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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침몰] 쉿, 입조심…직장인에게도 다가온 ‘실언 트라우마’
[헤럴드경제=최진성 기자]#직장인 최준수(가명ㆍ35) 씨는 지난 23일 오전 집에 있는 아내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다 크게 혼났다. 대답이 더딘 아내에게 ‘감도있습니까?’(세월호 교신 녹취록)라는 메시지를 보낸 게 화근이 됐다. 아내는 대뜸 ‘이런 말로 장난치지 마라. 무심결에라도 조심해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김 씨는 순간 당황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공직자와 국회의원의 잇따른 실언이 여론의 몰매를 맞으면서 직장과 가정에서도 ‘입조심’하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 간접경험에서 비롯된 일종의 ‘실언 트라우마’다.

세월호 침몰 열흘째인 25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세월호 관련 발언이 연일 이슈화되면서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언행 조심의 분위기가 짙다. 세월호 사고 얘기를 잘못 꺼냈다가 가족과 동료들로부터 면박당하기 일쑤다.

직장인 A 씨는 최근 직장에서 최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A 씨에 따르면 무겁게 가라앉은 부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세월호 사고의 수혜자는 ○○○”이라고 농담을 했지만 분위기는 더 살벌해졌다.


일부 동료들은 “세월호 사고를 갖고 농담하지 마라”고 핀잔을 주는가 하면 “대규모 인명피해를 낳은 참사에 수혜자가 어딨느냐”고 꾸짖기도 했다. A 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과했다.

세월호 얘기로 직장 상사한테 ‘찍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50대 전후 부서장의 경우 고등학교 자녀를 둔 사람이 많아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직장인 강모(여ㆍ45) 씨는 “동료들과 재밌는 얘기를 하면서 웃다가도 누구 먼저할 것 없이 웃음을 멈춘다”며 “세월호 희생자를 생각하면서 다시 숙연해진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애써 세월호 얘기를 하지 않거나 실시간 중계하는 방송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다. 중학생 딸을 키우는 송모(여ㆍ41) 씨는 “방송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가 있다”며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꺼버린다”고 했다.

직장인 정모(34) 씨는 “괜히 경거망동하다 개념없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일부러 세월호 얘기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의견의 다양성이 제한되는 부작용은 있지만 시민 의식은 한단계 성숙해졌다고 평가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언을 했는데 자기가 비난을 받았거나 괴로웠던 경우가 있다면 다음부터는 말을 아끼게 된다”며 “다만 자기와 다른 의견에 대해 마녀사냥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양재원 연세대 학부대학(심리학전공) 교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내가 하는 얘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자유럽게 의견을 개진하더라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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