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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현대차그룹 ‘현대증권 인수추진설’ 그 내막은?
[헤럴드경제=권남근 기자]최근 금융투자업계는 매물로 나온 현대증권을 어디에서 인수할 지 촉각이 곤두서 있습니다. 1순위로 거론되는 곳은 바로 현대차그룹입니다. 본지는 관련 내용을 취재해, 지난 22일 ‘현대차그룹, 현대증권 인수추진 검토..산업은행 투자의향서 이번주 발송’이라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후보로 거론만되고 있던 현대차그룹이, HMC투자증권을 중심으로 인수작업을 실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습니다.

보도 이후 반향이 컸습니다. 진위여부를 묻는 문의전화도 빗발쳤습니다. 당일 한국거래소는 HMC투자증권에 현대증권 인수 추진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습니다. 그날 오후 나온 답변은 “현대증권 인수를 검토한 바 없습니다”입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들은 드뭅니다. 왜냐하면 현대건설과 녹십자생명 인수 때와 흐름이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2010년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시장에 퍼질 때 현대차그룹은 “회사차원의 인수계획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해 10월 현대차는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사업 강화 및 시너지 창출을 위해 현대건설 매각 입찰에 참여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이듬해 현대건설을 인수했습니다.

녹십자생명 인수 사례도 있습니다. 현대차는 2011년 8월 녹십자생명 인수설이 나왔을 때 거래소가 조회공시를 요구했고 답변은 ‘인수를 검토한 바가 없다’였습니다. 하지만 그해 10월 현대차는 녹십자생명 인수를 전격 발표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을 비난하자는 게 아닙니다. M&A 시장의 특성상, 검토하고 있어도 부인해야할 수 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향후 가격협상에서도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게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후보자로 공식화되면 여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진행작업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이기 때문에 시장의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2일 기사보도 이후 당일 현대증권과 HMC투자증권의 주가가 급등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복수의 관계자들에게 들은 현대증권 인수에 대한 현대차그룹쪽 의견 중에는 “지금은 공식적으로 밝힐 단계가 아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는 22일 공시 내용과는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아울러 이전부터 HMC투자증권 고위임원들을 중심으로 인수추진을 검토해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습니다. HMC투자증권 사내에서는 현대증권 인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입니다. 보안과 합병에 따른 구조조정설 등의 이유로 현대증권 인수와 관련된 함구령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최근 HMC투자증권에 노조가 새로 생긴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대증권 관계자들은 “사모펀드로 넘어가면 다시 매각의 불안감이 있다”며 “정서적으로도 맞는 현대차그룹에서 인수하는 것이 많은 직원들이 내심 원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증권은 1998년까지 현대차가 최대주주였습니다. 지금도 현대차그룹 임원들 중에는 HMC투자증권과 현대증권 계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이 2008년 신흥증권을 인수해 증권업을 시작할 때도 ‘현대’라는 이름을 쓰려고 ‘현대차IB증권’이라고 간판까지 걸었습니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법원에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강력히 반대하는 바람에 영문인 ‘HMC투자증권’으로 결국 바꿨습니다. 그만큼 ‘현대’라는 이름에 애착이 크다는 방증입니다.

녹십자생명(현재 현대라이프) 인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금융업을 키우고자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범 현대가’로 하이투자증권을 가지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도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에 무게중심이 더욱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카드, 캐피탈, 보험업을 이미 하고 있습니다. 현대증권을 인수하면 현대자산운용과 현대저축은행도 자연스레 함께 가져옵니다. 특히 자기자본기준 국내 5위인 현대증권을 HMC투자증권과 합병해 증권파트를 키우면 명실상부한 현대차그룹의 금융사업군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현대차그룹이 금융지주사까지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삼성그룹이 최근 사업군을 나눠 승계작업을 진행하듯, 현대차그룹도 여러사안을 감안해 금융사업군을 키울 것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너지효과도 큽니다. 자본시장법개정으로 자기자본 3조원이 넘는 현대증권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로 기업대상 신용공여 등 다양한 투자은행업무가 가능합니다. 이제는 기업대출 등 은행못지 않게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펼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구상하기에 따라 전세계에 진출한 현대ㆍ기아차는 물론 부동산과 연관된 현대건설 등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이 무궁무진합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과거 현대증권도 되찾아오고, 사업시너지도 생기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여기에다 기존 HMC투자증권이 투자은행(IB) 업무와 해외쪽 사업을 펼쳐 가려면 노하우가 많은 현대증권의 인수가 제격입니다. HMC투자증권은 법인영업 등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초, 홀세일본부장(전무)에 ‘마이클 정’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조사분석부 전무를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시장에선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친하다고 알려진 그를 사업확대 등 다양한 포석으로 영입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현대증권 매각 작업에 나선 산업은행 입장에서도 현대차그룹을 인수자로서 제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금력이 튼튼한 현대차그룹이 인수할 경우 적정 가격에 팔 수 있고, 매각 이후 시너지효과까지 있으니 ‘명분상, 실리상’ 여러 이점이 있습니다. 특히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제값받고 잘 팔아야 뒤탈(?)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현대차그룹이 현대증권을 인수하는 것이 ‘사는 곳(현대차)-팔려는 곳(산업은행)-팔리는 곳(현대증권)’ 3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현대차그룹은 옛 현대그룹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현대건설을 인수한 바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증권을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선친인 고 정주영 회장이 일군 현대증권을 다른 곳에서 가져가는 것에 ‘현대家’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탐탁치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대건설 인수 때와 달리 현대그룹과 다투는 것도 아니고, 되려 유동성 위기에 빠진 현대그룹을 도와주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어 한결 부담도 적습니다. 아무쪼록 현대증권 매각이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길 바라겠습니다.

happyd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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