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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어른들이 어긴 원칙에…한줌의 기적마저 바닷속으로
제멋대로인 적재 기준·겉핥기식 안전점검…
엉터리 보고시스템에 구조 ‘골든타임’마저 놓쳐

먼저 살겠다고 배 버린 선장과 승무원들
컨트롤타워없이 우왕좌왕한 정부의 재난대응
원칙만 지켰다면 더 많은 생명 살아 돌아왔을텐데


사망 159명, 실종 143명(24일 오전 10시 기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세월호 참사 현황이다. 그 중 다수는 채 꽃도 피워보지 못한 고교생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비극은 원칙을 지키지 않은 어른들에게서 비롯됐다.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애쓰다 숨진 22세 승무원 고(故) 박지영 씨를 제외한, 세월호를 책임졌던 어른들은 사고 전, 사고 후 어디에서도 항해와 구조에 필요한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헤럴드경제는 정부의 수사발표와 언론 등에서 제기된 세월호의 원칙 위반 내용을 사고 전과 후로 정리했다.


▶사고전...허위보고에 엉뚱한 교신채널로 통신한 세월호
= 세월호의 비극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예견됐다. 지난 16일 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는 출항 전 운항 관리실에 적재중량을 허위로 기재했다.

해양경찰은 “세월호에는 승용차 124대, 1톤 화물차량 22대, 2.5톤 이상 화물차량 34대 등 차량 180대와 화물 1157톤 등 총 3608톤의 화물과 차량이 적재됐다”고 밝혔다.

이는 청해진해운이 인천항 운항관리실에 화물 657톤, 차량 150대를 실었다고 제출한 ‘출항 전 점검보고서’보다 차량 30대 화물 500톤을 추가로 적재한 것이다. 출항 10분전까지 계속된 것으로 알려진 화물 적재로 인해 안전 점검도 당연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재 기준도 불명확하다. 인천해경이 2013년 2월 승인한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세월호에 실을 수 있는 적정 차량 대수는 148대. 승용차 88대 화물차 60대 컨테이너(10FEET) 247개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회사 공식 홈페이지와 홍보용 전단지에는 운항 관리 규정보다 승용차는 42대가 많은 130대, 컨테이너(10FEET)는 47개가 적은 200개, 화물차(5톤 기준)는 60대로 표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출항 전 안전 점검도 이뤄지지 않았다.

해운법 22조 4항에는 운항 관리자가 화물적재한도나 구명벌 등 구명기구, 소화기구 등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무가 규정돼 있지만 이는 유명무실했고 결국 사고 후 구명벌은 단 한 대만이 작동했다.

안전 훈련도 없었다.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열흘마다 해상인명 안전훈련을 실시해야 했지만 선원들에 따르면 거의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325명의 단원고 학생들도 출발하는 배 위에서 아무런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청해진해운 전체 직원들의 한 해 안전 교육비로 책정된 비용은 54만원이었다.

특히 침몰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선박 복원성(기울어진 배가 원상태를 회복하는 힘) 결함이 제기되는 가운데 청해진해운은 지난해 개조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변경으로 인해 떨어진 복원성을 회복시키는 조치도 취하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운항 중 관제센터의 보고체계도 엉터리였다.

세월호는 16일 오전 7시 8분께 진도 해상교통 관제센터 관할 구역에 진입했지만 진도 VTS에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대신 인천항을 출항 후 계속 제주 VTS에 주파수를 맞춰 운항했다.

연안해상교통관제규칙 및 개항질서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선박은 출항할 때 해당 지역 관제센터 채널과, 전 세계 공용 채널 두개를 항상 청취해야 하고 선박은 지역 해상교통관제구역을 지날 때 진입 신고를 하고 관제센터의 지시에 따라야 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지켜진 것은 없었다.

결국 이는 최초 구조 신호가 제주 VTS로 들어가 구조 골든타임을 놓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고 후...매뉴얼도 무용지물, 선장은 승객을 버렸다
=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고 1914년 채택된 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에는 선장의 의무가 배와 탑승자 전원의 안전을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협약의 최근 개정 조항에는 승객들이 비상 상황에서 30분 내에 대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의무규정은 아니지만 배를 책임지는 전 세계의 모든 선장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암묵적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서 이런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구조선에 올랐다.

위기 상황에 대한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침몰 상황에서 선장은 모든 승객이 대피할 때까지 총지휘를 해야 한다.

1항사는 현장 지휘, 2항사는 응급처치와 구명정 작동, 3항사는 기록 통신을 맡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매뉴얼이 아닌 법에도 규정된 기본 중에 기본이다.

선원법 10조(재선의무)를 보면 선장은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선박 위험 시 조치를 다룬 11조에도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선장을 포함한 선박직 15명은 탈출에 유리한 조타실 쪽에 모여 있다가 먼저 구조선에 올랐다.

운항관리 규정으로 정해진 가장 기본적인 조치인 퇴선 신호도 없었다.

선장은 해당 상황에 맞게 비상 신호를 발령해야 하며, 승무원은 이 비상 신호를 듣고 미리 정해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지만 사고 후 퇴선 신호를 듣지 못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결국 이번 참사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은 어른들에 의한 人災라는 평가에 중론이 모이고 있다.

서상범 기자/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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