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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재앙은 처절하게 경고한다
대재앙이 우리에게 보냈던 수많은 시그널 놓친 대한민국의 시스템…세월호 참사는 앞으로 닥쳐올 더 큰 재앙의 ‘시그널’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 인천여객선터미널을 떠나는 세월호의 출항을 막을 수 있었다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을까. 아니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고 학생의 최초 사고 제보 전화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아니 선장이 제대로 제시간에 퇴선명령만 내렸다면. 아니 해경과 정부가 즉각적인 구조 대응만 했다면.

안타까운 기원은 시침과 함께 흘러가 “지금이라도”에서 멈추고, 분노의 시계는 거슬러 올라가 수십년전까지 이른다. 지난 2월 25일 안전점검만 제대로 받았더라면. 18년된 일본선을 증축한 2012년 세월호의 출범을 막았다면. 1999년 청해진해운의 인천-제주 여객선 독점 운항권을 해양수산부가 주지 않았더라면. 1986년 5공정부가 한강유람선 사업권을 세모에게 허가하지 않았더라면, 비리ㆍ부정ㆍ특혜 의혹으로 얼룩진 세모가 1979년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부질없는 복기다. 정상인 것이 없었다. 어느 하나 제대로 지켜진 원칙이 없었다. 즐거운 수학여행의 뱃길을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안타까운 죽음과 통곡의 바다로 바꾸어놓은 몇 십분은 재난과 위기 때마다 약자들부터 집어삼키는 거대한 괴물로 자라온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의 수십년간이 응축된 시간이었다.

침몰의 위기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단지 선장 한 명뿐이 아니었다. 산업재해가 발생해 1명의 중상자가 나오기까지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의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 이미 존재한다는 수십년전(1931년저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의 경고 ‘하인리히의 법칙’도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에선 무소용이었다. 이제 뒤적이며 파헤치는 해운회사와 침몰선박을 둘러싼 탐욕과 해이, 부도덕, 몰이해, 부정한 이해결탁의 난맥상은 이미 사고 전에 수백, 수천번의 위험 신호가 있었음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찰스 페로의 1979년 저서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는 고도의 기술과 장치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연계된 시스템은 아주 사소한 원인이 동시다발적인 장애를 일으켜 언제든 대형 참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현대산업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재앙은 반드시 발생에 앞서 ‘경고 신호’를 보낸다. 위기가 실제로 닥치면 위험은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에게 더 먼저, 더 크게 돌아간다. 재앙이 닥쳐오면 일부 지도자와 권력자들은 이와 관련한 정보를 독점하려고 하며 흔히 왜곡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지도자의 영혼과 결단이 피해와 희생의 규모를 좌우한다. ‘영혼없는 관료’는 재앙에 처한 사람들의 가장 큰 적이며, 이들이 빠져나갈 뒷구멍을 찾는 동안 최후의 구원이 되는 것은 이름없는 이들의 영웅적인 희생이다. 약자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되지만, 언제나 더욱 도덕적이고 헌신적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의 각종 사건 사고와 정치 경제의 위기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증명된 바다. 그렇게 위기를 마주한 순간의 개인들의 행위 동기와 유형은 그가 속한 사회와 직업, 계층의 윤리와 가치관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보여준 선장 및 선원들과 해운회사, 그리고 정부 관료들의 대처가 더욱 절망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참담하고 거대한 희생을 낳은 세월호 침몰 사고는 대한민국호에 전달된 또 하나의 경고 신호다. 하나 하나 따지고 묻고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산 자들의 의무다. 세월호와 함께 무너진 우리 사회의 원칙과 또 다른 재난을 예고하는 징후, 배우고 따라야할 모범적인 선례들을 진단하고 조명했다.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을 껴안고, 아이들에게 더는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리라.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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