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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침몰] 안쓰고 안놀고…세월호에 갇힌 대한민국, 소비도 가라앉다
봄 정기세일 백화점들 일제히 매출 하락
한산한 극장가, 최대 30% 관객 줄어
충격·애도 ‘집단 우울증’에 소비심리 위축

TV광고·프로모션 등 마케팅 자제
5월 대목 앞둔 유통업계 전전긍긍


백화점 봄 정기세일 중에서도 최대 대목으로 통하는 마지막 주말인 지난 20일.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행사장 매장은 오후 시간인데도 한산하기만 했다. 마치 시계를 주중 손님이 가장 없다는 평일 월요일 오전대로 돌려 놓은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세일은 그렇게 조용하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관객들로 북적였을 극장가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극장 매출이 최근 들어 많게는 30%까지 빠진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다. 홈쇼핑 채널에선 여행상품이 실종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5월 가정의 달 대목 열기를 한창 띄어야 할 간판상품이 사라진 것이다.

‘세월호 트라우마’에 한국사회가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 예전 같았으면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도 시원치 않은 ‘5월 가정의 달’ 행사도 급감하고있다. 전염성이 강한 집단 우울증은 소비자들의 지갑마저 닫고 있다. 착 가라앉은 소비심리가 자칫 잘못하면 내수경기 급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지갑 닫히면서 내수 산업 시름
=세월호 침몰 이후 유통업계도 극한 우울증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16일 이후 20일까지 매출이 전년대비 1.3% 빠졌으며, 지난 주말 사흘간은 1.6% 미끄러졌다. 이마트와 대형마트도 사고 직후부터 매출이 소폭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사고 피해자가 거주하는 안산권역 대형마트 매장은 매출이 크게는 10% 이상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홈쇼핑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CJ오쇼핑은 지난주말인 19일과 휴일인 20일 매출이 전주에 비해 20.0% 줄어든데 이어, 월요일인 21일 매출도 5% 가량 감소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할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세월호와 함께 소비도 가라앉은 것이다. 이같은 한국사회의 집단 우울증은 색조화장품 등 생필품 이외의 불필요한 상품을 구석으로 밀어내고 있고, 부동산 분양ㆍ경매시장도 침체기를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허탈감에 빠진 한국사회는 여행은 물론 각종 행사를 취소하는 등 날이 갈수록 웅크리고만 있다.

특급호텔 연회장 등에 잡혀 있던 기업체나 공공기관의 행사도 잇따라 취소되고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은 4월 중에 잡혀 있던 기업체와 공공기관의 연회 등 행사 9건이 취소됐다고 전했고, 밀레니엄 서울힐튼도 3건의 기업체 행사가 예약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그랜드 힐튼 서울 역시 컨벤션 센터에 예정되어 있던 컨퍼런스나 행사 스케줄이 잠정적으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 일부 여행사에서는 학생, 공무원 등의 단체 여행 취소율이 지난 18일 기준으로 50%를 넘어섰고, 그 폭이 더욱 확대될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제주도, 진도, 목포로 가거나 경유하는 여행과 공무원 연수여행은 대부분 취소됐다. ‘분위기’를 의식해 깊은 사려 없이 결정한 ‘수학여행 금지령’ 같은 정부 방침은 청소년들에게 재난 참사 관련한 안전 체험교육의 기회 마저 박탈하는 황당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국비와 지방비 등 1790억원을 투입해 6년간 공사 끝에 2012년 10월 개관한 세계 최대 규모의 ‘365 세이프타운 안전체험관’은 수학여행 금지령 때문에 30개교 가량이 4~6월 안전 체험학습 예약을 취소하는 사태에 직면하고 말았다. 더더욱 안전 문제를 배워야 할 이 시점에 안전 교육이 배척되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사정이 이렇자 업체들의 마케팅도 한껏 움츠려든 모습이다. 주류업계는 흥겨운 축제와 파티를 연상케하는 특유의 주류광고와 시음행사를 완전히 중단했으며, 일부 유통업체들도 광고 프로모션을 잠정 중단하는 등 ‘조용한 모드’로 돌아섰다. 롯데주류가 야심차게 준비한 ‘클라우드’ 맥주는 소리소문 없이 시장에 나왔고, 베이커리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은 세월호 참사 다음날인 17일부터 ‘별에서 온 그대’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전지현을 모델로 한 TV광고를 중단했다.

▶소비심리 회복 언제…말 못하는 속내=업계에선 최소 한 달 이상은 소비심리 위축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한 호텔그룹의 경우 각 체인 호텔에 최소 한달간은 모든 프로모션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최소 한달간은 대외적으로 모든 행사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며 “지금은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같은 ‘세월호 트라우마’가 장기화될 경우 소비 자체가 아예 침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도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내수경기가 이번 세월호 침몰로 아예 가라앉을 개연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 마케팅이나 매출 문제를 입밖에 내는 것 조차 부담스럽다”면서도 “5월은 유통업계로선 놓칠 수 없는 대목인데 이를 그냥 버릴 수도 없어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한 전문가는 이와관련 “세월호 트라우마는 한국사회의 집단 우을증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소비는 사실 심리게임인데, 집단 우울증은 이같은 심리게임에선 최대 악재다. 지금은 국가적 애도 분위기가 내수경기의 추동력마저 무너뜨리는 집단 우울증으로 더이상 확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석희·손미정 기자/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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