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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의 8할은 도전…무모하더라도 결실은 꼭 있다”
1974년 어느 가을날. 홍익대 근처에서 까까머리 청년 한 사람이 새벽 공기를 뚫고 한강을 향해 달린다.

절두산 인근에 도착한 청년은 신발과 체육복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하더니, 이내 한강물로 뛰어든다. 빠른 물살에 하류로 몸이 밀려 내려갔지만, 결국 청년은 한강을 맨몸으로 건넜다. 물에 젖은 반 알몸으로 양화대교를 다리를 뛰어 건넌 이 청년은 다시 절두산으로 돌아와 벗어놓은 신발과 체육복을 챙겨 자리를 뜬다.

공군 장성 집안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후에 장관까지 오른 엘리트가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일탈(?)’이다. 돌이켜보면 무모했지만, “하고 싶은 건 꼭 해야했고, 그 강을 꼭 건너보고 싶었다”고 기억했다. 이후 공직에 있는 동안은 일탈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다 60세가 넘어서야 다시 건전(?)한 일탈꺼리를 찾았다.

2011년 장관급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그는 미국 하와이섬의 4300m 상공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태블릿PC에는 이 때의 ‘인증샷<사진>’이 있다.


“지금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실은 울고 있는 겁니다. 고도 1500m 지점까지 시속 220㎞로 자유낙하하는데, 정말 빨리 낙하산을 펴야겠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공군 장교출신이지만 사실 낙하 직전 ‘매우 위험하다’는 붉은색 각서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없어졌다고 한다. 이 때를 계기로 이후 행글라이딩, 번지점프를 배워 새 취미로 삼았다.

젊은 나이에 이런 취미에 갖지못한 이유를 묻자, “정말 바빴다”고 답했다.

그럼 일을 빼면 그의 젊은 시절에는 도전이 없었을까? 아니다. 공직시절 그가 도전에너지를 발산한 곳은 외국어다. 1980~1990년대는 한참 글로벌화가 화두가 되던 때다. 그래서 틈틈히 학원 등을 다니며 외국어 공부를 했다. 덕분에 그는 통역 없이 강의가 가능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자랑한다. 일본 문부성이 인정하는 일본어 1급 자격도 갖고 있다. 일본의 대학 수업을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이다. 국제금융국장, OECD대사 등 해외근무 때 외국어 실력은 진가를 발휘했다.

“새로운 것을 보면 일단 도전합니다. 1984년 국내에 컴퓨터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타자기 대신 컴퓨터를 썼죠. 지금도 태플릿PC나 스마트폰 다루는 데는 자신있습니다”

그래서 권 원장은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늘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라”는 한마디로 압축했다. 절실한 마음으로 도전하면 받드시 얻는 게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다만 그의 싸움닭 기질도, 도전 정신도 넘지 못한 벽은 있다. 아내다.

“부부싸움할 때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게 상책입니다. 젊었을 땐 나도 집사람에게 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게 화를 내도 가만히 듣고말죠. 그래서 싸울 일은 없는데, 요즘은 집사람이 왜 말을 안하냐고 추궁해서 고민입니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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