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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면다큐> ‘도전과 열정의 사나이’ 권태신…절박함에서 위기를 돌파한다
“제발 사람 많은 데서 말씀 좀 하시 마세요”

대한민국에서 장관까지 지냈다는 인사는 불과 얼마전까지 부인에게 입단속을 당했었다. 그런데 그럴 만도 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세던 2006년. 당시 재정경제부 2차관이던 이 남자는 시위대에 “집단 이기주의”라고 쏘아부쳤다. 한밤중 집으로 항의전화와 팩스가 들끓었다. ‘미제 앞잡이’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졌다. 그래도 이 남자는 지지 않았다. “영화인 1만명 때문에 우리 국민 5000만명이 먹고사는데 차질을 빚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오히려 더 꿋꿋히 버텼다. 요즘 한국영화가 외화보다 더 인기 있고, 돈도 더 많이 번다. 심지어 한류열풍을 타고 해외로 수출되기도 한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그런데 가족들에 그 고생을 시켰던 이 남자가 2010년 다시 사고(?)를 친다. 세종시로의 정부청사 이전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일 때, 장관급인 국무총리실장이던 이 남자는 “세종시 원안은 사실상 수도분할이다”라며 제 목소리를 냈다. 어쨋든 정부청사는 옮겨졌고, 대한민국 정부의 기능은 현재 서울과 세종시 두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곳이 ‘수도’다. ‘분할’이란 말이 틀리지는 않았던 셈이다.

이 남자, 바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이다. 연구원장이나 전 국무총리실장이란 타이틀보다 그냥 ‘권태신’이란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린다. 연구원장으로 재직하다가 장관으로 옮긴 경우는 있어도, 장관하다가 민간연구원장을 맡은 사람은 이 남자가 처음이다. 애초부터 자리나 남의 시선 따위는 권 원장의 관심이 아니다. 배움과 소신, 그리고 주저없는 실천이면 족하다.

공직시절 워낙 입바른 소리 잘해서 ‘싸움닭’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런데 살펴보면 권 원장의 인생에서 진정한 싸움 상대는 자기 자신이었다. 공군 장성 출신의 아버지 덕분에 그는 반강제(?)로 공군장교로 입대해서 군 복무를 길게 했다. 덕분에 동기들보다 훨씬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6년 8월 전역해서 불과 두 달 뒤 치러진 행정고시에 붙어 19회로 관복을 입었다. 이 때 그의 벼락치기 방법이 참 독특하다.

“책상에 다리를 묶고 열쇠를 멀리 떨어진 알람시계 위에 놓았죠. 알람이 울리면서 열쇠가 손이 닿는 곳에 떨어지도록요. 그러니까 미리 정해둔 알람시간 전까지는 꼼짝없이 책상앞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묻자, 비결을 털어 놓는다. 절박함(desperate)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한계 극복을 위해 잠재된 에너지가 극대화된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급할 때 잘합니다. 외국에 투자설명회 가서 1998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에 350만명이 참가했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랍디다. 2002년 월드컵때도 우린 2~3년전부터 준비해서 완벽히 준비하고 시합도, 응원도 잘했죠. 한국사람은 뜻만 하나로 모아지면 엄청난 에너지를 냅니다”

사실 그의 공직생활은 절박함의 연속이었다. 경제관료 새내기 딱지를 막 떼어낸 1979년 2차 오일쇼크를 맞았고,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경제부총리 비서실장으로 온 국민의 비난을 받아냈다. 하지만 절박함은 오히려 그의 능력을 더욱 빛나게 했다.

2002년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시절,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려 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지 5년 밖에 안 지났는데 또 등급이 내려가면 국가경제에 치명타가 안길 게 뻔했다. 그는 지체없이 미국 뉴욕 무디스 본사로 쳐들어갔다. 시장에서 한국을 이미 A등급으로 간주해 거래하고 있는데, 무디스만 등급을 낮춘다는 것은 시장에 따라가지 못하는 처사라고 강하게 따졌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갑(甲)노릇하던 무디스도 그에게는 질렸는지 3주 후, 신용등급을 ‘Baa2’에서 ‘A3’로 오히려 2단계나 올렸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트리플B 등급과 싱글A등급은 하늘과 땅차이다.

공직시절 그의 능력은 1989년, 1997년, 2001년, 2004년 등 무려 4차례나 청와대에 근무하며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4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것만으로도 입증된다. 보통 경제관료에게 청와대 근무는 ‘에이스(Ace)’임을 입증하는 보증수표다.

그는 2013년 3월 국가경쟁력강화위언회 부위원장을 끝으로 37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성공한 경제관료인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곳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 택한 곳은 민간연구소다. 공직에 몸담지 않았다면 경제학자가 되고 싶었던 옛 꿈과도 관련이 깊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애착이다. 21세기에는 기업이 잘 돼야 국가도 잘되고, 국민도 잘 살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폼나고 돈 많이 주는 곳보다는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새 둥지를 트자마자 인생 대부분을 몸담았던 공직사회에 쏟아내는 쓴 소리에도 거침이 없다. 공직자들의 속성을 속속들이 다 알기 때문이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공무원들이 겹겹이 규제를 만들어 놓고 없애려하지 않습니다. 규제가 많아야 공무원 권력이 세지는 현실도 개탄스럽습니다. 사실 교통 경찰의 권력이 세지는 방법은 간단하죠. 도로 주행속도를 시속 50㎞로 제한하면 됩니다. 국회의원들도 법안 발의건수를 늘리기 위해 규제를 마구잡이로 양산하고 있죠. 특히 정부는 규제개혁위 등 내부 심사를 피하려 처리과정이 간단한 의원입법을 택해 국회와 손잡기도 하지요. 이런 게 다 규제 개혁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들입니다”

그의 꿈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대한민국’이다. 2012년 펴낸 책 제목도 ‘내가 살고 싶은 행복한 나라’다. 방법은 간결하다. 21세기 국가의 동력은 기업인 만큼, 그 기업이 잘돼서 직원과 가족, 사회가 모두 그 수혜를 누리는 나라다.

“스티브 잡스, 빌게이츠 등은 큰 돈을 벌고 존경도 받습니다. 우리도 기업인들을 이처럼 존경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도 이 사람들처럼 되려고 열심히 노력해야합니다. 이렇게만 되면 저출산, 교육인플레, 가계부채, 실업, 양극화 등 당면한 여러 문제들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담=홍길용 재계팀장

정리=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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