조선해양은 거액 자본잠식으로 지난 15일 상장폐지됐으며, (주)STX와 STX엔진도 현재 상장폐지 여부에 대한 실질심사위원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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